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민 '해법' 가르치는 간디 학교
  • 경남 산청·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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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참여 등 학생 스스로 결정…대학 진학은 소질·능력에 맞게


교육 이민'이 사회 문제로 등장하면서 교육 문제 해법에 대한 논의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비평준화 해법이다. 상위 20%만 공부하고 하위 80%는 노는 '20 대 80 수업'을 평준화 교육이 초래했다면, 이제는 비평준화를 통해 하향 평준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 해법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조기 유학, 교육 이민, 비평준화 논의 모두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공부 잘하는 학생을 위한 해결책이다. 조기 유학을 보내거나 교육 이민을 갈 능력을 지닌 학부모는 전체의 1%를 넘지 못한다. 비평준화는 상위 20% 학생들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지만 남은 80% 학생들에게는 재앙이 될 뿐이다.


무너진 교실에서 그나마 싹수가 있는 아이들이라도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는 비평준화 주장은 일종의 '신자유주의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무너진 공교육을 대체하고 심각한 차별을 낳는 사교육을 극복하자는 대안 교육은 '교육 제3의 길'로 불린다. 80%의 '잊힌 아이들'을 천덕꾸러기로 만들지 않고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대안 교육의 모델을 발견하기 위해 경상남도 산청군의 간디학교를 찾았다.


대안 교육은 학교를 부정하고 '탈학교'를 선언한 홈스쿨링에서부터 공교육의 틀 안에서 전인 교육을 지향하는 정규 학교(57쪽 상자 기사 참조)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1곳의 대안 학교가 정부의 인가를 받아 운영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간디학교는 학교 부적응 학생이나 문제 학생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대부분의 대안 학교와 달리 평범한 학생 중에서 신입생을 뽑는 곳이다.


간디학교 건물은 네모 반듯한 일반 학교 건물과 달리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건물들은 형형 색색의 아이들 머리색깔처럼 서로 다른 색깔의 지붕을 얹고 있다. 옹기종기 조화를 이룬 그 모습은 다양함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내는 간디학교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간디학교의 특징은 공간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울타리가 없어 간디학교는 학교 밖과 학교 안의 구분이 없다. 학교 안팎이 모두 교실이고 놀이터이다. 교탁으로 선생의 공간과 학생의 공간이 나뉘어 있는 일반 학교 교실과 달리 간디학교 교실은 의자가 둥그런 원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공부하는 공간과 노는 공간이 따로 없고 심지어 교무실이 학생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수업선택권이 있어서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간섭할 부모가 없기 때문에 마음껏 놀 수 있다. 사랑과 자발성을 교육 철학으로 하는 간디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결정할 때까지 강요하지 않는다.


간디학교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밤 식구총회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일반 학교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이곳에서도 똑같이 발생하지만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풀어나간다.


누가 물건을 잃어버리면 간디학교 학생들은 3단계로 나누어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일단 훔쳐간 사람이 자수할 때까지 이틀 정도 시간을 준다. 그래도 나타나지 않으면 수색을 한다. 그래도 찾지 못하면 모두가 밖으로 나가서 뛴다. 범인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뛰는 것이다. 범인이 나오는 경우에도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누구인지 절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디학교에서는 얼마 전 교사가 학생을 때린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이 문제도 식구총회를 통해 무난하게 해결했다. 교사와 학생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다음 학생들은 원인을 제공한 학생과 폭력을 쓴 교사 둘 다 잘못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학생들은 교사와 학생에게 함께 등산하기를 해결안으로 제시했다. 관계를 되돌리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식구총회'에서 생활 규칙 만들고 지켜




이 밖에도 학생들은 여러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1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컵라면은 먹지 않기로 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기로 하되 피우는 사람은 끊는 기한을 정하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피우기로 했다. 축제를 마치고 막걸리 파티를 벌였다가 혼쭐이 난 후로는 술도 마시지 않기로 했다.


간디학교 학생들은 자유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잘한 규정이 많지만 지켜야 할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간디학교 아이들은 이런 규칙을 모두 잘 지킨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몸에 밴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도 요령 있게 해결한다. 책장이 부족하면 상자를 임시 책장으로 쓰거나, 옷장을 책장으로 대신 이용한다. 교재가 부족하면 서로 돌려 보거나 선배의 것을 물려 보면서 공부하기도 한다. 도서관의 책이 부족하자 곳곳에 편지를 써서 책을 얻기도 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구하고 목표를 분명히 세운 학생들은 공부에도 열심이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들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고 자신의 관심과 희망을 반영한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정미현양(19)은 음악치료사가 되려고 한다. 음악에 소질이 있고 심리학에 관심이 많으며 상처받은 아이를 상담하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을 잘 켜는 그녀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치료사 공부를 마치고 음악치료사로 나설 계획이다. 선진국에서는 음악치료사가 전문 직종으로 각광받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5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미 조사를 끝낸 상태이다.


미국에서 6년 동안 학교를 다녀서 영어에 자신이 있는 심은아씨(20)는 토익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갈 예정이다. 영어에 익숙한 그녀는 영문 시사 잡지를 보면서 공부하고 있다.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할 예정인 그녀는 요즘 영문으로 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있다.


정신대 할머니 그림을 책상에 올려놓은 이지선양(19)은 인권에 관심이 많아 인권운동가로 활동할 계획이다. 컴퓨터 영상을 전공하려고 하는 김동완군(19)은 밤낮 없이 컴퓨터에 묻혀 살고 있다. 도예를 전공하겠다는 이동완군(19)은 새벽까지 도자기를 굽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세상은 앞으로 우리 같은 사람 필요로 할 것"




후배들을 위해 '오, 수정'이라는 정자를 만들어 준 간디학교 1회 졸업생 16명도 모두 대학과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다 하고 있다. 수능시험은 그리 잘 보지 못했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한 간디학교 학생들은 논술과 면접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11명이 대학에 진학했고 1명이 미국에 유학을 갔으며 4명은 각자 자신이 할 일을 찾았다.


간디학교에 다니던 3년 동안에 그 전 16년 동안 배운 것보다 더 많이 배웠다는 이영석씨(20·한신대)는 사회운동가가 될 계획이다. 자신이 간디학교에서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기 위해서이다. 간디학교대책위 졸업생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요즘 간디학교에서 중학 과정을 폐쇄하려고 하는 교육청의 조처를 되돌리는 운동을 하고 있다.


1등 한 명을 빼고는 모두가 들러리를 서는 교육이 싫어서 간디학교에 갔다는 박소현씨(20·한신대)는 광고학을 전공하고 있다.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부추기는 광고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공익 광고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창의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신 있어 한다.


간디학교가 자리 잡은 둔철산 중턱은 돌멩이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매서운 곳이다. 매운 바람을 맞으며 자란 간디학교 학생들은 "앞으로의 세상은 우리 같은 사람을 더욱 필요로 할 것이다"라고 당차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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