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지방선거 좌우할 '떠도는 유권자'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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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거부’ 정치 세력화 안돼…투표 성향 예측 불가능, 늙은 여야 ‘속수무책’
정치는 사양 산업인가.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젊은이들의 관심이 정치로부터 점점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탈 정치 현상이다.

이것은 단순한 예상이 아니다. 여야 정당의 여론조사 담당자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다. 선거가 코앞에 닥친 그들이다. 선거라면 어떻게 해서든 이겨 놓고 보아야 한다. 이맘때면 각 정당과 후보자는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숱한 도상 연습을 한다. 바야흐로 ‘피를 말리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에게 표의 향방은 그만큼 절박하다.

그런데 이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세대가 등장했다. 다름 아닌 20대이다. 그들의 투표 성향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론조사를 하면 어느 정도 투표 성향이 드러나기는 한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20대의 정서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응 전략을 세우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역시 난감해진다. 머리를 쥐어 짜봐야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런 현상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요즘 ‘20대 변수’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20대 문제는 정치권의 화두로 굳어지고 있다. 민자당 사회개발연구실 박종선 실장은 “정말 X세대인 것 같다. 이들은 진보와 보수의 잣대로도 나눌 수 없다. 주로 야당으로 기울어지는 과거 젊은 세대의 특성을 이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다. 과거 젊은이들에 비해 여당 지지율이 높아졌지만, 딱히 여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젊은이들 사이에 여당 지지층이 넓어졌지만 이를 반드시 청신호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20대의 등장을 곤혹스러워하기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야당이 20~30대 젊은 층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물론 아직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야당 지지도는 여당 지지도보다 높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민주당 당무기획실에서 여론조사를 전담하는 조용휴 전문위원의 전망은 다소 비관적이다. “현재 연령별 유권자 수를 따지면 2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수적으로도 이들의 선택이 이번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위기 의식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관련된 것이다.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당이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젊은층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현역 정치인들이 이런 변화에 둔감하다는 점이다.”
‘젊어서는 야당, 늙어서는 여당’은 낡은 공식

신세대를 X세대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들의 성향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신세대를 지칭하는 이 말은 정치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번 지방자치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난다면, 그 진원지는 바로 20대일 것이라고 예단하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이다. 이들의 투표 참가율이 어느 정도일지, 어떤 사람에게 표를 던질지 현재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만 헷갈리는 것이 아니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려는 여론조사 기관들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선거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면 공신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이들은 이번 선거의 새로운 변수인 20대의 추이에 민감하다. 코리아리서치 이흥철 이사는 “예전에는 볼 수 없던 현상이 20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20대를 더 세분해서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확실히 20대 초·중반 세대에서 탈 정치적 성향이 눈에 띈다. 정치·사회 문제에 집중됐던 젊은이들의 관심이 이완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매우 중요한 신호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 역시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다. 물증으로 확인된 것이 아니다. 이번 선거가 20대의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을 처음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여론조사 기관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어느 사회건 청년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들이 그 사회의 미래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좁게는 미래의 선거, 넓게는 미래의 정치를 좌우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연령별 인구 구성을 따져 봐도 이러한 예견은 맞아떨어진다. 지난 4월30일 현재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 중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9.2%이고, 30대는 27.6%이다. 유권자의 56.8%가 20~30대 젊은층인 것이다. 지금까지 연이은 두 세대가 이처럼 압도적인 유권자층을 구성한 사례는 없었다.

이들은 ‘베이비 붐’ 세대이다. 그래서 이들의 뒷 세대로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지금 한국의 인구 구성은 가운데가 볼록한 전형적인 항아리형이다. 결국 앞으로 몇십 년 동안 한국 정치는 베이비 붐 세대인 이들의 손에 의해 좌우되는 셈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막강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대 역할론은 정치권에 매우 논쟁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 정치권과 재야에서는 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들을 중심으로 ‘30대 역할론’이 매우 비중있게 논의되고 있다. 한마디로 미래의 권력을 지금부터 준비하자는 것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사실 한국 정치사에서 ‘세대와 정치’의 문제가 이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적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미 한국 정치의 주역으로 떠오른 4·19 세대나 6·3 세대, 그리고 민청학련 세대, 긴급조치 세대 등이 있다. 그러나 세대와 정치의 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는 ‘낡은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왔다. 즉 지금까지 역대 선거 결과는 ‘젊어서는 야당, 늙어서는 여당’이라는 지극히 단선적인 구도와 정확하게 일치해 왔다. 그러니까 선배 세대들의 정치적 선택은 이런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20대, 더 정확히 70년 이후 출생한 신세대의 등장이 갖는 정치적 함의는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선배들이 청년기에 겪은 정치적 사건이나 정치적 환경에 의해 세대가 나눠진다면, 지금의 신세대는 그런 기준으로 분류되지 않는 첫 세대이다. 이들은 정치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다소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결코 선배들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 같다. 이들은 어떤 정치적 사건을 떠올리며 또래끼리 공감대를 이루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집단으로 묶어주는 요소는 문화적 취향이다.

