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 부인 권양숙씨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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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 털고 대문 활짝 ‘너른 발 내조’ 시동


9월10일 민주당사 앞마당에는 배추가 잔뜩 쌓였다. 의원 부인과 여성 당직자들이 수재민들에게 보낼 김치를 담그러 나선 것이다. 그 중심에는 노무현 후보 부인 권양숙씨(55)가 있었다. 이른바 비노(非盧) 진영 부인들도 참가했다. 한 당직자는 “남편들은 매일 쌈박질인데, 부인들이라도 함께 움직이는 걸 보니 뭔가 희망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권씨에게도 시련기는 있었다. 6·13 지방 선거와 8·8 재·보선에서 참패한 후 노후보가 ‘사퇴론’에 휩싸이자 권씨 역시 실의에 빠졌다. “모든 의욕이 사라지더라. 며칠간 대외 활동을 딱 끊고 친구 몇 사람만 만났다”라는 것이 권씨의 말이다. 노후보는 그 즈음 권씨의 가슴앓이를 이렇게 기억했다. “하루는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데 아내가 밤늦게 들어온 아들을 붙잡고 ‘건호야, 무슨 말이든 엄마에게 한마디만 해주고 자라’고 매달리더라. 나한테는 아무 말도 못하고 혼자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을까 싶어 가슴이 찡했다.”



그런 권씨가 후보 부인으로서의 행보를 다시 시작한 것은 노후보가 출입기자들과 잘 사귀지 못한다는 참모들의 얘기를 전해듣고서다. “남편이 정치인일 뿐 가족은 정치인이 아니다”라며 언론과의 접촉을 극구 꺼려왔던 권씨는 이후 기자들을 그룹 별로 만나 정식 인사를 나누고 남편에 대한 ‘홍보’를 시작했다. “노후보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더 많은 사람이다. 노후보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내게라도 언제든지 연락해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마지막에 “도와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내친 김에 그는 릴레이 집들이를 추진했다. 8월18일 첫 공개를 한 지 한 달도 안되어 열 번 넘게 집들이를 했다. 9월12일에는 여성지 기자들이 다녀갔고, 추석 이후에는 실·국장급 당직자들을 초대할 예정이다. 한 참석자는 “후보가 어떻게 사는지도 보고, 후보 부부가 손을 맞잡고 부르는 노래도 들었다. 후보와 상당히 가까워진 느낌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의원 부인들과 친해지는 것도 권씨 몫이다. 그는 그동안 친노·반노 가리지 않고 의원 부인들과 틈틈이 만나 얼굴을 익히고, 함께 각종 사회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며 친밀감을 쌓았다. 그 사이 불우이웃돕기 바자회를 여러 차례 열었고, 9월14일에는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명예총재로 있는 ‘사랑의 친구들’ 주최 바자회에도 참석했다. 9월5일에는 의원 부인 25명과 강원도 수해 현장에 다녀왔는데, 그때 수재민들에게 먹거리가 부족한 것을 보고 김치 담그기를 기획했다. 후보 부인을 담당하는 이은희 특보는 “비둘기회는 민주당 의원 부인들의 공식 모임이다. 여기에는 친노, 반노가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 한달 간 권씨의 활동을 지켜본 민주당 내부에서는 “후보 부인이 후보의 부족함을 넉넉히 메워주고 있다”라는 호평이 나온다. 사실 노후보가 후보로 확정된 후 당 안팎에서는 권씨의 ‘초라한’ 배경에 대해 아쉬워하는 소리가 적잖았다. 여상 중퇴에 농사꾼의 딸이라는 이력이 다른 후보 부인들의 그것과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씨 부친이 좌익 활동을 했다가 옥사했다는 점은 민주당 경선 때부터 노후보에게 짐이 된 터였다.
“여태까지 별다른 구설에 안 오르는 걸 보면 사모님이 상당히 훌륭하신 것 같다”라는 이낙연 대변인의 덕담에 노후보는 “내세울 것 없는 여자랑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좋은 소리도 듣게 되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가면 권씨가 다시 한번 마음 고생을 하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한나라당이 부친의 좌익 경력을 그냥 넘기지 않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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