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부활한 마녀 사냥
  • 김은남·고제규·차형석 기자 ()
  • 승인 2004.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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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과거사 규명’ 드라이브가 부메랑을 맞고 있다. 신기남 의장에 이어 이미경 의원과 정동영·김근태 장관까지 ‘아버지의 이름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계 입문 9년째, 정치인 이미경은 올 들어 비로소 정치적 전성기를 구가하는 듯싶었다. 두 번의 전국구 생활을 마치고 17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생환’한 그녀는 이제 집권 여당의 명실상부한 중진 의원이었다. 당에서는 당원 투표를 통해 선출된 상임중앙위원이요, 국회에서는 상임위원장(문화관광위원장)으로 당분간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질 듯했다.

그런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이 이른바 과거사 문제이다. 지난 8월18일, 이의원이 아테네올림픽 개막식 참관차 한국을 비운 사이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미경 의원 아버지도 헌병 출신이라든데’라는 제목의 글이 올랐다. ‘brb9013’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네티즌이 올린 것으로 되어 있는 이 글은 다섯 줄의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열린당 이미경 의원 아버지도 일본 헌병 출신이란 것은 전직 세관 출신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 그 부친(이봉건씨)은 전직 세관장이며 이 사실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전 심정구 의원.’

때마침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이 일본군 헌병 오장을 지낸 부친의 전력 문제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직후여서 이 글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진보누리’ 등 인터넷 사이트와 온갖 포털 사이트에 소문이 퍼지는 데는 반 나절이면 충분했다. 이미경 의원 홈페이지에도 “소문이 사실이냐?” “사실이라면 엄청난 충격” 등등의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소문은 사실일까? 8월19일 오후 귀국한 이의원은 일단 “현재 사실 관계를 파악 중이다. 사실 확인 작업이 끝나는 대로 내 입장을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이의원은 나아가 인터넷에 부친 관련 의혹이 떠돌기 직전 그같은 소문을 접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작년 말 고향을 방문했다가 한 친지로부터 ‘네 아버지가 일본 헌병이었다는 얘기가 있었다’는 말을 처음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이의원은 부친의 전력을 알 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친이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행적을 증언해줄 주변 인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생존해 있는 모친 또한 광복 직후 한국에 돌아온 부친과 혼인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일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이미경 의원 부친, 일본에서 헌병 근무”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이의원의 부친 이봉권씨(1922~1996)는 일본 관서 대학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인터넷에 떠도는 ‘이봉건’은 이봉권씨의 오기로 보인다). 이씨가 대학에 다닌 1940년대 당시 관서 대학에는 일반학부와 전문학부가 있었는데, 이씨는 그 중 야간인 전문학부에 다녔던 것으로 파악된다.

광복 이후 한국에 건너온 이씨는 잠시 교사로 있다가 세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세관 등지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부산세관장과 인천세관장, 관세무역연구원장을 지냈고, 1979~1981년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을 지냈다. 인터넷 고발 글에 언급된 심정구 전 한나라당 의원은 현 한국관세사회 회장이다.

