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업이 뜨면 권력은 괴롭다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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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헌병의 병역비리를 적발 하고, 이회창 후보와 사투를 벌이는 김대업의 ‘4년 전쟁’ 전말
"나는 지금 병역비리 사범들이 득실거리는 한나라당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8월9일 오전 2시, 자타가 공인하는 병무비리 전문가 김대업씨(41)가 각오를 다지며 기자에게 토로한 말이다. 김씨는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이다. 나는 비리 척결을 위해 몸을 내던졌다”라고도 말했다.
김씨는 8월5일부터 매일 출근하다시피 검찰에 드나들고 있다. 한나라당과의 맞고소 사건에 따른 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받고 있지만 마치 검찰 수사관의 자문에 응하는 전문가처럼 당당하다. 김씨를 잘 아는 한 인사는 “병무비리 족집게가 자존심을 걸고 승부수를 띄웠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가 잘못 걸렸다”라고 귀띔했다.





김씨는 8일에도 아침 일찍 서울지검 특수부에 들어갔다가 9일 오전 1시가 다 되어서야 나왔다. 하루 종일 검찰에 머무르면서 수사관들에게 이정연씨 면제 의혹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에도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김씨를 1백49일 동안이나 서울지검에 불러 ‘정보원’으로 활용했다. 병무비리 수사를 전담한 서울지검 특수1부는 김씨의 도움으로 괄목할 검거 실적을 올렸다.


김씨는 최근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면서 뉴스 메이커가 되었다. 한나라당이 김씨를 ‘전과자’에 ‘파렴치범’이라고 비난하지만 김씨는 ‘한나라당 의원 상당수는 낯두꺼운 병역비리 사범들’이라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김씨는 9일 아침에도 타고난 싸움꾼 기질을 드러냈다. 이 날은 국군 춘천병원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아들 정연씨에게 병역 면제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백일서 진료부장(현재 건국대 충주의료원 신경외과 과장)이 김씨의 ‘먹이’가 되었다. 김씨는 아침 일찍 라디오 <박경재의 SBS 전망대> 프로그램에 출연한 백씨를 추궁하기 위해 방송사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논산 국군병원에서 근무할 때인 1990년 6월에 내가 척추 디스크로 면제해 달라고 청탁하면서 5백만원을 준 사실이 있는데, 나를 기억 못하십니까?” 예상치 못한 김씨의 공격에 백씨가 휘청거렸다.
정상인을 척추 디스크라며 5급 판정을 내려 면제해준 오래된 ‘비밀’을 김씨가 공개한 것이다. 김씨 자신이 연루된 병역비리 전과를 인정하면서까지 백씨의 양심에 호소한 일종의 극약 처방이었다. 엉겁결에 김씨로부터 일격을 당한 백씨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뇌며 이렇다할 대응도 못한 채 입을 다물어버렸다.


오전 10시15분, 김씨는 장소를 옮겨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한나라당을 지원하는 법률가들과 전투를 벌였다. 한나라당 서정우 법률고문과 김정훈 특보, 공보담당 특별보좌역 이종구씨 등 3명이 기자실을 찾아 이회창 후보의 병역 문제 수사에 대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자 김씨는 즉석에서 공개 토론을 제안해 변호사들을 압박했다.


김씨는 “이회창 후보의 병역비리 의혹은 사실 아니냐. 거대 정당 조직이 뭐가 아쉬워 한 개인에 대한 뒷조사나 하고 다니느냐”라며 변호사들을 물고늘어졌다. 김씨의 공세에 변호사들은 맞대응을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기무사가 골칫덩어리 김대업 제거?


김씨는 1998년부터 전쟁을 벌여왔다. 김씨가 참여해 1998년 12월 구성된 제1차 병무비리 군·검 합동 수사팀은 병역 면제 비리를 1백37건이나 적발해 건국 이후 최대의 병무비리 적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역풍도 만만치 않았다. 방해 세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방부와 병무청이었다. 김씨는 국군기무사령부와 국방부 합조단(헌병), 정·관계를 주름잡는 인사들을 병역비리의 몸통으로 지목했다.





군병원의 신체검사 과정에서 군의관을 통해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병역비리를 감시해야 할 헌병과 기무사 등 관련 기관 직원들이 청탁을 받고 병역비리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김씨의 노력으로 다수 적발되었다. ‘병역비리의 대부’라고 불리던 국군수도통합병원 파견 헌병 박노항 원사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 대표적이었다. 병역비리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기관의 인사들은 당연히 김씨를 싫어했고, 배척했다. 그때부터 김씨와 기무사는 쫓고 쫓기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99년 기무사가 반격에 들어간 뒤 수석 검찰관인 이명현 소령과 김씨가 2차 병무비리 수사팀에서 배제되었다. 이소령은 당시 자신의 상급자인 고 석 검찰부장과 기무사가 유착한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도 고 석 부장을 고발했지만 무혐의 처리되었다. 기무사의 한 장성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찾아가 김씨의 전과 사실을 거론하며 구속하라고 압박했다.


