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벤처 모범 답안을 쓴다
  • 장영희·이문환 기자 (jjang@e-sisa.co.kr)
  • 승인 2001.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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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맥스 변대규 사장

'코스닥의 삼성전자'로 불리는 휴맥스는 지난해 말 시가 총액 10위권에 진입했다. 덩지가 큰 통신회사들을 빼면 정보기술(IT) 업체 가운데 으뜸. 실적과 성장성을 겸비한 코스닥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것이다. 휴맥스에게 성장주 거품론은 남의 동네 얘기일 뿐이다. 휴맥스를 강렬하게 각인시켜 준 사례는 더 있다. 지난해 11월 달성한 1억 달러 수출 실적. 벤처 기업으로는 처음이다. 그것도 흔히 셋톱박스라 불리는 디지털 위성 방송 수신기 단일 품목으로 일구어 냈다.

휴맥스 사령탑은 변대규 사장. 1993년 변사장은 노래방 선풍이 일 것을 예견하고 CD 가요 반주기를 개발했다. 여기서 25억원을 마련한 변사장은 1995년 이 돈을 셋톱박스 개발에 몽땅 쏟아부었다. 1년 6개월 후 그에게는 아시아에서 처음,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셋톱박스를 개발하는 행운이 찾아왔다. 물론 이후 유럽 시장을 뚫는 일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유럽 시장 석권…2001년은 미국 진출 원년

이제 유럽 시장에서 휴맥스라는 브랜드는 제법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변사장은 '주변부 성공'이라고 잘라 말한다. 유럽 시장에서 필립스·노키아 등을 물리치고 유통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짜 세계 거대 기업들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는 '큰 물'은 셋톱박스를 방송국에 직접 납품하는 직구매 시장이기 때문이다. 변사장은 직구매 시장을 '중심부'시장이라고 표현한다. 휴맥스는 이제 겨우 중소 규모 방송국을 공략할 수 있는 브랜드 인지도와 기술을 확보했지만, 변사장이 보기에 갈 길은 아직 멀다.

중심부의 의미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변사장은 지난해 삼성전자와 손잡고 미국 실리콘밸리에 크로스디지털이라는 합작 법인을 설립함으로써 난공불락의 미국 시장을 뚫을 거점을 확보했다. 새해 벽두부터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도 올해가 미국 시장 진출 원년이기 때문이다.

변사장에게 올해는 여러 모로 의미가 깊다. 가능성뿐인 휴맥스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회사로 발돋움하는 바탕을 마련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내년에 선보일 상품을 올해 개발하는 '다급한' 수준이지만, 몇해 앞을 내다보고 실험을 거듭하는 세계 선도 기업을 따라잡는 일이 무모하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공학도 출신 CEO이지만, 그는 기술을 내세우지 않는다. '원천 기술 개발'을 노래해 보았자 굶어죽기 딱 알맞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한국이 강점이 있는 응용 기술을 적극 개발하되, 마케팅 능력과 CEO의 경영 능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세계 시장은 저만치 가버린다는 것이다. 변사장을 만나본 이들은 그에게 '매력 있는'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드물다.

그의 벤처론은, 지식에 기반을 둔 상품을 만들고, 사장이 기업을 사유물화하지 않는 것. 따라서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벤처가 아니다. 인텔은 벤처지만, 현대가 벤처가 아닌 것이 그런 이유에서다.

휴먼 맥시마이즈, 즉 인간 능력 극대화라는 뜻의 휴맥스. 변사장이 한국형 벤처의 모델로 꼽히는 휴맥스의 역량을 어디까지 신장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 변대규
1960년 출생.
서울대 제어계측공학 박사.
과학재단·일진전자·삼성반도체·한국전력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
한·유럽 경영인 대상 수상. 한국벤처기업협회 수석 부회장. 무한기술투자 이사.

● 휴맥스
1989년 설립.
주요 제품은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셋톱박스).
자체 브랜드로 유럽 유통시장 점유율 1위.
지난해 11월 단일 품목을 연구 개발하는 벤처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 돌파.
2000년 매출액 1천4백억원(수출 99.9%), 순익 3백억원(잠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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