“너희들 왕따돌림에 내가 죽는다”
  • 朴晟濬·金恩男 기자 ()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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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내 ‘집단 괴롭힘’ 현장 검증/잔혹한 폭력의 피해자 ‘왕따’들, 자살·정신질환 등 삶 망가져
교실 안의 문제로만 여겨져 온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 이른바 ‘왕따 현상’이 줄줄이 사건화하고 있다. 일부 사건은 손해 배상 소송까지 제기되어 원고 승소 판결이 났다. 또 다른 왕따 사건들도 소송이 이미 제기되었거나 제기될 조짐이다. 게다가 최근 경남 진주에서는 집단 따돌림 현상이 개입된 것으로 보이는 한 초등학교 여학생의 음독 자살 사건까지 발생해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38∼39쪽 딸린 기사 참조). ‘청소년 비행의 곁가지’ 정도로 여겨지던 교육 현장의 집단 따돌림 현상이 교육계 최대 현안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30일 서울지방법원 제22 민사부(재판장 서희석 부장판사)는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심장병을 앓는 급우를 1년 가까이 괴롭힌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장성완군(19) 가족이 가해 학생 학부모 5명과 서울시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피고측에 지불하라고 판결한 손해 배상 액수는 위자료 3천만원을 비롯해 모두 1억5천만원. 이것말고도 11월20일에는 서울 ㅇ초등학교에 재학하던 정 아무개양과 정양의 학부모가 이와 비슷한 내용의 소송을 담임 교사 2명과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해 관심을 끌고 있다.

도시락에 침 뱉고 컴퍼스로 손등 찍고

소송이 제기되어 판결이 나기까지 3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 장성완군 사건의 발단은 9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아 온 장군은 95년 3월 ‘장애인 특례’ 케이스로 서울 ㅇ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장군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장군의 어머니 최진숙씨(당시 ㄱ초등학교 교사)는 예비 소집일에 학교를 찾아가 담임 교사가 될 선생에게 이해를 구하고, 장군의 학교 생활에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장군의 행동에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때는 입학 직후인 96년 3∼4월께.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신체 어딘가가 다쳐 있고, 왠지 모르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거나 가족을 피하고, 심지어 아빠와 함께 목욕탕 가는 일도 꺼리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그같은 행동이 최 아무개군 등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최씨가 알게 된 때는 1학기가 끝날 무렵인 96년 7월께. 최씨가 아이의 우울함을 달래 주려고 장군에게 붙여 준 가정 교사가 장군의 몸에서 시퍼렇게 멍든 자국과 구타당한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96년 7월 중순, 어머니 최씨가 아들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을 때, 최씨는 ‘문제 학생들을 찾아내 타이르고, 담임 선생에게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는 선에서’ 이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지으려고 했다. 최씨 자신이 초등학교 교사여서 누구보다 학교측 입장을 잘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2학기 개학 이후 최군 등 가해 학생들이 오히려 장군에게 ‘보복성 폭력’을 휘두르고, 학교 당국마저 태도를 바꾸어 사과는커녕 오히려 최씨를 ‘문제아의 어머니’라고 비난하고 나오자 최씨의 분노는 폭발했다. 참다 못한 최씨는 마침내 96년 2월 가해 학생들을 처벌해 달라고 경찰에 고소했고, 같은해 5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형사 처벌을 받은 최 아무개군 등이 장군을 상대로 1년 여에 걸쳐 자행한 집단 폭력은 실로 잔혹했다. 쉬는 시간에 장군을 불러내 주먹으로 얼굴·머리·가슴·배를 때린 것은 비교적 얌전한 편에 속한다. 가해 학생들은 보온 도시락으로 장군의 머리를 내리쳐 실신시키기도 했으며, 아무런 이유 없이 장군의 교과서를 칼로 난도질했다. 이들은 장군의 도시락에 침을 뱉어 먹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장군의 손을 책상 위에 펴게 하고 컴퍼스로 손등을 찍어 피투성이로 만들기도 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모든 것의 빌미는 장군이 입학할 때부터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선생님에게 특별 배려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한번 왕따는 영원한 왕따

2명 이상이 집단을 이루어 특정 학생을 소외시키고, 때로 폭력을 동원해 괴롭히는 학교내 ‘집단 따돌림’의 희생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장군의 경우처럼 신체적 결함이나 약점이 있을 때이다. 그러나 신체적으로는 멀쩡하지만 ‘왕자병’ ‘공주병’ 등 특별히 따돌림당할 만한 요소를 가진 아이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들은 대개 부모의 과잉 보호해 키웠거나, 지나치게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이라고 한다.

일단 ‘왕따(왕따돌림의 준말이며 따돌림받는 아이를 지칭)’의 과녁이 설정되면 이를 주동하는 학생들이 등장하는 점도 집단 따돌림 현상의 한 특징이다. 이들이 흔히 동원하는 따돌림 방식은 이른바 ‘생까’. 상대방을 무시할 때 주로 쓰이는 용어이기도 한 생까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아예 무시하거나 말을 걸지 않는 행위를 일컫는다. 생까는 일종의 ‘대화 거부’ 표시이며, 특정 학생이 집단 따돌림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피해 학생에 대해 생까가 이루어지면 그 뒤부터는 약점 들추기·욕하기·시비 걸기·바보 만들기·괴롭히기 등 집단 따돌림의 일반적인 행위가 이어지며, 이 과정에서 폭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 현상의 또 다른 공통점은 따돌림 대상으로 한번 찍히면 학년이 올라가거나 상급 학교로 진학해도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한번 왕따는 영원한 왕따’가 되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예컨대 장성완군의 경우, 고등학교 입학 이후 집단 따돌림을 받게 된 것은 중학교 때 이미 한 차례 따돌림을 즐겼던 최 아무개군 등 동창생 서너 명이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데에서 말미암았다.

