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진도가 고향인 허영춘씨(63)는 두집 살림을 한다. 1년의 절반 이상을 그는 서울 유가협 사무실에서 보낸다. 진도의 집은 부인 임복심씨(64)가 혼자 지킨다. 허원근씨 사건이 발표된 다음날인 8월21일 허씨를 만나러 진도로 향했다. 18년 동안 싸워왔기 때문인지 그는 진도에서 유명했다. 택시를 타고 "허영춘씨 댁으로 가자"고 하면 되었다. 인터뷰는 부인 임복심씨(64)도 함께 했다.
지난 18년 동안 멈추지 않고 진실 찾기를 한 것으로 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오로지 아들의 한을 풀어주는 데 온힘을 쏟았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내가 법의학을 따로 공부했다. 자료정리와 탄원서 작성을 위해 타자기를 사서 독수리 타법을 익혔고, 지금은 나이에 맞지 않게 컴퓨터도 다룬다. 286 컴퓨터가 나왔을 때부터 억지로 컴퓨터를 배웠다(그는 요즘도 컴퓨터 문서 작성에 관한 책을 가방에 지니고 다닌다).
가해자인 하사관에게 편지를 썼다고 하던데?
편지를 써서 위원회를 통해 그 사람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진실만 밝힌다면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위원회에서 원근이 사건과 관련해 조사에 불응한 사병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려고 했다. 그것도 반대했다. 어찌 보면 그 사람들도 피해자다. 진상 규명의 목적은 화해다. 보복이 아니다.
그래도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지난번 교도소에서 숨진 박영두 사건 때 청송교도소로 항의 집회를 갔었다. 그때 가해 교도관이 사는 집까지 찾아가 유인물을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그만 그 교도관의 아들이 유인물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 그 아이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복의 악순환은 우리 시대에서 막아야 한다. 양심선언자에게는 사면과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가해자도 이번 기회에 마음의 짐을 덜어야 한다. 용서와 화해, 이것이 위원회를 만든 취지다.
부인 임복심씨는 원근씨 관련 뉴스를 보았는가?(인터뷰 내내 말이 없던 임씨에게 물었다)
억지로 안 보았다. (임씨는 군복을 입은 원근씨 사진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말 대신 눈물을 흘렀다. 서럽게 임씨가 울어 인터뷰는 잠시 중단되었다)
위원회 종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완전한 진상이 밝혀지겠는가?
밝혀야 한다. 일단 다른 유가족을 위해 조사관에게 원근이 사건은 그만 하라고 했다. 시간이 촉박한데 원근이 사건에만 매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부족한데 해결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다. 가능한 한 빨리 법을 개정해야 한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협의중이다. 법 개정은 된다고 본다. 정치인들도 군 의문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자기 자식들은 면제 받고, 남의 자식들 군대 보내서 죽었는데 모른 척하고 있으면 안 된다.
이제 원근씨 장례식을 치러야 하지 않나? (원근씨 유골은 화장한 뒤 모란공원 납골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허영춘씨는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장례식을 미루고 있다)
멀었다. 죽은 아들에게 ‘군용물 손괴죄’가 씌워져 있다. 이것도 벗겨주어야 한다. 은폐 의혹까지 밝힌 뒤에 장례식을 치를 작정이다.
밤 8시부터 시작한 인터뷰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자정을 넘기자, 허영춘씨는 진도홍주를 내왔다. 술을 전혀 못하는 허씨가 술을 마셨다. 이 날 따라 홍주는 더욱 붉었고, 허씨의 눈가도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