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날로 까다로워지는 호주의 '이민자 선별'
  • 김지환〈The Sydney Korea Herald〉편집국장 ()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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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에 한번꼴 정책 바꿔…'유학 천국'도 옛말


약 1년 전 가족과 함께 시드니로 건너와 건설 분야에서 일하는 ㄱ씨. 그는 자녀의 학교 문제로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다. 그가 밤잠을 설치는 이유는 단 하나,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이다. 관광 비자로 호주에 입국한 그는 이미 체류 기간을 넘겼다. 호주 국적이 아닌 경우 당연히 학교에서 비자를 요구한다. 불법으로 호주에 남아 있는 이들의 자녀에게 입학을 허용하는 학교는 없다.




오래 전 시드니로 건너온 ㄴ씨 역시 마찬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호주에 입국할 때만 해도 자녀가 어려 학교 문제로 고민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입학할 나이가 되기 이전에 합법적으로 호주에 체류할 비자를 취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불법 체류자, 학교에 자녀 못보내


ㄱ씨나 ㄴ씨와 같은 경우는 시드니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처지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일단 가족과 함께 호주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에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1997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이후 호주에 입국하는 이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나름의 기술이나 자금을 바탕으로 사업 비자 또는 기술 분야 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경우도 있지만, 3개월 관광 비자로 입국한 뒤 이를 연장하면서 불법으로 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재 시드니에 거주하는 한인은 대략 5만명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는 일시 체류자와 유학생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제외하고 호주 인구 센서스를 바탕으로 나오는 수치는 2만여 명에 불과하다. 물론 이 숫자는 모두 호주 시민권을 받은 호주 국적 한인이다. 국적은 한국이되 호주에 영구히 체류할 수 있는 영주권자는 제외되어 있다. 영주권자까지 포함하면 이 수치는 3만명 선이라고 추정된다.


이밖에 호주에서 나름의 삶(불법 체류이든, 아니면 다른 체류 비자를 가지고 있든)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방법으로 영주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호주 영주권을 취득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다. 호주 이민 업무는 연방 정부 이민부 소관이다.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겠지만 호주 이민부는 철저히 국가 이익에 바탕을 두고 이민 정책을 세운다. 그러다 보니 가장 자주 바뀌는 것이 이민 정책이다. 거의 6개월에 한번씩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사업 비자 소지자 자녀들에 대한 학비 징수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업 비자를 소지하고 호주에 체류하는 이들의 자녀는 무상 교육을 받았지만 2000년 7월1일 이후부터는 일정 금액의 학비를 부담하고 있다.


학생 비자를 받기도 까다로워졌다.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와 달리 호주가 유학생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단지 학비가 싸서라기보다는 이들에게 주 20시간 동안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업과는 무관하게 학생 비자를 받아 입국한 뒤 사설 칼리지(학생 비자 발급이 가능한)에 등록하고는 아예 돈벌이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이 IMF 체제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출석을 확인하지 않는 칼리지는 수두룩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호주에 체류하며 '돈을 버는' 일도 이제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각 대학이나 칼리지에 등록된 유학생의 경우(학생 비자를 받은 이들) 이민부 전산망과 연계되어 출석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게다가 학생 비자를 받아 가족 단위로 입국하기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장기 체류를 목적으로 입국하는 이들에 대한 규제가 이처럼 까다롭게 바뀐 것은, 앞서 말했듯이 '철저한 계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런 방법으로 입국한 뒤 호주에 영주할 기회를 찾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호주 이민은 크게 사업 이민과 기술 이민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업 이민의 경우에는 호주에서 사업을 하기 위한 일정 규모의 투자액을 요구한다. 반면 돈만 있으면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기술 이민의 경우 호주 정부(연방정부 이민부)가 고시한 각 기술 분야의 자격증(또는 일정 경력)과 호주 현지 회사의 스폰서십(Sponsor ship)이 있어야 한다.


현재 이민부의 기술 이민 범주에 명시된 기술 분야는 수백 가지에 달한다. 그만큼 호주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분야가 많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특히 현재 호주가 가장 심각하게 인력난을 겪고 있는 IT 등 고급 기술 분야가 있지만, 요리사 등도 포함되며, 신문 편집 분야도 이 기술 범주에 해당된다. 필자의 경우도 '신문 편집' 기술(?)로 호주에 입국한 사례이다. 이는, 호주가 1백30여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이민 국가여서, 각 민족 커뮤니티가 고유 언어의 신문을 발행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술 이민 역시 까다로워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전에는 신청자의 경력 서류(영문으로 인증된)만을 검토했으나 지금은 실제로 근무했음을 증명하는 각종 세금 납부 증빙 서류까지 요구한다.


현지 조사 필수…'무작정 출발'은 불행 자초


결론을 내리자면 호주에 이민하려면 합법적으로, 그리고 철저한 준비 단계를 거쳐야 한다. 물론 이런 준비 없이 이민을 떠날 사람은 없겠지만, 현재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또는 현지인들의 말만을 믿고 무작정 떠날 경우 실패하기 십상이다. 현지 이민 변호사 또는 이민 대행사를 찾아 더 손쉬운 방법을 알아보고, 또 현지 시장 조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호주는 계속적으로 이민자를 수용해야 할 처지이다. 갖가지 체류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는 것은 늘어나는 불법 체류자를 막고 호주가 필요로 하는 분야의 인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다.


호주나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이민자 가운데는 골프와 낚시로 소일하는 이가 적지 않다. 천국에서 산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사실 당사자들에게는 여간 고통스런 일이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국가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이민이다. 이질적인 문화에 적응하고 언어를 익혀야 한다. 이런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이민 생활은 지옥과 같다. 돈이 많다고 손쉬운 사업 이민을 택했다가 무기력하게 시간만 죽이며 살아가는 이가 많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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