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파괴만으로는 안된다"/서울대 재학생 방담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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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재학생 8인 '서울대 개혁' 방담/
"대학 교육 전체 틀 다시 짜야"


서울대 재학생들이 꾸린 인터넷 매체 〈SNUnow〉(www.snunow.com)에서 활동하는 학생 8명이 서울대개혁론을 놓고 토론했다. 매체를 꾸리는 열성파인 만큼 이들이 서울대생의 평균 감성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SNUnow〉의 표어는 '쓸데없는 사람은 오라.' 그러나 그들은 쓸 데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참석자는 이승희(철학과 99학번) 신샘이(심리학과 00학번) 조충환(영어영문 대학원 00학번) 란성호(경제학과 99학번 ) 조귀동(경제학과 01학번) 김현준(재료공학부 97학번) 신호철(경제학과 95학번) 김남훈(심리학과 97학번).




기자 : 서울대를 보는 시선이 따갑다. 친구들 반응은 어떤가?

김남훈 : 생각을 별로 하지 않거나, 균열을 겪는다. 게시판 같은 곳에서는 당연한 기득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란성호 : 자괴감을 갖는 경우도 많다. 학벌 구조가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자기는 이미 그 정점에 앉아 있다는 것 때문에.

김남훈 : 오호라, '기득권이고 싶지 않아도 이미 기득권인 자'의 자괴감?

이승희 : 나는 고등학교를 안 다녀서 입시 지옥에 대한 경험이 없다. 입학 후 다른 대학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학벌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고, 나는 과외 한 건이면 되는데 그 돈을 버느라 우체국이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을 보면 왠지 미안하다. 서울대생이라는 것을 알면 사람들 눈빛이 달라져서 숨기게 된다.


기자 : 외부의 개혁론을 어떻게 보는가?

란성호 : 서울대에 턱없이 유리한 조건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기득권자의 의무만 환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신호철 : 누리는 것이 사실인 만큼 의무감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김남훈 :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인데 동의할 수 없다. 바깥에서는 '서울대 출신이 허튼 짓하면 되겠어?'라는 식으로 비난할 때나 쓰이고 안에서는 서울대가 누리고 있는 지위를 제대로 돌아보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조충환 : 글쎄. 전 총학생회장인 허 민씨가 '서울대라고 해서 다를 게 있느냐'는 식의 태도를 취했는데, 체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기득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허위 의식이다.

이승희 : 서울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도덕적 의무감을 요구하는 것도 지나치다. 정말 지도적 위치에 오른 다음이라면 모를까.


기자 : 장회익 교수의 제안에 대해서는?

조충환 : 내부의 목소리라는 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민영화론이 놓치는 구석을 잘 짚었다. 교육의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또 결국 서울대 야욕을 채우려는 방편이라는 혐의를 받겠지만, 수능 고득점자를 싹쓸이함으로써 빚어지는 문제에 착목했다는 점도 높이 산다(일동 끄덕끄덕).

이승희 : 민영화론이 깔고 있는 전제가, 서울대 출신이 누리는 권력이 결국 국가 지원에서 말미암는다는 건데, 그것이 다는 아니다. 막말로 '이대로' 민영화한다고 서열 구조가 깨질까?

란성호 : 돈 되는 과만 살아 남아 독점을 강화하겠지. 그럼, 쪼개서 민영화하면 되겠네? 기초 학문은 국·공립대 형태로 아우르고, 자본이 돈을 댈 수 있는 분야는 민영화하고.

조귀동 : 서울대에 지원의 울타리를 걷어내라는, 이른바 공정경쟁론은 이 사안을 세칭 일부 명문대와 예비 명문대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다. 연·고대와 일부 명문 사립대 좋으라고 서울대 개혁하나? 대학을 가지 못하는 사람이나 자신보다 아래로 간주되는 대학의 처지는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다.

신호철 : 그거 문제 발언이다. 서울대개혁론이 1등하고 붙어 보고 싶은 2등 이하 '잠재적 명문대'의 시기심이라는 건가? 그들도 전체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조귀동 : 인정한다. 내 문제 의식은 과연 인위적인 서열 완화가 만병통치일까 하는 것이다. 모두가 대학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어서 중등 교육이 피폐해지는 것이지, 대학에 서열이 있는 것이 원인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입시열이 대학의 서열 경쟁을 부추기는 거고.

