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집권 3년 지역 감정 더 꼬였다
  • 김은남 기자 (ken@e-sisia.co.kr)
  • 승인 2001.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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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감정이 역사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드는 예가바로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이다. 제8조에서 왕건은'차령 이남 공주강(금강) 밖(지금의 호남 지역)은 배역의땅이니 그곳 사람들에게는벼슬을 주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그러나 왕건은 전라도 나주 지역호족의 딸인 장화왕후를 비로 맞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2대 혜종을 낳았다. 전장에서 왕건의 옷으로 갈아입고 대신 죽은 신숭겸의 고향은전라도 곡성이었다. 이처럼 왕건주변의 핵심 인물들은 대부분 후백제 지역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훈요십조는 제8대 현종무렵 신라계 세력이 백제계 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호남 사람, 친교·혼인·동업 때 기피 인물 1순위로 꼽혀영남 정서, 5년 전 조사 때보다 악화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 지3년. 그렇지만 호남 출신은 여전히 가장사귀고 싶지 않고, 사돈 맺고 싶지 않고,동업하기 싫은 지역 사람이다. <시사저널>이 지난 1월6∼7일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전국 만20세 이상의 성인남녀 천 명을 상대로 벌인 전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시사저널>은 김영삼 대통령 집권 후반기인 199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출신지역 기피도를 조사했다. 지역 화합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현정권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아 보자는 것이 이번 여론조사의 주된 목적이었다.

5년 전 여론조사에서지역 감정은 크게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호남 대 비호남 구도였다. 지역 감정은호남 대 영남 구도에서 발생한다는 통념과달리, 당시 여론조사는 호남을 제외한 나머지서울·경기·영남·충청·강원 전지역이 고르게 호남 출신을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표참조). 다른하나는 영남 출신에 대한호남인의 거부감이었다. 비호남 지역 거개가호남 출신을배제하는데도 호남은 유독 영남에 대해서만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 호남 대 비호남 구도는, 강도가 다소 약해졌다고는 하나 거의그대로 재연되었다. 사람을 사귀거나, 자녀결혼·동업 상대자를 선택하는 세 가지 항목에서호남 출신이 꺼려진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2명꼴(18.9%)로, 비호남 지역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유석춘 교수(연세대·사회학)는 "정권이 바뀌었다 해도 사회화 과정을 통해내면화한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며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종이건, 여성이건,지역이건 특정대상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성립할 때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않다. 단지 영남인한테 사기를 당하면 '그럴 수도있겠구나'라며 특정 개인을 욕하는 데 반해 호남인한테사기를 당하면 기존 사회 문화적 편견에다개인의 경험을 결합하면서 '역시 아버지 말씀이 옳았어. 전라도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라는 식의 결론을 도출하곤 한다는 것이 유교수의 설명이다.


현정권 실정 탓, 반호남 정서 여전

현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부정적 여론 때문에 반호남 정서가 거의 바뀌지않았다는 분석도 있다."김대중 대통령이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지역 감정타파에 대한기대였다. 그런데 지난 3년간 이같은 기대가 깨지면서 이에 대한 실망감·좌절감이 호남 거부 정서로나타났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윤인진 교수(고려대·사회학)의 분석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시사저널>은 출신 지역 기피도와 함께 현정부 출범 후 지역 갈등에 대한의견을물었다.그 결과 과반수 이상(53.0%)은 김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지역 갈등이 완화될 것을기대했다고 응답했다. 그렇지만 3년이 지난 현재 지역 갈등이 완화되었다는 응답자는 18.8%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변화가 없다는 응답자는 59.9%에 이르렀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응답자도 19.4%였다(30∼31쪽 딸린 기사 참조).

그렇지만 '김대중 정권=호남 정권'이라고등치하는 것은 논리적비약이라는 것이정근식 교수(전남대·사회학)의 지적이다. 그는 호남을 희생양 삼아 일상적인불만을 해소하는한국 사회의 '집단 카타르시스' 구조에서반호남 정서가 지속되는 실마리를 찾았다.그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이래 정치적·경제적인 불만을 지역으로 치환해 해소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호남이 일상적인 불만을 배출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호남 대 비호남 구도에서 특히눈길을 끄는 것은 영남 아닌 충청·강원 출신에게서도 일관되게 호남인에 대한거부 정서가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비록 오차 범위 안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번 여론조사의 일부 항목에서이들은 영남 출신보다높은 반호남정서를 보여주었다."이번 조사에 나타난 충청·강원 지역 민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남 사람들은 오늘날 노골적으로 지역 감정을 드러내는 데 부담감을느낀다. 그런데충청·강원지역은 영남처럼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반호남 정서를 더 견고하게 유지해온 셈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영호남 권력 갈등의 이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온 이들지역의 소외의식을 더 방치해서는 안된다"라는것이 김성국 교수(부산대·사회학)의 지적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이들 지역의 정서가 시쳇말로 '자기들끼리 다 해 먹는다'는 피해 의식에서말미암았다면 반호남못지 않게 반영남 정서도표출되어야 이치에 맞다.그렇지만 충청·강원 출신의 영남기피율은 1.7∼2.8%로 지극히미미한 수준이다.윤인진 교수(연세대·사회학)는 이를'편승 효과'라고해석했다. 지난 40년간영남 지역은 정치·경제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도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같은 영남지배 구도에서는 충청·강원 또한 호남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일 수밖에없다. 그런데도 지배자를 심리적으로 동일시하려는 현상이나타나면서 호남에 대한 이들 지역의배타성이 강화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물과 사상> 독자 모임을 이끌고 있는 장용호씨(32)는 같은 맥락에서 이를 호남에 대한 '집단 따돌림'으로 해석했다.따돌림은 집단에서 가장 약한 자를상대로 행해진다. 내가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면 상대를 먼저 따돌리는 것이 수다. 이같은 법칙에 따라 충청·강원 출신이 앞장서 전라도에 돌을 던지고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고소득·고학력층일수록 호남인에 거부감 높아

