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패밀리, 연예계 접수했다
  • 주진우·고재열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08.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조직 폭력배 14개 파가 28개 기획사에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반가운 이름들이 정말 많네요.” 지난 7월 중순 연예계 비리를 수사하던 서울지검 강력부의 한 수사관은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 수첩에 등록된 기획사 간부들의 이름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대문파·칠성파·OB파·학동파·대인동파·콜박스파·국제PJ파·스노아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직폭력배 출신들이 버젓이 기획사 대표라며 자리를 꿰어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파만파로 퍼지는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가 조폭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검찰이 수사 방향을 선회한 것은 개그맨 서세원씨가 제작한 영화 <조폭 마누라>에 조폭 자금이 유입되었는지 여부를 수사하면서부터다. 검찰은 몇몇 기획사에도 조폭 자금이 유입되었다는 증거를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연예 비즈니스에 폭력 조직 자금이 흘러든다는 소문은 사실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시사저널>은 연제협 수첩에 나온 기획사 주소록을 바탕으로, 검찰과 경찰의 베테랑 수사관, 중견 매니저, 유흥업소 연예부장, 전직 조폭 출신 연예산업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5단계에 걸쳐 검증한 결과 조직폭력배 14개 파가 28개 기획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중에서도 연예계를 좌지우지하는 거물 조폭들은 대략 7∼8명이다. 호남과 서울 그리고 부산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이들은 연예계를 삼등분하고 있었다.


연예계의 토박이 조폭은 동대문파·명동파·영등포파 등 주로 서울 출신이다. 대형 나이트클럽의 연예부장을 거친 이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차례로 연예계에 뛰어들었다. 이들을 대표하는 인물은 ㅂ씨. 명동파에서 조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유흥업소 연예부장을 거쳐 음반업계에 진출한 이후 승승장구했다. 조직 활동은 중단했지만 이후 그는 조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그는 조양은과의 친분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양은이 재구속되기 전에도 그의 사무실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ㄱ씨는 서울 조폭의 영향권에 있는 인물인데, 조폭 출신은 아니지만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서울 조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ㅂ씨와 ㄱ씨는 이번 검찰 수사의 주요 타깃이다. 이들은 “검찰이 1990년대 말 들어 급격하게 커버린 호남 기획사는 손도 못 대고 우리만 잡아들이려 한다”라고 음모론으로 맞서고 있다.


서울 출신과 쌍벽을 이루는 연예계 토박이 조폭은 충청도 출신으로, ㅈ씨가 이들을 등에 업고 세력을 넓혔다. ㅈ씨는 가수보다 코미디언 사이에서 영향력이 컸는데 덕분에 충청도 출신 개그맨들이 방송사에 많이 진출할 수 있었다. 현재 충청도 조폭의 명맥은 ㅇ씨가 이었는데 세력은 미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들어 호남 조폭이 서울 조폭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나이트파와 월드컵파 정도가 진출해 있었지만 호남 조폭은 연예계에 큰 영향력이 없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부터 OB파·양은이파·범서방파 등 이른바 호남 3대 패밀리가 본격적으로 연예산업에 진출하면서 무시 못할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3대 패밀리 중에서 양은이파는 주로 영화에 투자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조폭 마누라> 외 한두 편에도 조폭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출처로 양은이파를 지목한다. 양은이파 출신으로 ㅆ룸살롱 지분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임 아무개씨와 신 아무개씨가 다른 조폭 영화에 돈을 투자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범서방파는 현재 연예계에 거의 세력이 남아 있지 않다.





호남 조폭 가운데는 OB파가 연예계에서 가장 힘을 쓴다. 1990년대 초반,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ㅅ그룹의 뒤를 봐주면서 이들은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고향에서 올라온 후배들을 곳곳에 포진시키며 영역을 넓혀갔다. ‘OB파가 일을 야물게 처리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직접 관계는 맺지 않더라도 친분을 쌓아두려는 기획사가 늘어 이들은 단시일에 강자로 떠올랐다.


야쿠자 돈도 상당액 흘러들어


1990년대 후반에는 목포 출신 주먹들의 연예계 진출이 봇물을 이루었다. 현정권 실세들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강 아무개·김 아무개·이 아무개 씨가 연예계 실세로 떠오르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후 목포 출신 건달들이 연예계에서 기반을 넓혀 갔는데 특히 개그맨을 많이 붙들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개그맨은 대부분 이들의 기획사에 속해 있다.


대부 격인 강씨는 1986년 서진 룸살롱 살인을 저지른 장진석파가 노렸던 인물로, 당시 동대문의 한 여관에서는 그로 오인된 운전기사가 난자당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목포 지역을 석권한 후 서울로 진출해 천호동과 강남의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그는 현정권 들어 목포 세력을 등에 업고 연예산업에 진출했다.


