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 강남 ‘윗목’ 강북
  • 정희상 기자 (hsshung@sisapress.com)
  • 승인 2002.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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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시설에서 교육 인프라까지 극과 극으 로 갈린 ‘분단 서울’의 일그러진 초상
▲ 강남북의 시설물 차이만 보더라도 서울 시민이 공평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말은 공허하다. 강남구의 총예산은 서울에서 가장 많은 2천9백여억원인 데 반해 도봉구는 1천1백억원 수준이다. 강남구는 가로등 유지보수비로 50억여원을 쓰지만 강북 지역 구청은 도로포장비도 없어 쩔쩔맨다. ⓒ한향란
지상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고급 대리석이 3천여평 바닥과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3개 층의 널따란 홀에서는 아름드리 대리석 기둥 사이로 고색 창연한 조명이 사방에 빛을 발한다. 공간 한쪽에는 색다른 고급 대리석으로 치장된 또 하나의 호화 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입구에는 ‘서울시가 선정한 최우수 화장실입니다’라고 쓰인 서울시장 명의의 동간판이 자랑스레 걸려 있다.

이곳은 어느 특급 호텔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 역사의 풍경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한 역무원은 “최고급이라는 것이 우리 역사의 자랑이다. 강남구의 중심이라 해서 서울시가 특별히 지원해 건설되었다”라고 말했다.


역시 강남구에 속한 7호선 청담역사는 시설도 시설이지만 규모가 더 놀랍다. 역사 길이가 1km에 달하는 청담역은 국내 최장의 지하철역이다. 한 역무원은 “주위에 고급 아파트가 많아 건설 당시 주민의 민원이 빗발쳐 역사 길이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고 한다”라고 내력을 전한다. 저마다 지하철 역세권을 고집한 데다 역을 경유하는 노선 버스마저 자기네 아파트로 끌어들이려는 일부 주민의 극성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청담역은 도시철도공사에서만 관리하기가 버거워 강남구청이 나누어 관리를 맡고 있다.

▲ 강남 지역과 비강남 지역의 격차를 보여주는 난곡 달동네. ⓒ한향란

초호화 청담역과 간이역 같은 중곡역

▲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현재 강남구의 평당 아파트값은 1천7백여만원에 이르지만 가장 낮은 금천구의 경우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5백40여만원 선이다. ⓒ시사저널 안희태
그러나 다리 하나를 건너 성동구에 이르면 풍경은 돌변한다. 시설물과 마감재는 서울 대부분의 지하철 역사가 그렇듯 수수하고 세월의 땟국에 전 모습이다. 하루 평균 2만2천여 주민이 이용하는 중곡역의 경우 규모와 시설이 시골 간이역 수준이다. 같은 7호선인데도 강남구 관내 역과 강북쪽 역의 시설 수준이 다른 데 대해 한 역무원은 “강남이야 역 근처에 빵빵한 시설도 많고, 비싼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살지만 이곳은 단독 주택 밀집지인 데다 공공시설도 국립정신병원 하나 달랑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강남북이 확연히 다른 것은 비단 지하철 역사뿐만 아니다. 동네 가로등만 해도 모양과 디자인, 색상, 등간 거리에 이르기까지 강남과 비강남 지역은 확실히 다르다. 지난해 가로등 유지보수비로 강남구가 50억4천5백여만원이나 쓴 데 비해 인접 동작구는 불과 10억7천만원만 썼다. 강남 쪽에서는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주민의 문화 욕구를 채워주고, 65세 이상 노인에게 독감 주사를 무료로 놓아주는 데 반해 강북 지역 구청은 도로포장비마저 부족해 쩔쩔매고 저소득층 노인에게조차 독감 주사 비용(3천6백원)을 받는 형편이다.

강남북 격차는 모든 분야에서 뚜렷하다. 한강 주변의 시민공원도 남측에는 8개인 반면 북측에는 4개뿐이다. 강남구에는 백화점과 할인점이 9개나 있지만 성동구·강북구·금천구에는 한 개도 없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시설물만 보더라도 서울 시민이 누구나 공평하게 대접받는다는 말은 공허하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분야에서는 그 격차가 더욱 심각하다.




고가 외제차 절반 이상, 강남·서초구민이 소유

올해 강남구 총예산은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은 2천9백여억원이다. 이에 반해 도봉구는 1천1백억원 수준이다. 강남·서초구 관내 5개 세무서에서 지난해 거둔 소득세는 2조4백억원으로 나라 전체 소득세의 12%를 차지했다. 기업체의 본사와 서비스 업체가 속속 강남으로 몰려든 탓이다.
강남·서초구 주민의 직업 구성은 특별하다. 우선 대졸 이상 학력자 비율이 32.3%로 다른 23개 구 평균 25%보다 월등히 높다. 강남·서초구민의 주요 직업을 보면 의사·변호사·회계사·정치인·고급공무원·사업가·교수·대기업 임직원 등이 다른 구보다 특별히 많다.

이처럼 강남 지역에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당연히 소비가 왕성하다. 가령 서울에서 굴러다니는 고가 외제차의 절반 이상은 강남·서초구 주민 소유이다. 자동차등록사업소에 따르면 독일 BMW가 2000년 서울에서 판 자동차 1천6백여대(대당 5천만∼2억3천만원) 중 54%를 서초·강남구 주민이 샀다고 한다.