이와 비슷한 양상은 11월20일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서울 ㅇ초등학교 출신 정 아무개양의 경우에서도 나타난다. 정양 부모측 주장에 따르면, 정신 질환을 앓던 정양은, 5학년 때와 6학년 때 내리 2년 동안 학생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받아 현재는 ‘부모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했다. 물론 이에 대해 담임 교사들과 학교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부모측 주장을 정면 부인하고 있다. 문제는 정양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5학년에 올라가기 전까지 학교 생활에 큰 문제가 없었으며, 6학년에 진급할 때에는 이미 학부모로부터 한 차례 집단 따돌림 시비가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집단 따돌림의 원인을 따질 때 가정, 특히 ‘가해 학생’의 가정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단 따돌림을 일부 철부지 학생이 저지르는 단순한 비행으로만 여기면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해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행위에 무책임하며, 때로는 ‘마땅히 혼내 줄 아이를 혼내주었다’는 식으로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자기 과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왕따’ 방치·방조·조장하는 학교와 교사

신경정신과 전문의 진태원 박사(진태원 신경정신과 원장·청소년건강연구소장)는 “왕따 가해자들은 태생적으로 공격적인 아이도 일부 있지만, 대개는 학부모의 부적절한 양육이나 이혼·별거 등 가정 환경의 영향을 받은 아이가 많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주의가 산만하고 과잉 행동을 보이는데, 이 가운데 일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해 신체적 약자나 정신 지체아를 괴롭히는 양상을 보인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이들 가해 학생의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는 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를 따돌리거나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피해를 당한 쪽의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사장 김종기) 백승한 상담팀장은 “이같은 부모의 행동은 자녀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반성할 기회를 빼앗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근거를 제공해 집단 따돌림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집단 따돌림 현상에서 가장 문제 되는 대목은 대개 따돌림이 담당 교사나 학교측에 의해 방치·방조되거나, 심지어는 조장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경남 진주시에서 일어난 초등학교 여학생의 음독 자살 사건은, 그것이 전형적인 집단 따돌림의 결과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따돌림 과정에서 교사와 학교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 학생의 자살과, 이에 죄책감을 느낀 담임 교사의 자살 기도로 번진 이 사건은, 핸드폰 도난 사건 이후 교사들이 한 학생을 명백한 증거 없이 범인으로 몰아붙이는 등 부적절하게 대응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대전시 유성구 ㄷ고등학교 이 아무개군(현재 휴학중) 사건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부모 주장에 따르면, 이군은 올해 초 ㄷ고교에 입학한 뒤부터 지속적으로 집단 따돌림을 받아 지금은 ‘정신 불안’과 ‘등교 기피증’을 보이는 집단 따돌림 피해자다. 아이의 불안 증세가 악화한 뒤 부모는 아들 일기장에 적힌 각종 집단 따돌림의 증거를 제시하면서 지금까지 여덟 차례 학교측과 면담하고, 세 차례 서신을 보내는 등 나름으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으나, 그때마다 학교측은 ‘따돌림의 원인은 아이 본인과 가정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며 성의 있는 대화를 피했다.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이군 부모는 현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장성완군 가족, 도망치듯 미국으로 이민

집단 따돌림의 심각성은 대부분이 학부모·선생·학교 모르게 은밀히 진행되며, 일단 시작되었다 하면 피해 학생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대개 피해 학생은 정신 불안에 빠지거나 학교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전학하거나 이민을 호소한다. 최근 손해 배상 판결을 받은 장성완군의 경우 장군의 요구에 따라 지난해 5월 가족 모두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쫓기듯 이민을 떠났다. 서울 ㅇ초등학교 정 아무개양이나, 대전 ㄷ고등학교 이 아무개군 경우도 학교를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경남 진주시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음독 사건은 이 가운데 최악의 경우이다. 비슷한 자살 사건은 지난 6월 서울 강남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도 있었다.

전문가 대부분은 집단 따돌림이 이처럼 심각한 결과를 낳는 원인을 문화적 특성에서 찾고 있다. ‘나와 남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집단주의 문화’ ‘소수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문화’가 집단 따돌림 현상을 싹 틔우고 기른다는 것이다. 이나미 신경정신과 이나미 원장은 “바람 난 과부를 가마니에 둘둘 말아 때려 죽이던 풍습이나, 이른바 ‘병신 자식’을 집안 수치로 여겨 바깥 출입도 못하게 했던 사고 방식도 알고 보면 집단 따돌림과 한 뿌리다”라고 말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진태원 박사의 주장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머리(지식)로는 서양식 개인주의를 받아들였는데 몸(감성)은 여전히 집단주의에 머물러 있는 일종의 ‘문화 지체’가 집단 따돌림을 부추기는 실제 원인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아울러 입시 교육의 틀에서 자기 자식만 제일인 줄 알고 자식에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교육하지 않는 교육 상황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사회 전체가 건강하게 자라야 할 청소년들을 ‘왕따’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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