신호철 : 획일화한 시험에도 장단점이 있다. 과거에는 개인의 조건이 어떻든 똑같은 기회를 주는 꼴이어서 결과적으로 계층의 유동성을 높여주었다. 전형 다양화로 가닥을 잡은 것은 좋다. 하지만 현행대로라면 위험도 크다.

란성호 : 토익 점수에 가중치를 두거나 제2 외국어 특기생을 뽑는 걸 보면 어이가 없다. 미국 갔다온 사람에게 유리하고, 결국 돈 많은 집만 좋은 일 아닌가.

신호철 : 대학이 예비 비즈니스맨을 길러내는 곳이라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 총장님은 그런 생각인 것 같다(일동 웃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글로벌 에티켓 교육을 했다. 포크와 나이프 쓰는 법, 외국인과 대화하는 법 등. 서울대를 '글로벌 시티즌' 양성소로 보는 거다.

김현준 : 혹시 자신들이 유학갔을 때 창피를 당했던 것 아닐까?(웃음).

김남훈 : 요새는 성공회대학이 국립 대학 같다. 전형 방식도, 대학의 역할에 대한 사고방식도.

신호철 : 아, 민영화론 정말 걱정스럽다. 학교 안에서도 이른바 서울대 발전주의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내가 〈대학신문〉 편집장 시절 총장과 인터뷰를 했는데 총장은 종합 대학의 틀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돈을 끌어들여 더 키우면 키웠지 몸피를 줄일 생각이 없는 것이다.

김남훈 : 음, 문제는 사이즈로군.



기자 : 교수협의회 회장은 몹시 불쾌하다는 반응이던데.

김남훈 : 아, 그 분? 서울대를 독도로 옮기자고 하면 솔깃해 할 거다(웃음).

기자 : 교육의 질에 대해서. 동종 교배로 활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에 공감하는가?

란성호 : 아마 아이비 리그 동종 교배가 더 심각할 걸? 나는 경제학과인데, 유학파가 그쪽에 쏠려 있어 흐름이 치우친다. 지금 어느 특목고에는 해외 유학 특별반이 있다.

조귀동 : 소매상한테 사느니 도매상한테 가서 사오겠다는 거지(일동 웃음).

김남훈 : 이대로 가면 고등학교 때 하버드로 간 사람이 서열 0순위가 되겠네?

신호철 : 대학원에 다른 대학 출신 비율이 높아졌지만 아직 활력이 커지는 기색은 옅다. 교수들은 드러내지는 않지만 술자리에서는 '역시 서울대생이 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말하곤 한다.

조충환 : 학벌 신화의 한 예다. 맥락에 익숙하니까 쉽게 따라잡는 것일 뿐, 교수들 생각만큼 차이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학생들은 다른 대학 출신 교수의 능력에 대해 생각조차 안한다. 듣고 싶은 분야의 전문가가 부족한 것이 문제지.


기자 : 서울대 안의 차이에 대해 말해보자.

란성호 : 공대는 직장인 못지 않게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숫자도 엄청나다. '학생회관에서 돌을 던지면 공대생 머리에 맞는다'는 말이 있다. 어이 공대생!

김현준 : 공대를 자꾸 떼내자고 하는데, 참(웃음). 나는 과학고 출신이다. 과기대나 포항공대에 가려 했는데 부모님이 서울대를 가야 한다고 하셨다. 와서 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어 좋았다. 공돌이가 아니라 뭔가 생각해야 한다는 자극도 받고, 음(일동 웃음). 또 공대가 돈 끌어와서 인문대도 같이 살면 좋은 것 아닌가?

조충환 : 내가 네 덕분에 공부하는구나(웃음).


기자 : 서울대 학생의 계층이 상승했다는 것을 실감하나?

일동 : 물론. 노는 물이 다르다.

이승희 : 압구정동·청담동으로 가는 친구들이 많다.

신호철 : 실제 소득 수준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출신 성분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문화가 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예전에는 졸업할 때까지 친구 부모의 학력이나 직업을 모르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얼마 전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서울대 출신인 비율이 90%인 과가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수치도 충격적이었지만, 도대체 그런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드러내놓고 묻고, 끼리끼리 다닌다.


기자 : 중산층 이상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을까?

란성호 : 세금의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의무감이랄까, 그런 것을 놓치기 쉽다. 한 예로 적어도 서울대 출신으로 최고 사설 로펌에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동 : 왜? 전문성을 발휘하는 게 공익에 배치되나? 김민수 교수 재판을 보자. 학교와 김교수가 아니라 전문성을 가진 큰 로펌들끼리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란성호 :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동 : 와! 저 불타는 사명감. 조국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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