김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김씨는 1999년 기무사·헌병대 등 기관들의 병무비리를 전담하는 병무비리특별수사팀에 참여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수사팀은 기무사·헌병대 소속 24명의 병무비리 의혹을 수사했고, 전·현직 기무사 장성이 뇌물을 받은 혐의도 찾아냈다. 그러나 기무사 전·현직 장성은 무죄로 풀려났다. 오히려 기무사 장성들의 혐의 사실을 보도한 SBS는 명예훼손으로 7천만원을 물어야 했다. 기무사의 승리였다.


2000년 2월 김대업씨는 반격할 기회를 잡았다. ‘반부패 국민연대’의 진정을 계기로 정·관계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병역비리 수사가 시작되었다. 김씨는 다시 군·검 합동수사팀에 참여했다. 그러나 수사는 기무사·헌병대 등 군내 기관이 아닌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에게 집중되었다. 핵심 인물인 박노항 원사는 도피 중이었다. 결국 정치인으로는 한나라당 김태호 의원만 불구속 기소되어 ‘태산명동서일필’이 되고 말았다. 김대업씨는 훗날을 기약했다. 그러나 기무사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였는지 ‘골칫덩어리’ 김씨를 뒷조사했다.


2001년 3월 김씨는 사기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1년 동안 준비한 기무사의 ‘작품’이라는 말이 돌았다. 병무비리 수사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기무사 과장이 ‘내가 (김대업을) 잡아넣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얘기를 들었다. 기무사가 병무비리를 캐려는 김대업을 제거하기 위해 기획 수사를 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기무사는 이런 사실을 부인했다.


김씨는 결국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기무사가 이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김씨는 재기했다. 2001년 4월, 박노항씨 체포를 계기로 서울지검 특수1부가 다시 병역비리 수사에 나서면서 병무비리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서울지검 특수1부 수사팀을 도왔다. 김대업씨를 수사보조원으로 활용한 노명선 검사는 “병역비리를 잘 아는 김씨를 통해 병역비리를 수사한 것은 문제 될 게 없다”라고 주장했다.


김대업 대 박노항, 고수의 전쟁 임박


2002년 8월 김대업씨는 기무사와의 한판 싸움을 또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우선 이정연씨의 병역 면제 의혹을 밝혀내는 데 주력한 뒤 기무사가 자신을 뒷조사했던 사실을 근거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과 병무비리를 폭로할 계획이다.
김대업씨의 또 다른 전쟁 상대는 병무비리의 상징적 인물인 박노항씨이다. 2001년 3월, 수배 중이던 박씨의 도피처를 알아낸 김씨는 혼자서 박씨와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자신이 사기 혐의로 체포되어 기회를 놓쳤다.


2001년 4월 체포된 박노항씨는 자기가 청탁을 받아 처리해준 정·관계 인사들의 면면에 대해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지난해 병무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이 박노항씨를 한 차례밖에 소환하지 못했을 정도로 군내 저항 세력들의 반발도 거셌다. 하지만 김씨는 박노항씨가 정·관계 고위층 자제들의 병역 면제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검찰도 박노항씨의 맞상대는 김대업씨뿐이라고 본다. 김대업 대 박노항, 병무비리 고수 간의 치열한 전투가 임박했다.





4년을 끌어온 김대업씨의 병역비리 전쟁은 전선이 한나라당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한나라당이 복잡한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자신을 파렴치범으로 몰아가자 김씨는 “한나라당 법사위원 가운데도 자녀들의 병역 면제나 병역비리 은폐 사건에 관련된 인물이 있다”라며 정치인들에 대한 공격을 선언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집권 야당’ 공세에 패퇴할 것인가


김씨에 따르면, 이정연씨 병역 의혹의 수수께끼는 의외로 간단하다. 병역 면제 과정에 개입한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수도통합병원 전 부사관 김도술씨(57)가 입을 열면 된다는 것이다. 1999년 초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된 전력이 있는 김도술씨는 이미 1999년 1차 병역비리 수사 때 “이정연씨와 전 의원 ㄴ씨의 아들, 한나라당 ㅅ의원의 아들을 내가 처리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김도술씨로부터 이런 진술을 들었지만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나 문제 삼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김대업씨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김도술씨는 ‘병역비리 1세대’로 불리는 변 아무개씨를 거쳐 백일서 씨 등으로 이어지는 병역 커넥션을 잘 아는, 이정연씨 병역 면제 의혹을 증언해줄 핵심 인물이다. 이정연씨 병역 면제는 은밀한 비리 사슬을 통해 돈을 주고 이루어진 전형적인 비리라는 주장이다.


김대업씨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8·8 재·보선 승리로 ‘집권 야당’을 굳힌 한나라당은 집요하게 검찰 흔들기에 나섰다. 수사팀을 맡고 있는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 교체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김대업씨가 혼자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김대업씨는 포기하지 않을 태세이다. 김씨는 “목숨을 다하여 끝까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와 은폐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의 전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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