백화점의 경우 강북에도 지점이 더러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요 판매 품목을 보면 강남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서울 곳곳에 체인망을 갖춘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신사복만 기준으로 보아도 강남북 지점은 잘 팔리는 물건부터 다르다. 강남점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신사복은 아르마니·꼴레지오 등 고가 수입 브랜드로 한 벌에 2백만∼3백만원짜리이다. 반면 강북의 신세계 미아점에서는 비싼 제품이라고 해봐야 제일모직의 갤럭시(70만∼80만원) 정도이고 주로 60만원 안팎의 제품이 많이 팔린다.

강남북 사이의 격차는 최근 강남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더욱 벌어졌다. 교육·문화·교통·주거환경·산업 등 모든 분야를 빨아들이는 이른바 ‘강남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9월 초순 현재 강남구의 평당 아파트값은 1천7백만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서울시내에서 집값이 가장 싼 금천구(평당 5백40만원)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 강남은 1970년대 이래 정부의 정책적인 개발 ‘특혜’를 톡톡히 보았다. 위는 서울올림픽 때 건설된 송파구 올림픽공원. ⓒ시사저널 백승기

강남북 주민 “위화감 심각하다” 이구동성

강남의 집값을 끌어올리는 가장 큰 요인은 교육이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 이주호 교수팀이 청와대 정책기획실 용역을 받아 조사한 ‘교육의 형평성과 과외에 관한 실증분석’ 자료는 교육문제가 강남 블랙홀 현상을 얼마나 부추기는지 잘 보여준다. 서울 지역 일반계 고교 졸업생의 2000학년도 명문 대학 진학률을 구청 별로 조사한 이 통계에 따르면, 졸업생 100명 중 서울대 진학자는 강남구 2.7명, 서초구 2.5명인데 비해 강북의 한 구는 그 10%에도 못미치는 0.25명으로 나타났다. 뒤이은 세칭 3대 명문 대학 진학률도 강남구는 100명당 8명, 서초구는 7.7명인 데 비해 가장 적은 강북의 한 구는 1.8명에 그쳤다.

이같은 현상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소는 교육 인프라의 강남북 불균형이다. 김성환 서울시 의원(민주)이 최근 서울 25개 구청의 학교 지원 예산 현황을 분석한 결과 강남구는 매년 40억원을 관내 초중고교에 지원하고 있는 반면 중랑구나 성북구 등은 한푼도 지원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부모의 기부금 규모도 차이가 크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강남구의 관내 초등학교는 한학기당 학교발전기금으로 최소 3천여만원부터 많은 곳은 1억여원을 걷는다. 그러나 강북 지역의 초등학교는 평균 천만원 수준을 걷는 데 그쳤다.

“저질러버렸다.” 집값 안정을 위한 정부의 초강수 대책이 발표되던 날 강남구 삼성동의 한 아파트 34평을 6억원에 계약한 김 아무개씨(45)는 이렇게 표현했다. 10여년 동안 광진구에서 살던 그가 굳이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 날 강남구 아파트를 비싸게 산 것도 교육 때문이다. 중학생 남매를 둔 김씨는 “휘문고·숙명여고·영동고·경기고 배정이 확실한 거리를 계산해본 끝에 그 동네가 가장 안심이 되어서 집을 샀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교육제도 개편이 정부 대책에서 빠진 것을 보고 실망해 강남에 입성하기로 했다고 한다.

성동구에 사는 강 아무개씨도 최근 청담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회사 후배 직원에게 부탁해 중2짜리 아들의 주민등록을 옮겼다. 현재 사는 성동 지역에 4만 가구 넘게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인근에 남자 인문계 고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처럼 무작정 저지를 여력마저 없는 대다수 서울 서민에게 강남북 교육 불균형 현상은 ‘분노스런’ 위화감만 일으킬 뿐이다.

강북 주민의 위화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포럼서울비젼’이 올 초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만 20세 이상 서울 시민 8백명(강남·서초 2백56명, 비강남 5백4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강북 지역 주민 74%가 강남북 격차 확대에 심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또 과반수 이상의 서울 시민(57%)이 강남북 불균형이 앞으로도 심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런 불균형에 대해 강남북 주민 모두가 부정적이었다. 강남권 응답자도 61%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넘치는 강남 세수, 강북 발전에 써라”

그러나 강남북 교육 불균형에 대해서는 양지역 주민의 시각차가 컸다. 강남권 거주민들의 55.2%는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인 반면 비강남권 응답자들은 70%가 교육 불균형에 심한 박탈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서울시도 최근 강남북 격차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지역 균형 발전 추진단’을 결성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강북의 재래 시장을 정비하고 청계천을 복원하는 정도로 강남북 격차 해소를 기대하기는 난망한 일이다. 국가전문행정연수원 이주희 교수는 강남북 격차 해소를 위한 근본 대책으로 ‘강남·서초구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제안했다. 과거 강북 4대문 안 규제 덕분에 강남이 성장했으므로 그 경험을 살려 강남·서초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에 대한 신설과 증설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훈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강남 지역의 넘치는 세수를 강북 발전에 끌어다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업 지역이 많은 강남에서 걷는 종토세는 그간 집중 혜택을 받은 결과물이므로 강남 주민만의 몫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거주자의 종토세분 몫은 서울시 몫으로 돌려 낙후 자치구 개발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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