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풍' 불길, 한나라당으로 '넘실'
  •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1.06.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혁파, "국보법 등 자유투표 실시" 소리 높여…
지도부, '여야 개혁 공조' 경계


도미노 이론은 한국 정치권에도 유효한가. 한나라당 서상섭 의원은 "정풍 파동으로 민주당의 개혁 기조가 강화되느냐 아니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 개혁파의 입지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민주당 정풍 파동은 한나라당에도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개혁파의 움직임이 부산해지고 있다. 이들이 당장 벼르는 것은 국가보안법 등 개혁 입법 문제. 김원웅 의원은 "벌써 두 달 전에 20여 의원이 서명해 당 지도부에 개정안을 전달했는데 아직 공식 논의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부영·안영근·김부겸 등 국가보안법 개정안에 서명한 의원들은 6월4일 모임을 갖고 6월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자유 투표에 맡겨야 한다며 당 지도부를 압박했다.


이외에도 이들 개혁파 의원들은 재벌 정책의 편향성, 국가혁신위원회 구성의 보수성, 의사 결정 과정의 비민주성 등을 문제 삼을 생각이다. 서상섭 의원은 "본회의 30분 전에 형식적으로 개최하는 의원 총회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면서 비민주적인 당 운영을 비판했다.


"총재 제도도 폐지하자"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은 민주당 정풍운동의 불씨를 여야가 합작하는 제도 개혁 운동으로 이어갈 생각이다. 이들이 제도 개혁의 초점으로 삼고 있는 것은 자유 투표 상시 도입. 서상섭 의원은 "여야 총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현재의 체제에서 국회의원 2백73명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라면서, 영국 의회처럼 '언더라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드시 당론에 따라야 할 사안, 가능한 한 당론을 존중하기를 권하는 사안, 의원 소신에 따라 자유 투표를 할 사안 등을 구분해 의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의원은 조만간 '정치개혁모임' 차원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자유 투표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아예 발본 색원 차원에서 총재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원웅 의원은 민주당 문제의 본질이 인사 문제가 아니라 제왕적 총재 시스템에 있다면서 총재 중심의 맹주 정치가 한국 정치에서 최대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의 사정도 집권 여당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김의원은 총재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당장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대선 국면 등에서 여야 개혁파 의원들이 이를 본격 제기해야 한다며 지구전을 강조했다.


민주당 정풍 사태가 굴러갈수록 한나라당 지도부의 반응도 달라졌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소장파가 처음 당정 쇄신을 치고 나올 때만 해도 '이성적인 목소리, 한 줄기 희망'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를 격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민주당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사태의 성격을 권력 다툼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와 소장파를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상대방의 집안 싸움을 여유있게 즐기는 사이에 한나라당이 1주일 이상 언론에서 거의 잊힌 존재가 되어 버리자 다시 포문을 연 것이다.


한나라당 개혁파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일단 진압보다는 수용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6월4일 총재단회의에서 국가보안법 문제를 곧 공론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오 총무도 주요 사안의 경우 본회의 당일 이전에 의원 총회를 열어 자유 토론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대응이 내부의 정풍운동을 염려하는 차원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정치개혁모임'이나 '화해와 전진 포럼' 등 여야를 뛰어넘는 초당적 모임이 결성되는 등 '인화 물질'이 널려 있어 작은 불씨라도 방심하면 안된다는 경계심이 강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