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맺은 인연 끝까지 간다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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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정예’ 노무현의 인맥 해부
단기필마로 출발한 노후보 주변에는 요즘 ‘사람 풍년’이 들었다. 민주당 공식 후보가 된 후에는 더 하다. 노후보는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특보단도 구성하고, 대선 기획단이나 자문 그룹도 꾸리게 된다. 하지만 그 핵심은 역시 오랫동안 노후보와 유대 관계를 맺어온 기존 인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후보의 인맥은 단촐한 편이다. 정치권에서는 경선을 함께 치른 캠프 인맥과 통추 사람들이 양대 축이고, 정치권 밖에서는 부산상고 인맥, 법조계 인맥, 이런저런 자문 그룹 정도가 손에 꼽힌다.






1세대는 측근 중심…2세대는 테크너크랫 주축


1993년 9월 출범한 지방자치연구원을 모태로 하고 있는 캠프 인맥은 합류 시기에 따라 크게 1세대와 2세대로 나뉜다. 노후보가 정계에 첫발을 디딘 13대 국회 때부터 2000년 부산에서 낙선한 16대 총선 때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한 측근 참모 그룹이 1세대라면, 2세대는 노후보가 대선 후보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후 2000∼2001년에 합류한 40~50대 테크너크랫이 주를 이룬다.


1988년 총선 때 노후보의 연설 강사를 했던 정윤재 위원장(부산 사상 을)을 비롯해 13대 국회 비서관으로 인연을 맺은 이광재 기획팀장, 14대 선거를 전후해 합류한 안희정 행정지원팀장과 김만수 공보팀장, 1993년 지방자치연구원을 만들면서 가세한 서갑원 정무특보와 황이수 홍보정책팀장, 15대 선거 때 합류한 문용욱 수행비서, 1998년 종로 보선 때 합류한 백원우 사이버팀장, 여택수 TV대책팀장 등이 1세대 참모 그룹에 속한다.


대체로 30대 실무자급인 이들은 제각기 생업에 종사하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다시 뭉쳐 ‘외인부대’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를테면 15대 종로 총선에서 노후보가 실패한 후 이광재씨는 김덕룡 의원, 안희정씨는 이수인 의원, 황이수씨는 김홍신 의원, 서갑원씨는 황규선 의원, 문용욱씨는 최욱철 의원의 보좌진으로 들어갔으나, 2000년 총선 때는 헤쳐 모여 노후보의 부산 선거를 치렀다.


이 가운데 특히 연세대와 고려대 83학번 동갑내기인 이광재·안희정 팀장은 노후보의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두 사람은 각각 전략 기획과 자금을 담당하고 있다.


실무급은 아니지만 1세대 인맥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이기명 후원회장이다. <김삿갓 방랑기>로 유명한 방송작가 출신인 그는 KBS 작가실장 시절이던 1988년 KBS 노조를 방문한 노후보의 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곧바로 노무현 후원회를 결성해 지금까지 내리 14년째 후원회를 이끌고 있다.


2세대 참모진의 맏형은 염동연 사무총장이다. 연청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1993년 통합 민주당 시절 맺은 노후보와의 인연으로 캠프에 합류해 경선 실무를 총지휘했다. ‘조직의 귀재’라는 별명답게 영남을 제외한 전국의 조직을 관리해 ‘노풍’을 현실로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김상현 전 의원 보좌관 출신인 윤제술 이사, 국민회의 후원회 사무총장을 지낸 강동원 이사, 평민당 출신으로 보증보험 지점장을 지낸 손주석 조직실장, 조세형 주일대사 보좌관 출신인 김관수 조직실장이 모두 염총장의 권유로 합류한 ‘조직맨’들이다.


노후보의 언론 창구인 유종필 공보특보는 2001년 6월 캠프에 가담했다. <한겨레> 기자 출신으로 민주당 부대변인과 청와대 정무수석실 비서관을 지낸 그는 이인제 진영과의 설전에서 특유의 재담과 순발력으로 노후보를 방어하는 ‘수문장’ 노릇을 톡톡히 했다.





