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의 ‘잠 못 이루는 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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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조카 잇달아 구설…“청와대 빨리 나갔으면”

정권이 바뀐 1998년 봄. 이희호 여사는 친정의 가까운 친인척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적이 있다. 당시 이여사는 “나한테 부탁 같은 것은
하지 말라. 부탁해 보았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라며 단호하게 선을
긋고 친인척들에게도 신중하게 처신해 달라고 각별하게 당부했다.


하지만 이여사의 이런 바람은 산산이 깨졌다. 그것도 누구보다 믿었던
조카 이형택씨 때문에. 이여사는 언론 보도가 있기 전까지 이씨가 이용호씨에게
땅을 고가에 판 사실 등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여사는
요즘 허탈감과 실망감에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이형택 게이트’라는 소리가 나온 직후 이여사를 만난 한 동교동계
고위 인사는 이여사가 큰 충격을 받은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어서 제대로
얼굴을 바라보기조차 힘들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여사는 “내일은
또 무슨 일이 터질지 신문 보기가 겁난다. 후반부로 갈수록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빨리 (대통령 임기가 끝나) 청와대를 나갔으면 좋겠다”라며
갑갑함을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여사는 ‘이형택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가까운 사람들이 잇달아
구설에 오르는 통에 편안하지 못한 날들을 보내왔다. 우선 골동상으로
알려진 동생 이상호씨가 강원랜드 김광식 사장에게 인사 로비를 한 사실이
지난해 11월 말에 불거졌다. 현대자동차 세일즈맨이던 이씨의 사위 이
아무개씨는 정권이 바뀐 뒤 마사회로 옮겼다가 강원랜드가 문을 연 뒤
서울지소장이 되었다. ‘이희호 집사’로 통했던 황용배 전 마사회 감사는
지난해 12월13일 구속되었다. 진승현씨로부터 금감원 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2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또 이여사의 둘째 오빠인 이경호씨의 장남 이영작 박사도 이용호씨를
만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박사는 1999년 말∼2000년 초 저녁 술자리에서
이씨를 만났다. 이박사의 한 측근은 7명 정도가 같이 있던 자리에서
인사만 나눈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씨가 며칠 뒤 식사나
하자고 해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해 이씨가 이박사에게도 집요하게 접근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정가에서는 이여사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특별검사의 거침 없는 수사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고, 이형택의 배후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한나라당의 공격 목표에는
이여사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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