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 최택곤은 누구인가
  • 정희상·권은중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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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정보 손에 들고 권력 앞으로
권노갑씨와 밀착…대선 때는 '이회창 아들 병역 문제' 발로 캐내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의 낙마를 몰고 온 로비스트 최택곤씨가 검찰에 연행되자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측은 '3년 전부터 그 사람 출입을 못하게 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민주당 관계자들은 최씨가 `'언젠가 다분히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인물이어서 알 만한 사람은 그와 거리를 멀리했다며 저마다 발뺌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최씨는 이 사건 전부터 문제투성이 인물이었고 다들 그를 꺼려했는데, 신광옥 청와대 민정수석만이 `'눈치 없이' 그를 만났다가 날벼락을 맞은 꼴이다.




과연 그럴까. 최씨는 누가 뭐래도 권노갑 사람이다. 그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권노갑씨 특보를 자칭하며(권씨측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었다) 특히 국방 관계 의정 활동을 도와온 인물이다. 군수 장교 출신(경희대 ROTC)인 최택곤씨는 13대 국회 때 평민당 정 웅 의원의 소개로 국회 국방위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최씨는 군 내부 정보에 목말랐던 야당에 단비를 내려주었다. 이 무렵 민간인 출신 국방위원이던 정대철·권노갑 의원의 이름이 국방위 의정 활동 평가 톱순위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것도 바로 최택곤씨가 군 내부 비리 관련 정보를 물어온 덕분이었다. 각종 군납 비리와 무기 도입 사업을 둘러싼 복마전 구조 등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최씨 주변에는 항상 기자들이 붐볐다. 당시부터 권노갑 전 고문의 신임이 두터웠던 최씨는 언론의 권의원 인터뷰를 주선하고 배석하기도 했다.


'군 내부에 ROTC 파워 구축' 야심 키우기도


1997년 대통령 선거전은 최택곤씨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최씨는 당시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병무청 자료를 이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천용택 의원을 통해 공개된 이회창 후보 아들 병무 비리 문제는 최택곤씨가 발로 뛰어 만든 작품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최씨는 민주당 내에서 실력으로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정권 교체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정권 교체 후 나름의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최씨의 사정에 밝은 한 민주당 간부는 "최씨는 군 내부에 ROTC 파워를 구축하겠다는 꿈을 갖고 적극 뛰었다"라고 말했다. 군에 훨씬 많은 장교를 배출한 학군 출신이 육사 출신에 비해 지나치게 푸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한 최씨는 자기가 앞장서 그런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는 것이다.


정권 교체 뒤 ROTC 중앙회 부회장을 맡은 최씨는 권력 실세인 권노갑씨는 물론 역시 학군 장교 출신인 김홍일 의원의 힘을 빌려 이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씨가 이루어낸 첫 번째 성과는 김대통령이 학군 임관식에 참석해 축사를 한 것이었다.


최씨는 이어 학군 출신 첫 국방부장관 추대 운동을 벌였다. 그가 민 인물은 학군 출신 인사로서 현정부 들어 합참의장을 지낸 김진호씨였다. 김진호씨는 합참의장을 마친 뒤 민주당 안보위원으로 영입된 후 안보위원장이 되었다. 김씨는 당시 전국구 의원 자리를 기대했겠지만 영입된 4성 장군 12명 가운데 유삼남 의원 외에는 아무도 국회에 진출하지 못했다. 최택곤씨의 운동과 권노갑 전 고문, 김홍일·천용택 의원의 지지 속에 추진된 김진호 국방부장관 카드는 빛을 보지 못했다. 당내 육사 출신 의원들과 기무사의 반대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김진호씨가 정현준·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되었다는 설과 과거 정권에 충성을 서약했다는 설 등 각종 악성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그 뒤 김진호씨는 토지공사 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최택곤씨와 김진호 토지공사 사장, 그리고 김사장이 후원회장을 맡은 민주당 동대문 을 지구당 허인회 위원장이 최근 진승현씨의 돈 때문에 모조리 구설에 올랐다. 허인회 위원장의 경우 지난해 총선 때 진승현씨가 김진호 후원회장을 통해 건넨 선거 자금 5천만원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김진호 사장은 진승현씨 부친과 고교 동창 사이여서 대가 없는 선거 자금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택곤씨가 진승현씨 회사인 MCI코리아 고문으로서 이미 로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최씨와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은 김사장의 해명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최택곤씨가 진승현 게이트에서 로비의 한 축으로 떠오르면서 신광옥 전 민정수석이 낙마했지만 검은돈의 사슬이 최씨 선에서 끝났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또 최근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해 구속되거나 구설에 오르내리는 인사들은 주로 권노갑 전 고문 계열로 분류된다는 특징이 있다. 검찰로부터 이번 파문의 중심에 서 있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과 정성홍 전 경제과장도 국정원 내부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권노갑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김대통령이 총재직 사퇴를 통해 당으로 넘긴 공은 이제 김은성·최택곤·신광옥 사태로 다시 김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결국 김대통령이 권노갑 전 고문 처리 문제를 놓고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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