참모 고를 때 까다로운 시험 거쳐


조직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를 총괄한 윤석규 상황실장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비서관 출신이고, 이충렬 정책특보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노후보와 인연을 맺었으며, 배기찬 정책팀장은 현재 세종리더십개발원 소장이다. 이기택 의원 보좌관 출신인 윤태영 홍보팀장은 1994년 노후보의 자전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출간에 관여한 것을 인연으로 각종 연설문 작성을 도왔다. 1996년 노후보가 SBS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때도 방송 원고를 다듬었고, 지난해 캠프에 합류한 후 연설 원고를 전담했다. 이번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도 윤팀장 작품이다.


노후보는 참모를 고를 때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함께 간다는 소신 때문이다. 유종필 특보도 톡톡히 시험을 치른 경우. 유특보의 합류 의사를 확인한 노후보는 행사에 갈 때마다 동행을 요구하며 이런저런 주제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기를 며칠, 노후보는 유특보 기용을 결정하면서 “죄송합니다. 제가 시험 좀 봤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노후보 주변에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 자기만한 경력이면 ‘어서옵쇼’ 할 줄 알았던 유특보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유특보는 노후보의 언론 창구로서 거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요컨대 진입 장벽은 높지만 일단 자기 사람이 되면 믿고 맡기는 스타일인 셈이다.


노후보의 정치권 인맥은 통추가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서도 김원기 고문·원혜영 부천시장·유인태 전 의원과 친하다. 김고문은 경선 중반 노무현 지지를 선언한 후 당내 지지 의원 모임을 주도했다. 1990년 3당 합당 때 YS를 따라가지 않고 함께 민주당에 잔류했던 김정길 전 의원도 노후보와 가까운 사이. 하지만 누가 뭐래도 천정배 의원만큼 노후보가 빚을 진 정치인도 없다. 천의원은 법무법인 ‘해마루’에서부터 노후보와 함께 일했고, 경선 내내 현역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노후보 곁을 지켰다. 이 때문에 정가에서는 ‘이제 천의원 세상이 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노후보의 정치권 밖 양대 인맥은 부산상고와 법조 인맥이다. ‘백양회’라는 부산상고 53회 동기 모임은 분기에 한번 정도 모인다. 멤버 가운데 은행 지점장 정도가 최고로 출세한 형편이지만 서로 흉허물을 터놓는 편한 사이다. 총동창회장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은 노후보의 부산후원회장을 맡고 있고, 후배인 홍경태·최도술 씨는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중앙후원회 사무총장과 부산 지역 실무 책임자를 맡고 있다. ‘노풍’이 일면서 부산상고 동창회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4월10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총동창회 정기총회에는 평소보다 2배가 넘는 9백여 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법현회’는 사법고시 17회 동기 10여명이 만든 모임이다. 강보현·이종왕 변호사·송훈석 의원 등이 주요 멤버다. 법조계 후배 중에서는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같이 쓴 문재인 변호사가 가깝다. 문변호사는 노후보가 부산 시장 후보로 점찍고 있을 정도로 신임이 두텁다.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지방자치연구소 소장을 맡아온 김병준 교수(국민대·행정학)가 ‘공개된’ 노무현 사람이다. 이 밖에 그동안 온라인을 통해 소리 없이 도와온 각계각층 자문 그룹은 언제 어떤 식으로 공개할지 고민 중이다. 문화계에서는 노사모 회장과 고문 자격으로 맹활약한 배우 명계남·문성근 씨가 대표 선수.


그렇다면 노후보가 어렵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찾을 만한 사람은 가족말고 누가 있을까? 참모들은 이호철·이강철 두 사람을 꼽았다. 이호철씨는 노후보가 재야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된 부림사건의 주인공으로, 13대 국회에서 보좌관을 지냈으며 현재 부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이강철씨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는 등 대구·경북에서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해왔고, 이번 경선에서 영남 지역을 총괄했다. 참모들은 두 사람에 대한 노후보의 신뢰가 크다고 했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후 노무현 캠프는 또다시 해체를 준비하고 있다. 당 공식 조직이 구성되는 만큼 ‘사조직’이라는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한 측근은 “노후보를 따라 당으로 들어가지 않는 참모진은 이제 지방 선거에 매달려야 한다. 두달 동안 영남에서 살 것 같다”라며 짐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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