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 역풍 '접속 증후군'
  • 신호철·차형석 기자 (eco@e-sisa.co.kr)
  • 승인 200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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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접속 강박증' 갈수록 심각
중고생 75% "핸드폰 없으면 불안"
인터넷 중독자 7백만명 추산
바로 옆 교실에 있는 친구를 직접 찾아가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일부 고등학교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도 핸드폰을 꺼놓지 않는다. 중·고생 10명 가운데 7명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한 달 동안 문자 메시지를 4천 통이나 날리는 중학생이 있는가 하면, 월 사용료가 100만원이 넘는 20대 초반 여성도 있다. 인터넷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최근에는 2천4백만 명에 달하는 인터넷 이용자 가운데 7백만명이 '중독'이라는 연구 발표가 나왔다. 사이버 주식과 사이버 섹스로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접속 강박증'에 걸려 있는 셈이다. 〈시사저널〉은 정보화 사회 선진국의 그늘인 핸드폰·인터넷 중독 실태와 그 대책을 살펴본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ㅈ중학교 3학년 이민호군(16·가명)은 얼마 전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났다. 핸드폰 사용료로 16만원이 청구되었기 때문이다. 이군의 핸드폰 요금 내역 중 휴대폰 할부금과 기본료·통화료는 모두 4만원 정도. 나머지 12만원은 문자 메시지 이용료였다. 한 달 동안 문자 메시지를 4천 통이나 사용한 것이다.


이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자를 날렸다. 수업 중에도 선생님 몰래 한 손으로 능숙하게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평소 학교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군에게 핸드폰 접속은 중요한 취미 생활이 되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나 다른 반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통화하는 것보다 문자 메시지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라고 말하는 이군은 수업 시간 내내 '접속중'이다.


수업 시간 내내 문자 메시지 날리고 또 날리고…


핸드폰은 청소년들에게는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다. 핸드폰의 용도가 40대에게는 '걸고 받기', 30대에게는 '걸고 받고 음성 듣기', 20대에게는 '걸고 받고 음성 듣고 문자 보내기'라면, 10대에게는 이러한 용도에 '개성 표현하기와 친구 사귀기'가 더해진다.


지난 11월26일,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발표한 연구 보고서 〈청소년의 휴대폰 활용 실태 및 사회학적 의미 고찰〉은 청소년들의 핸드폰 활용 실태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전국 10개 시·도의 중·고교생 2천3백39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고교생 1백명 중 67명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75%는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80%가 '통화보다 문자 메시지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말해, 문자 메시지가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의사 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의 핸드폰 사용에 대한 기성 세대의 시선은 대체로 곱지 않다. 서울 용산구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는 민재근씨(50·가명)는 큰아들이 신용 불량이라는 통지를 받은 후부터 청소년들의 핸드폰 사용이 영 못마땅하다. 작은아들 친구들이 큰아들 명의로 핸드폰 3개를 발급받아 흥청망청 사용하고 돈을 내지 않은 것이다. 민씨는 "핸드폰을 2∼3개월 쓰다가 연체가 되면 버리고, 또 다른 핸드폰에 가입해 사용하다 발신이 안 되면 또 사는 요즘 애들이 핸드폰 중독자가 아니고 무엇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핸드폰 요금 때문에 아들이 탈선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핸드폰 중독 현상'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서도 나타난다. 서울 양천구에 살고 있는 김영숙씨(20·가명)는 요즘 핸드폰이 없어 '금단 증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까지 별다른 직업이 없이 지내는 김씨는 최근 핸드폰 요금이 연체되어 '접속 중지 상태'이다. 석 달 동안 사용 요금은 60만원. 심심할 때마다 문자 채팅을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핸드폰 요금이 지불 능력을 벗어나 있었다.


잠이 안 오면 이불 뒤집어쓰고 핸드폰으로 문자 채팅하는 것이 낙이라는 김씨는 "한 달에 핸드폰 요금이 100만원 나온 친구에 비하면 나는 별거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요금 때문에 불안해 하면서도 계속 쓰게 된다. 핸드폰에는 분명 중독성이 있다"라고 하면서도, 곧 아버지 명의로 정액제 핸드폰을 살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핸드폰 없이는 못 산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핸드폰 5개 가진 마니아도




문자 메시지 이렇게 많이 보낸다(단위 : %)




















