호남 출신 주먹들이 상경하면서 서울의 지하 세계, 나아가 연예계까지 호남 조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압도적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호남 조폭은 연예계에서 서울이나 부산 조폭 만큼 실리를 챙기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학동파 출신인 한 아무개씨는 호남 출신 가운데서 예외적으로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서울 강남에서 대형 나이트클럽인 J클럽을 운영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한씨는 소속 가수가 히트를 치자 여기서 번 돈으로 케이블TV 방송국까지 인수했다. 검찰은 한씨가 코스닥에 등록된 한 연예기획사의 주식을 100만 주나 가지고 있게 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연예계에서는 한씨의 사업 자금이 야쿠자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광주 출신 한 조폭은 “한씨의 사업 자금은 대부분 일본인 양아버지가 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업계 은어로 ‘제주 부자의 돈’이라고 불리는 야쿠자 자금도 국내 연예계에 꽤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계에서는 야쿠자 자금의 주요 통로로 부산 칠성파를 꼽는다. 칠성파 출신 ㅈ씨가 야쿠자 돈을 끌어들인 인물로 지목되는데, 그는 야쿠자 조직을 통해 소속 연예인의 일본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정권 들어 조금 위축되기는 했지만 칠성파뿐만 아니라 21세기파 등 부산 조폭들도 본격적으로 연예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호남 조폭들처럼 직접 사람을 심는 것이 아니라 기존 경상도 출신 기획사에 투자해 지분을 얻는 방식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 조폭 담당 경찰은 “부산 조폭들은 마약에 신경을 쓰느라 연예계는 등한시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벌인 대형 사업과 일본 조직과 연계된 사업에서 재미를 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폭 사전에 ‘사업 실패’란 없다





조폭들의 연예산업 개입에 대해 일선 종사자들은 필요악이라는 견해이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대형 기획사일수록 조폭과 직접 연관된 경우가 많다. 연예 기획사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정·재계 인사들과 접촉하거나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조폭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조폭 출신 기획사 대표 중에는 아예 손을 씻고 사업에만 전념하는 사람도 있다. 광주 대인동파 출신으로 건설업에 종사하다 음반 기획으로 전향해 성공한 ㅇ씨가 이런 경우로 꼽힌다. 소속 가수를 대형 스타로 키워낸 ㅇ씨는 ‘동생’들과의 관계도 끊고 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조폭적’인 사업 방식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이들은 일단 투자하면 절대 손해보는 일이 없다. 조폭은 장부상으로 다른 투자자들과 같은 지분을 받지만, 실패하더라도 투자 원금에 이자까지 회수하며, 성공하면 다른 투자자들보다 몇 배 많은 배당금을 챙기는 것이 보통이다.
1990년대 초반 연예계 비리를 수사했던 검찰은 조폭이 나이트클럽에 출연한 연예인들을 폭행해 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의 연예부장들은 이제 기획사 대표가 되어 훨씬 세련된 방법으로 연예인들을 착취하고 있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유흥업을 하다 주변 동료의 성공에 고무되어 2000년 연예 사업에 뛰어든 조폭 출신 기획사 대표 심동영씨(33·가명)의 사례는 조폭적 사업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씨는 다른 소형 기획사들처럼 여성 댄스그룹을 키우기로 하고 오디션을 통해 신인을 3명 뽑았다. 초기 투자 비용을 다 쓴 이후 심씨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술자리를 마련해 투자자들 앞에 멤버들을 선보였다. 투자 약속과 함께 성 상납이 이루어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과정에서 한 멤버가 성관계를 거부하다 심하게 폭행당했다.


심씨는 음반제작비·안무비·의상비·PR비 등으로 3억원 가량을 퍼부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 그룹은 텔레비전에 한두 번 얼굴을 내민 것말고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년 가까이 소속사를 위해 온갖 활동을 다한 멤버들에게 그가 준 돈은 차비 몇십만원이 고작이었다.


조폭 출신 기획사들에 속한 가수들에게 이같은 사례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노예 계약’이라고까지 표현되는 불공정 계약은 조폭 출신 기획사의 전매 특허이다. 호남 출신 조폭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ㅇ기획사에 속한 ㅎ그룹 멤버들은 크게 히트한 음반을 2장이나 내고도 한 달에 45만원 정도의 용돈을 받았을 뿐이다. 칠성파 출신 ㅈ기획사에 속했던 ㄷ그룹 멤버들은 기획사 대표로부터 수익금 2억원을 갈취당했다.


잘 나가는 가수 빼앗아 오기도


OB파 출신 ㅅ기획사에 속했던 ㄷ그룹 멤버들은 히트 앨범을 여러 장 내고도 빚만 지고 심지어 조폭 출신 직원들에게 얻어맞기까지 했다. 영암 출신 조폭이 운영하는 ㅇ기획사에 속한 한 댄스그룹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고서도 방송사에 가지 못하고 조폭 부모의 칠순잔치에 끌려가야 했다.


‘조폭 기획사’들은 동업자들도 괴롭혔다. 이 아무개씨는 자기가 온 힘을 기울여 데뷔를 준비시킨 ㅇ그룹을 OB파 출신 ㅇ씨에게 빼앗기고 분을 삭여야 했다. 명동파 출신 ㅂ씨도 될성부른 신인 가수를 가로채기로 악명이 높다.


조폭이 연예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조직 폭력계의 대부였던 안상민씨는 “자유당 시절부터 연예인을 관리하는 것은 건달의 몫이었다. 지금도 많은 기획사가 그들의 수하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폭 수사 전문가로 유명한 송파경찰서 안흥진 반장은 “조폭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면서 사업체를 운영한다. 하지만 경찰은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내사조차 못한다. 조폭이 활개를 치는 것을 지금 막지 못하면 마피아나 야쿠자처럼 기업형 폭력 조직으로 성장해 더 손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고 우려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