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다, 꼬여” 웃다 우는 일본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2.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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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 특구 등장으로 대북 행보 삐끗…“돈 내고 바보 될라” 걱정



신의주 특구가 등장하자 떨떠름해진 것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고이즈미 총리가 전격 방문해 북·일 교섭의 물꼬를 틀 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시간이 일본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의주 특구가 갑작스레 등장함으로써 사태가 엉뚱한 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우선 그 직접 여파로 미국 특사의 북한 방문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루어지게 되었다. 북·미간 대화가 본격화하면 북·일 수교 협상의 핵심 내용들이 이 과정에서 결판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 스스로 경협 자금은 대량살상무기 문제와 연동된다고 밝혔기 때문에 스스로 뒷전으로 물러난 꼴이 되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을 계기로 동북아에서 독자 외교를 펴고자 한다는 일본의 주장이 무색해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다. 북한 개발의 서쪽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의주의 경우 이미 판도가 유럽과 중국 자본 중심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신의주 개발은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동해선 철도 연결 등 동해 축 개발에도 탄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8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신의주 특구 개발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고 한다. 당시 이미 유럽 자본을 끌어들일 것이라는 얘기도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의선이 통과하는 관문인 신의주는 중국횡단철도(TCR)의 기점인 동시에 훈춘을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된다. 신의주에서 생산된 제품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유럽으로 수출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중국·러시아·미국에 싸여 ‘사면초가’ 꼴


푸틴 대통령이 시베리아횡단철도 사업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바로 유럽의 존재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시베리아철도의 최종 고객인 유럽이 한반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수출입은행 배종렬 박사는 유럽이 한반도 문제에 본격 개입하기 시작한 시점을 지난해 5월 요한 페르손 스웨덴 총리가 남북한을 동시 방문한 때부터로 잡고 있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이기도 한 스웨덴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북한과 유럽연합 국가간 수교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북한의 경제 시찰단이 유럽연합 국가들을 순방하며 시장경제 운영의 노하우를 배웠다. 유럽연합은 올 3월, 2004년까지의 북한 개발과 관련한 전략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지난 7월의 시장 개혁 조처에서부터 최근의 신의주 특구 문제에 이르기까지 유럽연합이 북한의 개혁 개방에 깊숙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푸틴의 시베리아횡단철도 사업에 냉소적이었던 일본이 긴장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배경에 유럽연합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다. 더군다나 푸틴이 이런 배경을 믿고 동해선 철도의 북한 구간을 러시아가 담당하겠다고 호언하기에 이르자 더 참고 있기가 어려웠다. 이는 곧 러시아가 원산 이남까지 남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푸틴의 행보를 가볍게 본 일본으로서는 낭패였다. 그래서 서둘러 고이즈미가 방북하기에 이르렀으나 바로 뒤이어 신의주 특구 구상이 발표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서쪽은 유럽과 중국, 동쪽은 러시아, 거기에다 미국까지 가세하면서 정작 일본은 돈을 내면서도 마땅히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발견하기 힘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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