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사회는 위험 사회다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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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경제적 풍요를 위해 달려온 우리가, 산업 문명을 적극 추종해온 우리가 대구 중앙로역을 비극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방화 혹은 화재 사건이라고 부르지 말자. 후진국형 재난이라는 비아냥도 귀담아 듣지 말자. 수십년 동안 군홧발이 이끌어온 ‘압축 발전’의 폭발이라고 몰아가지도 말자. 2·18 대구 지하철 대참사의 근본 원인은 우리 모두가 그토록 맹종해온 근대화, 즉 산업 문명 그 자체이다. 무고하게 스러져간 생명들 앞에 한 송이 국화를 바치고 돌아설 때, 우리는 우리 자신(근대성)을 돌아보아야 한다.





대형 사건·사고를 징검다리처럼 건너오는 동안, 우리는 그 원인을 언제나 바깥으로 돌렸다. 어떤 때에는 정권을 탓했고, 어떤 때에는 시스템 부재와 안전 불감증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성금을 모으고, 검은 리본을 단 뒤, 우리는 모두 잊었다. ‘안전한 일상적 삶’으로 복귀했다.
분노와 절망, 허탈 그리고 망각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프로그램’이 또 돌아간다. 하지만 이번 대참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문제 의식을 요구한다. 낡은 렌즈를 들이댔다가는, 그 원인조차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희생자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남긴 저 기막힌 ‘유언’들은, 살아 남은 우리들에게 ‘지금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절규한다.


재난은 일상적 삶의 바깥에 있지 않다. 위험은 이미 우리 일상 생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늘과 바다는 물론이고 땅 속에서, 거리에서, 대형 건물에서, 아파트에서, 먹을거리 안에서 ‘시한 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과학 기술을 권력화한 전문가들은 자연에서 한 걸음 나아가 미래까지 식민화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저 시한 폭탄이 언제, 어디에서 터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막대한 방사능이 유출되던 1980년대 중반,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라는 충격적인 이론을 내놓았다. 과학기술 지상주의를 엔진으로 한 산업 문명은 최고 속도에 이르러서야, 자기 바로 옆자리에 ‘위험 사회’라는 괴물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벡이 보기에, 경제적 부를 추구하는 산업 사회는 발전하면 할수록 구조적으로 위험과 마주친다.





사회학자 홍성태씨에 따르면, 서양에서 위험(risk)이라는 개념은 17세기 스페인 항해술 용어에서 나왔다. ‘암초를 뚫고 나가다, 위협을 감수하다’는 의미를 지닌 위험은 산업 자본주의 시대를 이끈 슬로건이었다. 지난 수세기 동안 경제적 부는 위험을 감수해야 얻을 수 있는 ‘노획물’이었다.
위험 사회는 풍요와 속도를 추구하는 산업 문명이 키워온 ‘내부의 적’이다. 위험 사회는 우리가 합의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추종해온 산업 문명에 대한 치명적인 역설이다. 우리가, 오직 경제적 풍요를 위해 달려온 우리가 대구 중앙로역을 비극의 현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휴대전화에 남겨진 희생자들의 ‘유언’(커버 스토리 지면 상단)을 읽는다는 것은, 한송이 국화를 바치거나 촛불을 밝히는 것과 다름없다. 고인들을 애도하면서, 우리는 산업 사회의 또 다른 얼굴, 아니 다름아닌 우리들의 또 다른 얼굴인 ‘위험 사회’를 직시해야 한다. 그리하여 저마다 스스로 캐물어야 한다.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 위험이 증가하는 이 삶의 방식은 과연 옳은 것인가.’ 하루빨리 그 대답을 찾아내는 일이 억울한 죽음에 대한 예의이자 살아 남은 자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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