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엎친 데 덮쳤지만 침몰은 없다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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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심리·소비 위축으로 앞길 험난…'파탄' 가능성 높지 않아
"경제가 큰일입니다."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비행기 테러로 세계가 경악했던 9월12일, 텔레비전을 보던 민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같은 날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내리막세에 있는 한국 경제가 이번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며 중·장기적인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한국 경제의 앞날이 더욱 어두워졌다는 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면 '경제는 심리'라는 명제를 되새겨 볼 때 경기가 예상보다 더 얼어붙을 가능성도 있다. 위험성을 감지한 김대중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라"며 진두 지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세계 대공황이 온다'거나 '한국 경제가 침몰한다'는 주장은 위기를 과장한 측면이 강하다. 미국이 어떤 식이든 경제 회복을 위한 조처를 내놓을 것이 분명하고, 영국·일본 등 주요국이 이미 돈을 풀어 경기 회복을 꾀하는 각종 조처를 쏟아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8월 말 현재 외환 보유액이 9백90억 달러로 사상 최대이고, 총외채는 12개월째 가장 낮은 수준(7월 말 현재 1천2백54억 달러)을 기록하는 등 안정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이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심리적인 위축으로 말미암아 소비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올 8월의 백화점 매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 할인점 매출은 4.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들은 10% 이상 증가해야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며 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테러 사태로 이미 한국 경제는 상당한 피해를 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9월14일까지 수출 피해액이 3천3백만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최소한 25억 달러 이상 손실을 보리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한 관계자는 손실이 이보다 3∼4배 더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사태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미국인들의 소비 심리 위축은 길게 보아 큰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온기선 동원경제연구소 이사는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소비 위축이라고 진단한다. 이로 인해 저성장·고물가로 표현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대미 수출 비중은 총수출의 20% 정도이고,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대표적인 업종은 자동차·반도체·의류·컴퓨터이다.


장기간 경기 침체로 개인 파산 잇따를 수도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미국의 소비 위축으로 인해 자동차와 정보기술(IT) 분야가 타격을 받으면서 경제 침체 상태가 계속되어 실업 사태와 개인 파산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특히 경제 상황이 악화해 은행들이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자금을 회수하려 들 경우 경기는 급속히 얼어붙을 것이다. 올 8월까지 은행권의 가계 대출 증가액은 이미 22조원을 넘어서 지난 한 해 동안의 증가액을 넘어선 상태이고, 기업 대출 증가액(11조원)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미 미국 경기가 나빠질 대로 나빠진 만큼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9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세는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추경 예산 조기 집행이 거론되고 있으나, 문제는 집행 자체보다도 돈을 어떻게 돌게 할 것인가이다. 현금 흐름과 생존 우선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외환 위기 때보다 더한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의 이러한 위기 의식은 투자 기피와 안전 위주의 기업 운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9월12일 '미국 테러 쇼크'라는 분석 자료에서 국제 자금의 국내 유입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만약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등 아랍 국가를 상대로 공격에 들어간다면 한국 상황은 어떻게 될까. 기름값이 폭등해 물가가 급등하는 등 상당한 어려움에 처하리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10년 전 43일에 걸친 걸프전이 경제에 미친 영향은 예상보다 적었다. 대우증권 자료에 따르면, 알루미늄 등 주요 원자재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기름값은 걸프전 이전에는 상승했으나 발발한 뒤에는 하락 안정세를 보였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걱정하는 것만큼 우리 경제가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인들은 부채를 줄이는 등 '개인 구조 조정'에 나서고 정부는 현대투신이나 하이닉스 등을 차질 없이 처리해 경제 체질을 강화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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