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제2막, 이원조 리스트 밝혀질까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5.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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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 의지와 관련해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민자당의 움직임이다. 민자당은 노대통령이 민자당 총재로 재직한 4년8개월 동안 달마다 20억원씩, 그리고 명절 때면 떡값을 제공하는 등 도합 1천3백억원 정도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자민련에는 김종필 총재를 비롯해 14대 대선 때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대통령 만드는 데 참여했던 의원들이 적지 않다. 자민련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당시 민자당이 3천억원 정도를 사용했을 것이라며 물증을 수집하고 있다. 이러한 자민련의 압박을 상쇄하는 수단으로 검찰과 여당은 이원조씨 수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예상 밖의 상황이 전개돼 그 속도를 빨리 한 것이라고 법조계는 분석하고 있다.

검찰이 가장 먼저 소환한 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노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하거나 노대통령에게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3∼4개 기업으로부터 ‘알현 수수료’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5공 출범 초기 국가보위 비상입법회의에도 참여했던 그는 경제수석 취임 직후인 90년 5월8일 재벌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 매각하는 안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6공의 반재벌 정책을 입안했던 그가 노씨 비자금의 중간 모집책이었다.

노 전대통령의 동서인 금진호 의원은 진작부터 구속이 예상됐다. 금의원 자신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데다, 기업인의 노대통령 면담을 주선하면서 ‘알현 중개료’를 챙겼기 때문이다. 금의원은 6공 시절 이원조씨와 더불어 대선 자금 조성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갈지 관심거리이다.

대검 중수부의 노씨 비자금 수사는 5천억원 조성 과정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노씨는 구속되던 16일 “정치인들의 모든 불신과 갈등을 안고 (나 혼자 감옥에) 가겠다”고 밝혔듯이, 검찰 조사에 소극적이다. 36개 재벌 기업 총수 소환 조사를 통해 검찰은 중복 계산된 것을 포함해 3천5백여억원밖에 밝히지 못했기에 국영기업체 쪽으로 수사의 폭을 넓힐 수밖에 없다.

한국전력·석유개발공사·도로공사·수자원공사 등 국영기업체는 수백∼수천억원대의 공사 발주가 많은 곳이다. 이러한 공사는 대개 청와대 내인가를 거친 다음 형식적인 경쟁 입찰을 통해 낙찰되기 때문에 국영기업체 사장은 노씨 비자금의 중간 모집책이 된다. 이들 사장 가운데 첫 번째 수사 대상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U1, U2 석유비축기지 공사를 발주한 유각종 전 유개공 사장이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안병화 전 한전 사장과 권병식 도로공사 사장, 상무대 사건 때 거론된 수자원공사와 토지개발공사 사장도 재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수의 계약이 이뤄지는 군 관련 공사도 노씨 비자금의 공급원이었다. 진해 잠수함기지와 아산의 해군 함대사령부 공사를 따내기 위해 노태우씨와 이현우씨에게 뇌물을 준 대우와 동아건설 등 여러 건설회사가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 공사와 국영기업체 발주 공사를 따내기 위한 건설회사의 비자금 살포는 36개 재벌 기업 총수 소환 조사에서 나온 사실과 상당 부분 중복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검찰은 이들 업체 조사에서도 노씨가 5천억원을 조성한 과정을 다 밝히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숨어 있는 비자금 모집책 또 있다

이 경우 새로운 수사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이 금융권이다. 이형구 전 노동부장관이 산업은행 총재 시절 시설자금을 대출해준 대가로 커미션을 받았듯 금융권은 대출과 관련한 비자금 조성이 많은 곳이다. 이 비자금은 갖가지 명목으로 상납된다. 첫 번째는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이 연임을 위해 청와대에 상납했듯 은행장 인사와 관련된 상납이 있다. 두 번째로는 은행 수신고를 높이기 위한 로비 자금 살포이다. 거액의 6공 비자금을 관리했던 이현우 전 경호실장이 천억원을 동화은행에 입금해준 대가로 안행장으로부터 2억1천만원을 받은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노씨 구속으로 주춤했던 비자금 수사는 이원조씨 수사를 계기로 다시 빨라질 전망이다. ‘증거만 보고 가는’ 검찰의 논리와 다음 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의 논리는 이 상황의 두 주인공이다. 5천억원 조성 경위를 밝히는 데도 힘이 달리는 검찰의 한계와, 쉬 달았다가 쉬 식어버리는 국민 여론 그리고 정치적 역학 관계 때문에 이 사건은 머지 않아 고삐가 잡힐 가능성이 있다.

노씨는 중간 모집책을 여러 명 두고 돈을 받았다. ㅂ 씨 등 그의 최측근 인사들은 아직 거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그의 비자금 중간 모집책은 많았다. 그 많은 중간 모집책이 이제는 지뢰로 변해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검찰이 어설프게 이 사건을 덮어버리면 이 지뢰는 예상 밖의 상황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 검찰이 차분히 이 지뢰를 파헤치는 것만이 이 사건을 슬기롭게 마무리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던 11월16일 대검 청사에는 내외신 기자가 3백여 명이나 몰려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11월17일 서울구치소로 가기 위해 대검을 나오는 이현우씨를 취재한 기자는 30여 명에 불과했다. 단군 이래 최고 수뢰액인 2천3백58억9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었는데 전직 경호실장이 구속되는 것이 뭐 대단하냐는 분위기였다.

