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약진, 거침 없어라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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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건희 회장 영향력 더 커져…기업 부문에서도 압도적 1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국내 최대 기업집단의 총수라는 후광을 업고 올해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경제 관료와 벤처기업가 포함)으로 뽑혔다. 이회장은 지목률 95.4%. 지난해(지목률 86.3%)보다 10% 가까이 올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57.3%를 얻어 35.4%에 그친 구본무 ㈜LG 회장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지난해 영향력 2위였던 구회장은 정회장에게 밀려 3위 자리로 밀려났다. 이헌재 경제 부총리는 8.0%로 4위에 올라 경제 관료로는 유일하게 순위에 들었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3.2%)의 건재는 벤처 기업이 추락하는 대세와 대비되어 더욱 돋보였다.

경제인 1위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회장이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순위)에서 지목률 38.6%를 얻어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회장은 1992년 종합순위 7위로 10위권에 처음 등장한 이후 줄곧 4~6위 중위권을 형성했으나 지난해 3위로 약진한 후 올해 2위까지 오른 것이다. 경제인이 내로라 하는 정치인을 제치고 2위에 오른 것은 1999년 조사에서 2위를 차지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유일했다. 더욱이 원내 제2당 대표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3위로 밀어냈다는 것은 이회장의 영향력이 재계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티즌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2위에 올랐다.

이건희 회장이 가진 영향력은 삼성그룹의 총수라는 지위에서 파생된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업 1위에 뽑힌 삼성그룹 지목률은 93.9%. 이회장 지목률과 비슷하다. 또 삼성전자 지목률 5.7%를 더하면 삼성그룹 전체 지목률은 99.6%에 이른다. 응답자 전체가 삼성을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업으로 지목한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매출 1백21조원, 순이익 7조4천억원을 기록했다. 시가총액(올해 5월 기준)은 1백26조5천억원으로 전체 상장 기업 시가총액의 31%를 차지한다. 또 지난해 수출액은 한국 전체 수출의 20% 가량인 3백77억 달러, 납세액은 6조5천억원으로 전체 납세액의 6.3%를 차지했다.
세계 IT 산업의 리더로 떠올라

푸른색 타원에 흰색 영문으로 씌어진 삼성 로고(SAMSUNG)는 세계 시장에서 ‘주식회사 한국’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계열사 삼성전자는 세계 IT(정보 기술) 산업을 주도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절대 강자의 지위에 올랐다. 해외 언론이 이건희 회장을 세계 IT산업을 이끄는 지도자로 손꼽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경영인(management)이 아니라 리더(leader)다. 기업이 나아갈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 실행 전략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은 전문 경영인에게 일임한다. 세부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계열사 사장단이 갖는 권한이 국내 다른 기업의 전문 경영인들보다 큰 것은 이 때문이다. 대신 경영 실적이 형편없으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위기 의식이 사장단 사이에 팽배하다. 그러다 보니 계열사 간에 시장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사장단은 차세대 디지털TV 주력 제품으로 액정표시장치(LCD) TV와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를 각각 내세우며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사업 변곡점 읽는 안목 탁월…학습욕도 높아

이회장은 사업의 변곡점을 읽는 안목이 탁월하다. 2002년 10월 이회장은 반도체 특별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반도체 사업부문 주력 제품을 D램에서 플래시 메모리로 바꾼다고 선언했다. 당시 플래시 메모리 분야 1위를 차지했던 인텔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플래시 메모리 시장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가 세계 IT 최강자 인텔을 제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한 이들을 무색케 한 것이다.

이회장은 학습 욕구가 왕성하다. 경영 참고서나 화제의 책도 거의 빼놓지 않고 읽는다. 사회 각 분야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유명인은 어김없이 이회장의 면담 대상이다. 이를 위해 삼성 회장실 비서팀은 주목되거나 화제를 만드는 각계각층의 유명인 명단을 정기적으로 이회장에게 보고한다. 또 해외 출장을 가면 세계 석학을 만나는 일을 즐긴다.

이회장은 나서기를 극도로 싫어해 ‘은둔의 카리스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럼에도 그는 작심한 듯 한 해에 한두 차례씩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말걸기를 시도한다. 그가 제기한 ‘마의 1만달러론’과 ‘천재경영론’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국가 운영 전략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사회·문화 전반에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건희 회장이 한국 사회에 던질 다음 화두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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