구분 여중고생 남중고생 전체
5회 이하 20.2 25.2 22.6
6∼10회 28.2 28.7 28.5
11∼15회 10.9 8.9 9.9
16∼20회 16.7 15.6 16.2
21∼25회 2.2 1.8 2.0
26∼30회 9.2 8.2 8.7
31∼50회 6.9 5.0 6.0
51회 이상 3.6 4.2 3.9
무응답 2.1 2.3 2.2
(청소년보호위원회(2001.10)


최근 청소년 핸드폰 활용 실태를 조사한 박길성 교수(고려대·사회학과)는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응답이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서도 비슷한 정도로 나온다고 말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핸드폰 마니아' 정윤석씨(28·IT관련 업체 근무)는 집에 핸드폰을 놓고 오면 불안감이 들어 퀵 서비스를 시켜서 회사로 가져오게 할 정도다.




정씨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은 가정용·업무용·친구용으로 총 5개. 정씨의 손을 거쳐간 핸드폰만도 50개가 넘는다. 매일 벨소리를 두 번씩 바꾼다. 한 달 휴대폰 이용료가 50만원이 넘게 나온다. 정씨는 "술 담배를 안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유흥비로 쓰는 정도와 비슷하게 통신비를 지출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 통신업체에 근무하면서부터 모바일 인터넷에 관심이 많았다. 마니아 기질이 있어서 새로운 기능을 담은 기능을 지닌 핸드폰이 나오면 서비스 업데이트를 위해 바로 핸드폰을 교체했다.


정씨는 '핸드폰 중독'을 마치 사회 문제인 것처럼 보는 시각에 불만을 털어놓았다. "핸드폰을 쓰는 것은 놀이 문화와 같다. 몇 천만원을 들여 오디오나 디지털 시어터를 꾸미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걸 중독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정보 통신이 발달해 자연스레 정착된 젊은 사람들의 새로운 생활 양식을, 문자 메시지나 인터넷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기성 세대의 관점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용인정신병원 하지현 정신과장(35)은, 핸드폰에 빠져드는 이유로 이동성·독점성·즉각성을 든다. 핸드폰은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쓸 수 있고, 컴퓨터는 여럿이 함께 쓰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철저하게 혼자 '쥐고' 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방으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 표현 욕구를 쉽게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박길성 교수는 핸드폰 중독에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루 평균 열 통화 이상 통화를 하는 학생이 전체 학생의 20% 정도였고, 문자 메시지를 하루에 50회 이상 보내는 학생도 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 양상은 걱정되는 대목이지만 그렇다고 중독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다." 청소년 문제와 핸드폰 사용을 연결해 생각하려는 것은 기성 세대의 편향적 가치관일 수 있고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가상 섹스 즐기다 현실 섹스는 불감증




핸드폰 중독이든 인터넷 중독이든 공통점은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결해 있으려는 접속 욕구가 원인이라는 점이다. 핸드폰 과다 사용자들을 중독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지만 인터넷 사용자 중에서는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인터넷 중독자'들이다.


정용구씨(33·가명)는 사이버 섹스 중독자다. 결혼한 지 1년째. 신혼 생활의 단꿈에 젖어야 할 그는 지금 아내와 성생활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불감증 때문이다. 1998년부터 인터넷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이듬해부터 채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넷 사용의 70∼80%를 채팅으로 보낸다. 심할 때는 5일 내내 쉬지 않고 밤늦게까지 한 적도 있었다. 여러 번 채팅을 끊으려 했지만 2주 이상을 견뎌내지 못했다. 나이 어린 여자애와도 자주 음란한 대화를 나누었고, 속상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음란 사이트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평소 소심한 그는 채팅을 할 때면 욕설을 남발하고 자제하지 못한다. 정씨의 탐닉은 인터넷과 핸드폰을 넘나들었다. 채팅을 하다가 전화 번호를 알게 되면 오랫동안 야한 이야기를 하며 통화를 끊지 않았다.


정씨의 아내가 남편의 '엽색 행각'을 눈치챈 것은 PC방 이용료를 카드로 결제했을 때부터다. 폰섹스를 하며 물게 된 엄청난 핸드폰 요금을 아내가 추궁하자 솔직히 털어놓았다. 지금 가정은 파탄지경이다.


그는 최근 서울 봉천동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담당 의사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형제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끼며 병리적 요소를 안고 성장했다고 밝혔다. 그의 사이버 섹스 중독이 인터넷 때문인지 정신 병리의 일부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진단이다.