수사 착수 4주 만에 검찰이 노태우씨를 구속할 수 있었던 데는 이현우씨가 일등 공신 노릇을 했다. ‘이현우 리스트’라 불리는 그의 진술이 있었기에 재벌 총수 36명을 소환할 수 있었고, 일부 중복 입금된 것을 포함해 3천5백억원 가량의 기업 비자금이 노씨 비계좌로 들어간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수년간 계좌 추적을 해도 밝힐까 말까 한 노씨의 2천3백58억9천만원 수뢰 사실을, 이씨 진술을 근거로 불과 1개월 만에 밝혀냈으니 검찰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도 했다.

이러한 소강 상태는 노태우씨에 대해 영장을 발부한 김정호 판사의 발언 때문에 갑작스런 긴장으로 돌변했다. 김판사가 “노태우씨 영장에 이원조씨와 김종인씨가 노태우씨에게 전달하겠다는 명목으로 수억원을 받았다는 재벌 총수의 진술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11월19일 일요일, 대검 청사로 출근한 안강민 중수부장은 노태우씨 비자금 모집의 중간책으로 알려진 이원조·금진호·김종인 씨를 소환하겠다고 밝혔다. 노씨의 영장에 올라 있는 이원조씨 혐의 부분은, 이씨가 36개 재벌 총수 중 단 한 기업 총수로부터 수억원을 받았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노씨 비자금 사건이 터진 직후 발행된 <시사저널> 제314호와 제316호는 함승희 변호사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동화은행 비자금 수사 당시 검찰은 이원조씨의 비계좌를 발견했고, 동화은행 비자금 2억3천만원이 이씨 비계좌로 입금된 증거와 진술을 확보했다”고 이씨의 혐의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 이어서 함변호사는 다른 시사 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92년 말 이원조씨 비계좌에서 수백억원이 입·출금되었다”며, 이씨가 14대 대선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암시했다.

이원조, 87년 대선 때 ‘돈으로 야권 분열’ 혐의

5공에서 6공으로 넘어가는 86∼88년 은행감독원장을 지낸 이씨는 금융계의 인사권을 장악한 실력자였다. 당시 이씨는 시중 은행장들을 통해 김영삼·김대중 씨 등 야당 후보에게 헌금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돈줄을 움켜쥐었다고 한다. 이씨는 은행장들이 대출 커미션으로 받은 비자금을 모아 여당 후보측에 전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대선 중반 김영삼 후보가 우위를 보이자 YS쪽 자금줄을 더욱 죄고, 김대중 후보 쪽으로 선거 자금이 흘러들게 해 야권 분열을 가속화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13대 대선과 총선이 끝나고 여소야대 정국에서 열린 국회 5공비리 청문회에서는 이른바 ‘5공 6인’이라는 이원조·정호용·이희성·장세동·이학봉·허문도 씨 처벌 문제가 대두됐다.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는 장세동씨를 물고늘어졌고,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이원조씨만은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88년 12월12일 이원조씨는 검찰에 소환되었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풀려나왔다. 반면 “내가 입을 열면 여러 사람이 다친다”고 호언했던 장세동씨는 두 번 옥살이를 했다.

90년 봄 여소야대 정국은 거대 여당 민자당 출범으로 무너졌다. 민자당 대표로 변신한 김영삼씨는 그토록 처벌을 요구하던 이원조씨가 자기 당 소속 의원이 되자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14대 총선을 앞두고 노태우 총재가 이의원을 전국구 후보로 지명하는 데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이원조 의원을 김영삼 대표에게 붙여주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계를 장악한 이원조씨가 은행장들을 조종해 김영삼 대표에게 정치 자금을 공급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큰 비밀은 덮고 작은 것만 캔다?

법조인들은 ‘검찰이 노씨의 영장에 이원조씨 수뢰 사실을 적시한 것은, 검찰이 내부적으로는 이원조씨를 수사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이원조씨 수사는 필연적으로 금융권 전체의 사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면을 고려한 검찰은, 대선 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씨를 조사함으로써 노씨 비자금 파문을 극적으로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김판사가 공개함으로써 그 순서가 빨라졌을 것이라고 이들은 추정한다.

검찰이 이씨에 대한 수사 의지를 피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결코 이씨가 대선 자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울지검의 한 수사 검사는 “이씨 같은 거물을 수사할 때는 흔히 그의 혐의 사실 중 일부에 대해서만 기소하고, 나머지는 봐주는 방법을 택한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혐의점의 상당 부분을 봐주는 대신 그로 하여금 더 큰 비밀에 대해서는 확실히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사 기법이다. 그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고 할 경우 이런 혐의를 추가로 기소하겠다고 위협하면 그는 십중팔구 굴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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