신세대의 탈 정치 현상은 서구에서도 이미 나타났다. 가령 ‘젊어서 마르크스에 미치지 않으면 바보이지만, 늙어서도 마르크스에 미치면 이 또한 멍청이’라는 세대 풍자 경구는 서구에서 일찌감치 효력을 상실했다. 더이상 이념이나 계급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한다.

진보와 보수로 뚜렷이 구분되는 정당의 색깔은 점차 퇴색해 가고 있다. 유권자가 특정 정당을 습관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정당들의 득표율은 심한 기복을 보인다. 이념이 빠져나간 빈 자리에 이제는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이해와 시민적 욕망이 채워지고 있다. 그때 그때의 상황이나 쟁점에 따라 표의 이동이 현격해진다. 요즘 서구 정치학계에서는 아예 정당 정치의 몰락을 예견하는 학자들도 나오고 있다.
서구의 전례를 한국이 뒤따라가라는 법은 없지만, 비켜가라는 법도 없다. 오히려 요즘 신세대에게서 서구적 현상의 단초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동안 여론조사 기관들과 정당과 언론에서 숱하게 실시한 여론조사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20대의 특징은 대략 두가지로 모아진다.
무소속 지지율 다른 세대보다 높아

첫째는 과거보다 여당 지지율이 높아졌다는 점이고, 둘째는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이 다른 세대에 비해 높다는 점이다. 서울시장 여론조사에서 무소속 박찬종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20대에서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20대 변수의 골자다. 그러면 정치권에서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민자당에서는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20대에서 ‘뜻밖의 우군’을 발견한 뒤, 한때 당의 중진들까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여당에 우호적으로 나왔다고 해도 막상 선거에서 지지표로 연결될지를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대에서 여당 지지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과연 젊은이들이 보수화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현재로서는 결론을 내리기에 성급한 감이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존의 ‘정치적 틀’로는 신세대의 정서를 잡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 틀 속에 담기지 않는 존재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이나 정당 관계자들도 이 점에 동의한다. 이는 지금 민자당이나 민주당이 신세대를 향해서 이렇다 할 득표 전략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각 정당이 20대를 향한 득표 전략을 세울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신세대의 정치 성향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 신세대는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문화에서 성장했고,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공간과 형식을 고집한다. 그래서 선배 세대들이 접근하는 것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 신세대 스스로 그들만의 체험을 바탕으로 정치권을 향해 ‘또 다른 문화’를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반 정치’가 아니라 ‘탈 정치’이다. 연세대 문화인류학 강사 김찬호씨는 “신세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신경쇠약증에 걸려 있다. 당장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 아니면 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정치적 결사체를 만든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 거대한 명분은 회피한다. 이들은 점점 더 탈 정치화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치의 장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신세대는 미래를 불안해 하면서도 ‘불안의 정체’를 직시하지 않는다.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들지 않는 신세대는, 그들의 문화적 취향에 따라 조각나 있다. 소비하는 이미지를 빼면 20대의 상징을 떠올릴 수 없다. 김찬호씨는 “탤런트를 수도의 책임자로 뽑는 일본 정치를 보면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는 느낌이다”라고 말한다.

20·30대는 결합할 것인가, 충돌할 것인가

정진민 교수(명지대·정치학)는 88년 이후 지금까지 있었던 선거 결과를 세대의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요즘 그가 예의 주시하는 세대가 바로 70년 이후 출생자들이다. 아직 한국 정치학계에서는 세대와 정치의 상관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는 매우 낯선 영역이다. 정교수는 신세대가 한국 정치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렇게 전망한다.

“어느 나라의 경우를 보아도 특정 세대의 정치 성향은, 그 세대가 청년기에 어떤 사회·문화·정치적 체험을 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30대의 청년기는 정치가 지배했다. 따라서 그들은 매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70년 이후 출생한 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정치적으로 억압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세대는 자기 실현이나 자기 표현 욕구가 매우 높다. 정치보다는 문화에 더 관심을 쏟는다. 그런데 한국에서 특이한 점은 정치 지향적인 30대와 탈 정치적인 20대가 연이어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세대가 어떻게 충돌하고 결합하느냐에 따라 한국 정치의 지형이 달라질 것이다.”

이 분석대로라면 결국 앞으로 한국 정치는 전혀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베이비 붐 세대의 두 축인 20대와 30대가 연출해 낼 것이다. 그러나 형님 아우 사이로 맞닿은 이 두 세대는 좀체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정치 구호가 가득했던 대학 교정을, 90년대에는 대학 농구선수를 환호하는 오빠 부대의 비명이 채우고 있다. 이것이 20대와 30대 사이에 놓여 있는 틈이다. 당장 정계 재편에 주판알을 튀기기 바쁜 정치권은 그 틈 메우기를 사실상 포기했다. 그리고 그 틈을 메우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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