지역 감정의 또 다른한 축인 영남에대한 호남인들의 부정적 정서는 이번여론조사에서 다소 약해진 것으로나타났다. 영남인을 사귀고 싶지 않다는 호남인은 1996년 9.7%에서올해 4.5%로 5.2% 포인트 줄었다. 이는1차적으로 호남 정권 창출에 따른 심리적 보상감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다른 해석도있다. 정근식 교수는 호남인과 영남인의 지역 감정이 애초부터 질적으로 달랐다고 주장했다.영남의 반호남 정서가 영남 패권주의에기반을 두었다면호남의 반영남 정서는 지역 아닌 정권에대한 반감의 성격이 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남에 기반을 둔 군부 정권에 대한호남인들의 비판적·저항적 정서가 지역 감정의 외관을쓰고 표출되었던 만큼 정권의 정통성이 회복된이상 반영남 정서는 해소될 수밖에 없다는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번 조사에서 또 한 가지두드러진 특징은 고소득·고학력층일수록 호남 출신에 대한거부감이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표 참조). 사귀기 꺼려지는 지역과 자녀 결혼·동업 상대자로 꺼려지는 지역 세 가지 항목에서 대학 이상 고학력자(20.5%)와 월수입 3백만 원 이상 고소득자(26.8%)의 호남기피율은 전체평균(18.9%)을 웃돌았다. 일반 사회 조사에서 이들 계층은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모범 답안'을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윤인진 교수의 지적이다. 그런데도이들 계층이이 정도 수준으로 반호남 정서를 표출했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여론 주도층이라고도 분류할 수 있는 이들 고학력·고소득 계층이 호남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두 가지로 분석했다. 하나는지난 40년간한국 사회 구조의 특성상 기득권층에영남 출신이많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는분석이다. 두 번째는 고학력·고소득층일수록 출신 지역에 따른불이익이나 차별을'현실적으로' 경험할확률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이를테면 막노동판에서야 출신 지역 때문에 불이익을받을 가능성이 적다. 그렇지만 사회적지위가 올라갈수록 본인의 노력 외에 학연·지연 따위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사회적 지위가 높은 백인일수록 흑인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역마다 상대적 박탈감 호소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가장 우려할만한 결과라면, 영남 지역의경우 현정권들어 지역 감정이 더 악화하는양상을 보였다는사실을 꼽을 수 있다. 김대중정부가 지역 차별 정책을 폈다고 생각하는 TK(대구·경북) 및 PK(부산·경남) 출신은 각각 65.0%와 67.3%로 전국 평균(49.9%)을 크게 웃돌았다.특히 TK 출신은 지역감정 조장에가장큰 책임이있는 전·현직 정치 지도자로 김대중 대통령을 꼽았다(34쪽 딸린 기사 참조).

지역마다 상대적 박탈감을호소한 것또한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우려할 만한 결과이다. <시사저널>은 이번 조사에 '현정권 출범 이후 주변 사람이 출신 지역 때문에 승진·인사·사업 따위에서 불이익을 당한 사례를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포함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의 20.1%가 손해를 본 사례를 알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손해를 당한 출신 지역에 대해서는 대답이 사방으로 튀었다.곧 TK(88.6%)·PK(86.0%) 출신은 말할 것도 없고 충청인(28.2%)은 충청출신이어서,강원인(50.0%)은 강원 출신이어서 제각각 손해를 보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현정권의최대 수혜자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호남 출신이어서차별을 당했다는 호남인 또한 47.8%에 이르렀다.

이같은 갈등 구도에서는 지역주의 선거 전략이 언제라도 먹혀들 수 있다. 사회적 편견에서 빚어지는 지역 감정의 악순환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근대적인 정치·선거·언론·교육 제도 개혁이 시급한 시점이다.


● 어떻게 조사했나
조사 기관 : (주)미디어리서치
대상 : 전국의 만20세 이상 성인 남녀
표본 수 : 1,000명
표본 추출 방법 : 비례할당 및 체계적 추출법
표본 오차 : ± 3.1%포인트(95% 신뢰 수준)
조사 방법 : 전화 여론조사
조사 도구 : 구조화한 질문지
조사 일자 : 2001년 1월6∼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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