최현호씨(34·가명)는 사이버 주식거래 중독자다. 10여 년 전부터 주식에 손대 왔는데 2년 전 사이버 주식 거래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투자 양상이 달라졌다. 마우스 하나만 있으면 마치 자신이 펀드매니저가 된 것처럼 자금을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돈을 직접 만져 보지 않으니 거액을 투자해도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24시간 격일제로 교대 근무하는 직장이어서 하루 종일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돈을 잃을 때마다 '이것만 조심하면 다음에는 돈을 벌 수 있어'라고 하며 더 큰 돈을 투자했다. 결국 2억원 가까이 손해를 보고 신용 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그는 인터넷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는 냉정한 기계더라.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 컴퓨터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는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에서 이런 푸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돈이 없어 한동안 사이버 주식 투자를 하지 못했던 그는 12월1일 병원을 다시 찾아 또 주식에 손을 댔다고 털어놓았다.


나희현씨(27·가명)는 지난해 군대에서 제대한 후 인터넷 게임에 빠졌다가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은 경우다. 휴학 중이었지만 복학하지 않고 계속 게임 속에서 살았다. 이후 여러 번 복학을 시도했으나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끝내 며칠 다니지 못하고 포기했다. 부모가 PC방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 빨리 졸업하라고 독촉하자 그는 집과 연락을 끊고 도피해 버렸다.




하루에 인터넷을 얼마나 사용하나


























































구분 초등생(231) 중고생(389) 대학생(340) 성인(174) 계(1134)
해당 없음 5.6% 1.3% 2.1% 2.9% 2.6%
1시간 이하 31.6% 11.3% 26.2% 32.2% 23.1%
2시간 이하 33.3% 38.8% 36.5% 32.8% 36.1%
3시간 이하 16.9% 22.9% 21.2% 21.8% 20.9%
5시간 이하 6.9% 14.4% 10.6% 5.2% 10.3%
7시간 이하 0.9% 3.1% 1.2% 1.5% 1.9%
7시간 이상 4.8% 8.2% 2.4% 3.4% 5.0%
정보통신부(2001.5)


위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중독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고은희양(17·가명)은 부모 직장 때문에 자주 학교를 옮겨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지방에서 서울로 전학한 후 헤어진 친구들과 연락하고 싶어 인터넷 채팅을 시작한 것이 컴퓨터에 빠지게 된 계기였다. 옛 친구들과 사귀면서 오프라인에서 새 친구를 사귀는 데 관심이 소홀해졌다. 부모가 맞벌이여서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하루에 9∼10 시간 정도 인터넷을 이용했는데 새벽 3시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 있기가 예사였다. 자연히 성적은 떨어졌고 식구들과 대화도 줄어들었다.




서울대 인문계열 대학원에 재학하는 박선희씨(가명·26)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대학원 조교로 일하면서 짬 날 때마다 인터넷 서핑을 즐긴다. 업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하루 6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많고, 급한 일이 없는 날은 하루 종일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동호회 게시판 예닐곱 개를 돌다 보면 한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5분 전에 방문한 동호회에 다시 들어가 새로운 글이 없는지 확인한다. 지난 1년 간 개인적인 시간은 인터넷이 다 빼앗아갔다고 토로한다.


최근 늘어나는 인터넷 중독자 가운데는 온라인(네트워크) 게임 중독자도 많다. 연세대 2학년인 차동인씨(24)는 자기가 대표적인 중독자라고 인정한다. 게임방에 들어서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고 말하는 PC방 마니아다. 하루 8∼10시간 정도 PC방에 앉아 있는 것은 보통이고, 때로는 40시간 연달아 게임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중독자임을 모르는 것이 더 문제"


차씨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리니지〉다. 〈리니지〉는 현실과 비슷한 하나의 가상 사회를 만들어 즐기는 'MUG'게임이다. 지금 당장 전문 아이템 판매업자(게임 속의 사이버 아이템을 실제 현금을 받고 파는 사람)로 나서면 월 100만원 넘게 벌 수 있다고 말하는 실력자다. 차씨는 자기를 중독자라고 부르는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성적이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음악에 빠지고 춤에 빠지듯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일 뿐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침에 눈 뜨면 인터넷부터 켜고' 산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는 2001년 9월 현재 2천4백12만명 정도. 이들의 인터넷 이용량은 하루 평균 1시간 19분에 이른다. 3시간 이상 인터넷의 바다에 빠져 있는 사람도 20%를 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중독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한국 인터넷 중독자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자신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는다(58∼59쪽 딸린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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