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서울대생은 누가 죽였나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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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원들 “운동권 학생 살해한 적 없다” 한목소리
2002년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는 5공 시절 실종된 운동권 학생 2명이 안기부로부터 비밀리에 사주를 받은 북파공작원들에게 살해되어 저수지에 수장되었다는 제보가 날아들었다. 제보자는 전직 북파공작원 박 아무개씨였고, 살해되었다는 운동권 학생은 안치웅(서울대 국제경제과 82학번, 1985년 실종)·노진수(서울대 법학과 81학번, 1982년 실종) 씨였다.

제보자 박씨는 북파 공작 훈련 동기인 김 아무개와 이 아무개 두 사람이 안기부 소속 장 아무개 팀장의 지시를 받고 노동 현장에 위장 취업한 안씨를 납치해 빨래방망이로 뒷머리를 쳐 살해한 뒤 자기에게 시신을 가져와 함께 창원에 있는 저수지에 돌을 매달아 수장했다고 주장했다.

의문사위는 이 제보를 토대로 2년에 걸쳐 현장 답사와 용의자 행적 조사를 벌인 끝에 지난 여름 제보 사건이 허위라고 결론지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북파공작원들은 범행을 했다는 시간에 원양선을 타는 등 알리바이가 입증되었다. 또 학생들 시신을 수장했다는 저수지 물을 빼고 뒤졌으나 유골이 나오지 않았다.

기자는 별도로 용의 선상에 올랐던 북파공작원들을 만났다. 김 아무개씨는 “당시 다른 정치 테러를 한 적은 있어도 운동권 학생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보사가 그들을 암적 존재라고 말하고 죽여서 수장하라고 시켰다면 주저없이 실행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북파공작원 역시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볼 때 시켰다면 충분히 실행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우리 팀에서는 그런 일을 한 적도 없고 소문도 듣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제보자 박씨는 왜 그런 제보를 했는지는 끝까지 함구한 채 “실종자 가족과 내가 용의자로 지목한 북파 동기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의문사위는 박씨를 허위 제보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보는 북파공작원 출신들 내부의 불화에서 비롯한 허위로 드러났지만, 군사 정권 시절 각종 의문사와 실종 사건을 두고 당시 안기부 및 보안사의 사주를 받은 정보사 정치 테러 조직에 쏠리는 의심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유신 시절에 발생한 장준하 선생 의문사라든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살해, 5공 시절 발생한 조선대생 이내창씨 의문사와 안치웅·노진수·심오석 씨와 같은 수많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실종 사건 진상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장준하씨 의문사를 조사한 2기 의문사위의 한 관계자는 “조사해보면 모든 정황상 심증은 확실히 가지만 조사 권한이 미약해 결정적 증인이 발을 빼버린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2기 의문사위 활동에 대해 유난히 군 당국, 특히 기무사가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대목도 석연치 않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 관련 법이 제대로 통과되면 감추어진 정보사의 정치 공작 진상도 적지 않게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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