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감염 '무방비' 병 떼러 갔다 병 붙는 병원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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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가운데 3명꼴, 입원중 발병…감염률도 '쉬쉬'


얼마 전 이름 난 대학 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던 환자 박 아무개씨(33·여)가 입원한 지 두 달 만에 사망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던 박씨는 뇌종양이 줄고 있어 치료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씨는 암 세포가 아닌 폐렴균에 목숨을 잃었다.




박씨처럼 병을 고치기 위해 입원했다가 도리어 병원 내 감염으로 다른 병을 얻어 죽거나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항암 치료를 받는 암 환자는 물론 피부병에 걸려 입원 치료를 받다가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어 세균성 뇌막염에 걸려 죽는 환자도 있다.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가 1996년 15개 대학 병원 및 종합 병원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원에서 환자 100명 중 3명 (3.7%) 이상이 병원에서 새로 병을 얻는다. 부위별 감염률은 요로 감염이 전체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고, 폐렴이나 수술 부위 감염도 적지 않다(표 참조).


병원 감염은 의료 선진국인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해 미국질병통제센터는 미국에서 병원 내 감염으로 다른 병을 얻는 환자가 매년 2백만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8만8천명은 목숨까지 잃는다. 병원 내 감염으로 인해 추가로 드는 의료 비용도 연간 50억 달러나 된다. 영국 병원에서는 해마다 5천명이 입원 중 병원체 감염으로 사망하고, 매년 10만명 이상이 병원에서 치명적인 병원균에 감염되고 있다. 영국 보건 당국은 이 치료에 매년 16억 달러를 지출한다.




부위별 병원 감염률



















요로 감염 폐렴 수술 부위 감염 혈류 감염 피부 및 연조직 감염 소화기계 감염 기타
30.3% 17.2% 15.5% 14.5% 8% 8.4% 6.4%


감염 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보통 건강한 사람에게도 포도상구균이 30% 가량 포진해 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세균이 몸 속으로 들어가도 심각한 감염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상처가 나거나 면역 기능이 떨어진 사람. 이들은 세균에 노출될 경우 치명적이다. 병원에서는 몸 안에 들어가는 의료 기기나 수술 도구 등을 통해 감염될 뿐 아니라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와의 접촉에 의해서도 병에 걸린다. 병원에서 감염되기 쉬운 까닭은, 환자들이 면역 기능이 낮고, 병원에 서식하는 세균 종류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항생제를 남용하면 항생 물질에 듣지 않는 새로운 세균이 발생해, 병원 내에 서식하면서 병원 감염률을 높인다.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상구균(MRSA)이 대표적인데, 주로 병원 내에 기생하면서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나 어린아이·노인과 같은 약자를 공격해 최악의 경우 죽음까지 초래한다. 한국은 현재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구균(폐렴이나 뇌막염의 원인균)의 페니실린 내성률이 80%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거의 모든 항생제에 듣지 않는 이른바 슈퍼 박테리아 비율이 같은 계열 세균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될 경우 위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병원 내 감염에 대한 병원측의 대처는 매우 미온적이다. 1999년 보건복지부가 40개 종합 병원의 병원 감염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감염 감시 활동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병원은 18곳에 불과했다. 서울 중앙병원 감염관리실 정재심 간호사는 "의료진이 손만 잘 씻어도 감염률을 크게 낮출 수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바쁘거나 번거롭다는 핑계로, 또는 인식 부족으로 의료진조차 '환자를 볼 때마다 손을 씻는다'는 간단한 규정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감염내과 바로 옆에 암 병동




면역력이 약하거나 감염률이 높은 환자는 격리 입원시켜야 하는데, 이 또한 지켜지지 않는다. 결핵이나 홍역·풍진·뇌수막염, 항생제 내성균과 감염성이 높은 피부 감염 환자들은 1인실에 격리 수용해야 한다. 또 결핵이나 홍역·뇌수막염 환자가 이동할 때에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지침을 제대로 지키는 병원 또한 많지 않다. 한 대학 병원의 경우 감염 질환자로 붐비는 감염내과 바로 옆에 항암 치료로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환자들이 입원한 암 병동이 붙어 있다. 대개의 병원이 1인실보다 다인실 병동이 많아 격리가 필요한 환자를 일일이 구분하기 힘든 것이다.


환자 상태가 위독한 중환자실에서조차 격리 지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환자실에 격리 병실이 따로 마련된 병원도 많지 않을 뿐더러 최소한 구역 정리조차 하지 않는 병원이 태반이다.


그나마 감염관리실을 따로 두고 일상적인 감시나 관리 활동을 펼치는 병원은 나은 편이다. 대개는 이름뿐인 감염관리위원회만 설치해 놓은 정도이고, 감염 사고가 발생해도 쉬쉬한다.


이처럼 병원들이 병원 내 감염 관리에 소홀한 근본적인 원인은 '돈'과 '법'에 있다. 감염관리실을 설치하려면 전문의와 감염관리 전문 간호사를 따로 채용해야 하는데, 병원측이 이를 부담스러워한다. 게다가 감염관리실을 설치하는 것이 권고 사항일 뿐이고 법적 강제력이 없는 데다, 병원 내 감염률을 발표하지 않아도 되므로 병원이 구태여 적극적으로 감염 관리에 나서지 않는다. 사고가 나도 적당히 타협하거나 덮어두면 병원 처지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중앙병원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병원 내 감염관리실을 설치하고, 병원 내 감염률을 발표했다가 된통 당한 경험이 있다. 다른 병원들이 모두 감염률을 쉬쉬하는 상황에서 공개했기 때문에, '서울 중앙병원에 가면 병이 옮는다'는 오해를 샀던 것이다. 그러나 서울 중앙병원은 의료계 안팎에서 '병원 감염 관리를 가장 잘 하는 병원'으로 꼽힌다.


감염 관리를 할 만한 전문 인력도 크게 부족하다. 서울 중앙병원 감염관리실 김양수 박사(감염내과)는 "감염내과 전문의가 주축이 되어 관리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감염내과 전문의가 모두 40명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병원 내 감염률을 줄이려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정책적으로 감염 관리에 드는 인력과 비용을 일정 부분 지원하면서 법으로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 내 감염의 70%는 예방이 불가능한 불가항력적인 일이라는 것이 의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손씻기와 격리 입원 같은 지침에 조금만 주의해도 감염률의 30%는 금세 낮출 수 있다고 한다. 한국 병원과 보건 당국은 인력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30%의 인재'를 줄이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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