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풍’과 벤처 열풍의 닮은 점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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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수직 상승하고 인터넷 덕 봐…‘수익 모델 창출’ 공통 과제
한때 정가에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주식 시장의 블루칩에 빗대어 설명하곤 했다. 그런 관점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노풍’에는 2~3년 전의 벤처 열풍과 비슷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단기간에 수직 상승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99년 4월 초 지수 100을 돌파했던 코스닥은 정보 기술(IT) 경기 활성화에 힘입어 8개월 만에 지수 300에 육박했다. 노후보도 불과 한달 반 만에 유망한 ‘마이너 정치인’에서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성장했다.


벤처 열풍은 패러다임 시프트, 즉 산업 구조 혁신이 가져온 산물이었다. 정보 기술 산업이 굴뚝 산업의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벤처 열풍이 분 것. 노풍 또한 줄서기 정치나 권위주의 같은 낡은 정치를 ‘패러다임 시프트’ 하자는 국민적 공감대에서 탄생한 현상이다.





인터넷이 결정적인 매개가 되었다는 점도 두 열풍의 공통점. 클릭 한번으로 주식 매매가 가능해지면서 코스닥은 대목을 맞았다. 노풍도 마찬가지.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열풍이 오프라인 노풍으로 발전했다. 거대 언론의 역풍을 막아낸 것도 인터넷 대안 언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풍은 일종의 밴드 웨건 효과처럼 번졌다. 노풍을 해석하지 못한 일부 언론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묻지마 지지’라는 용어까지 동원했다. 이 말은 ‘뇌동 매매’ ‘묻지마 투자’ 같은 주식 시장 용어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그러나 벤처 열풍은 1년을 지속하지 못하고 급락했다. 성공한 벤처 기업은 100개 중 3~4개에 불과했다. ‘돈맛’에 취한 벤처는 이미 벤처가 아니었다. 벤처 기업의 생존을 가른 기준 가운데 또 하나는 오프라인 기반의 유무였다. 탄탄한 수익 모델이 있는 벤처만 살아 남은 것.


노후보는 호남 등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과 30~40대 고학력층의 지지를 받고 있어, 오프라인 기반은 단단한 셈. 그러나 자만과 방심이라는 ‘돈맛’의 유혹에는 좀더 강해져야 할 듯하다. 이인제 후보가 중도 사퇴하자 노후보는 예정했던 경기도 지구당 방문을 취소했다. 항의 전화가 빗발쳤음은 물론이다. 경기도 경선 2위라는 이변이 일어난 데에는 이런 노후보의 방심도 한몫 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치 개혁이라는 ‘실적’을 보여주는 것도 노무현 벤처의 과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노무현답다’라는 노후보의 개혁 이미지가 실제 정치 현안에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느냐가 노풍 성공의 열쇠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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