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 거짓말 그리고 발뺌?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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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부 ‘3대 의혹’ 추적/병적기록부·김대업 관련 진술 믿기 어려워



지난 8월6일, 김길부 전 병무청장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기자들을 서울 방배동 집으로 불러 기자회견을 했다. 1997년 당시 병역 은폐 대책회의(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김씨가 실토했었다는 김대업씨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김길부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우선 긴급 체포된 김길부씨를 처음 접견한 변호인이 누구냐는 의문이다. 김 전 청장은 기자회견에서 “김대업씨에게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가 한나라당측 변호사를 접견한 뒤 말을 바꾸었다는 주장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말도 안된다. 내가 긴급 체포되자 아들을 통해 전 법무부 차관 출신인 ㅈ변호사를 선임했다. 검찰 조사 단계에서는 그가 몇 번 접견을 왔는데 개인 사정이 있다며 사임했다. 기소된 뒤에는 중학교 동창인 구도일 변호사에게 맡겼다가 은행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권광중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모두 한나라당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김길부씨가 말한 ‘ㅈ변호사’는 일신법무법인 대표 조성욱 변호사이다. 그는 지난해 12월까지 민주당 법률지원단 단장을 지냈다. 8월7일 만난 조변호사는 김씨와는 다른 말을 했다. “변호 과정에서 김길부씨를 만난 것은 딱 한번이었고, 그의 아들이 아니라 김씨의 경북고 동창이자 내 대학 후배인 모 대학 교수가 부탁해 변호를 맡게 되었다.” 조변호사와 김길부씨는 김씨가 광주에서 교육사령관으로 근무할 때 인사한 적이 있는 사이였다. 조변호사는 김씨가 뇌물 수수 자체를 부인해 이러면 변호를 할 수 없다며 변호인을 그만두었다고 설명했다.


주목되는 것은 조변호사가 “내가 변호를 맡기 전에 또 다른 변호인이 있었다”라고 밝힌 점이다. 김대업씨의 주장대로라면 김길부씨가 체포된 뒤 처음 변호인을 접견한 것은 지난 1월4일이다. 조변호사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는 내가 맡기 전이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변호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또 다른 변호인’은 누구일까. 그가 한나라당과 어떤 관련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현재 김길부씨 변호를 맡고 있는 사람은 구도일·권광중·전창열 변호사이다. 구변호사와 김씨는 대구중학교 13회 동기 동창이고, 사법연수원 원장을 지낸 권변호사는 이회창 후보의 사위인 최명석 변호사가 근무하는 법무법인 ‘광장’ 소속이다. 기자회견에서 김씨가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전변호사는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을 지내 군 사정에 밝은 법조인이다.


김길부씨가 “이정연씨의 병적기록부를 당시 병무청 징모국장에게 보관하고 있으라고 지시했다”라고 밝힌 것은 병적기록부 은폐·조작 시도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씨는 “관련된 국회의원이나 권력자들로부터 원본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 관리했다”라고 말했지만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병적기록부는 서울 대방동 지방병무청 지하 보관소에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한데 여기서 원본을 빼낸 것은 은폐·조작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냐는 것이다.


수사 검사 “김길부를 믿을 수 없다”


더구나 김길부씨가 병적기록부를 특별 관리한 1997년 6월 말∼7월 말이 김대업씨가 주장하는 ‘대책회의’ 기간과 겹친다는 점도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김대업씨는 대책회의가 열리고 병적기록부 변조가 이루어진 시점이 1997년 7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청장이 병적기록부를 보관소에서 빼내 특별 관리하는 바람에 당시 김동진 국방부장관은 국회에서 “정연씨 병적기록부는 보존 연한이 지나 파기되었다”라고 위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때도 병적기록부의 행방을 알고 있던 김 전 청장은 침묵을 지켰다.


또 김대업씨가 수사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5월 <오마이 뉴스>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는 김길부씨의 주장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한 검찰 수사관은 당시 김대업씨가 죄수 신분이어서 교도관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을 것이고, 김길부씨와 김대업씨는 구치소에서 검찰까지 같이 버스를 타고 오갔을 텐데 김대업씨가 죄수인 줄 몰랐다는 김길부씨의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길부씨는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노명선 검사는 “김길부씨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는 뇌물을 건네 준 부하 직원들과의 대질 신문에서도 돈 받은 혐의를 부인했다. 그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김길부씨는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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