심씨에 따르면, 이씨가 일본 헌병 출신이라는 소문은 이씨가 현직에 있을 때도 간간이 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심씨는 소문을 들었을 뿐 사실 여부는 알지 못하며, 설사 일본에서 헌병을 지냈다 한들 그것이 친일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미경 의원 부친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전개될 과거사 규명 및 처리 국면에서 중요한 쟁점 몇 가지를 던져준다. 우선 중요한 것이 이의원의 부친이 과연 일본 헌병이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만약 일본 헌병으로 복무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에 의한 것이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심정구 전 의원은 “이의원 부친께서 일본에서 공부하다가 현지 헌병으로 징용됐다는 소문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판적인 네티즌들은 ‘징용된 조선인이 일반 학병이 아닌 헌병이 될 수도 있느냐’며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친일 문제 연구가는 “가능성은 있다”라고 설명했다. “종전(終戰)을 앞두고 일본군은 일본 내 유학생들에게 학병을 끈질기게 권유했다. 그러다 안되면 강제로 끌고가곤 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실제로 이의원 부친과 같은 시기에 관서 대학 법학부를 다닌 조 아무개씨는 “그때는 학병 권유가 말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말이 자원병이지 실제로는 징병이나 다름없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이렇게 끌려가 병과를 받는 과정에서 헌병으로 배치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고 앞서의 친일 문제 연구가는 덧붙였다. 그럴 경우 보통 이등병·일등병·상등병 같은 하위 계급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오장(하사관) 이상 상위 직급에 있었을 경우에는 당사자가 헌병에 자원했거나 적극적 친일 행위자였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의원 부친이 헌병이었을 경우 직급 규명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설사 부친이 친일·부일 행위를 했다 해도 자식이 이를 책임져야 하느냐는 별개 문제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이의원은 신기남 전 의장과는 다르다. 신 전 의장은 부친의 헌병 복무 경력 그 자체보다 부친의 전력을 알고도 숨겼다는 ‘거짓말’ 의혹이 일면서 정치인으로서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의원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도 또 다르다. 한나라당측은 정부·여당의 과거사 규명 공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끄집어내 박대표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연좌제적 성격이 짙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쪽은 ‘유신 독재 정권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박대표 본인 또한 과거사 책임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이의원은 어두운 과거사의 직접적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유신시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그녀는 1970~ 1980년대 독재 정권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이의원 친언니인 이옥경씨(<내일신문> 편집국장)나 형부인 고 조영래 변호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한다고 감옥에 들락거리는 동안 공무원 신분이었던 아버지는 두 차례나 사표 압력을 받아야 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이의원의 숙부가 월북자라는 사실이다. 일부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대로 친북 용공으로까지 과거사 조사 범위를 확대하게 된다면, 이의원 같은 경우는 친일과 친북 조사 모두에 가족사가 걸리는 비운을 겪게 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의원 부친 전력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가 과거사 규명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수용할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과거사 진상 규명을 반대하는 쪽은 뒤늦게 아픈 가족사를 들춰내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실익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조선일보는 아예 ‘대한민국을 부끄러운 나라로 만들기로 작정했는가’(8월20일 자 사설)라고 일갈하고 나섰다. 지금 정치권이 정략에 사로잡혀 ‘구한말 이래 조상들의 온갖 부끄러운 이야기, 어두운 과거를 집대성하는 수치의 역사를 다시 써서 세계에 고하는 전대미문의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국익우선론 내지 국민통합론은 반 세기 전 반민족행위 특별 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결성될 때도 똑같은 논리로 제기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심지어 친일 진상 규명에 앞장선 핵심 인사들을 겨냥해 온갖 흑색 선전과 중상 모략이 횡행하는 것도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닮았다.
신기남 전 의장의 낙마를 전후해 인터넷에는 집권 세력의 핵심 인사를 겨냥한 악선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경 의원뿐만이 아니다.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로 손꼽히는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부친이 일제 치하에서 금융조합 서기를 지냈다는 경력 때문에 ‘연좌제 논란’에 휩싸였다. 또 다른 유력 주자인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또한 부친이 소학교 훈도(교사)를 지낸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들의 부친 경력을 문제 삼는 네티즌들은 ‘일제 시대 조선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한 금융조합에서 녹을 먹은 직원이었다면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한 게 맞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마찬가지로 훈도는 황국 신민화 교육의 첨병 노릇을 했으니 친일·부일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은 인신 공격 내지 마녀 사냥이나 다름없다고 민간 단체는 입을 모은다. 물론 반민특위가 작성한 반민 피의자 명단이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2002년 작성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오른 7백8명처럼 사회 지도층에 속했거나 경찰·군 간부를 지낸 인사라면 ‘당연직 친일파’라는 오명을 씻기 어렵다. 그러나 고위급이 아니라면 조사 대상자의 당시 직급과 직무가 어떠했는지를 사례 별로 면밀히 따져야지 ‘누구는 교사였으니까 무조건 일본 앞잡이’라는 식으로 몰아세웠다가는 친일·부일 혐의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치권이 흥신소로 전락하고 있다. 족보 캐기식 과거사 청산은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잘라말했다. 이번만은 우리 사회가 과거로 퇴행하지 말고 미래를 위한 의무로서 과거사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이이화씨(‘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국민대표)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과거사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라며, 과거사 진상 규명은 대통령의 의지라기보다 지난 몇십 년간 민간단체가 꾸준히 활동한 결과 얻어낸 성과임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력은 엄존한다. 보수 언론은 시민단체와 권력간 유착설을 퍼뜨리고 있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과거사 공방 국면에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과거사 진상 규명이 노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나? 아니었다. 임기 시작하고 지난 1년간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꺼낸 적이 있나? 그것도 아니었다. 굳이 박근혜 대표가 대표 직에 취임한 직후 이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청와대측은 상당히 불쾌하다는 반응이다(23쪽 상자 기사 참조). 집권 여당 또한 마찬가지이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총선 이후 17대 국회를 제2의 제헌의회로 만들겠다며, 입법 차원에서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국정 주도권을 장악하고 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 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억울한 사상자가 속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상자가 주로 과거사 문제를 먼저 제기한 집권 세력 쪽에 몰려 있다는 점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국면의 또 다른 특징이다. ‘노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수는 늘 측근의 희생부터 동반한다’는 속설이 정치자금 게이트에 이어 이번에도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이는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여당 쪽이 ‘과거 폭로’ 식의 대응을 자제한 탓도 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마음만 먹으면 한나라당 몇 사람쯤은 흠집 낼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과거사 규명의 본질은 실종되고 진흙탕 싸움으로 비칠까 봐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녀 사냥이 횡행하면서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정동영 장관의 한 참모는 부친 친일 논란이 터무니없다면서도 혹시나 싶어 정장관 고모·숙부 등 친척들을 상대로 사실 확인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이번에 고향에 가면 할아버지·아버지가 과거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자세히 물어봐야겠다”라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억울한 사상자 나오지 않게 지혜 모아야

특히 신기남 전 의장 스스로가 의장 직을 사퇴하며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치 세계에서는 연좌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여권 인사들의 부담은 더욱 크다. 상대방을 겨냥했을 이같은 발언이 거꾸로 자기 편을 옥죄는 사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억울한 사상자가 더 나오지 않게 정치권과 시민 사회는 하루빨리 지혜를 모아갈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여야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치열한 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보수 세력은 보수 세력대로 과거사 청산을 뒤로 미루거나 최소화하자는 주장을 펴다가, 그것이 안될 것 같으니까 아예 친북·용공까지 과거사 규명 범위를 확대하자고 물귀신 작전을 펴고 있다.

반 세기 전, 지금과 마찬가지로 과거사 규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보수 세력을 향해 백범 김 구는 일찍이 이런 충고를 남긴 바 있다. ‘이 땅의 우익 중에는 왕왕 친일파·반역자 집단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백범어록>). 이들은 우익이 아니라 ‘우익을 더럽히는 군더더기 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이 김 구 선생의 쓴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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