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년 올해의 인물’ 황우석, ‘기적의 의학’ 희망을 밝히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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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는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내 올 한해 국내외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그의 업적을 두고 생명 윤리 논란도 일었지만, 그가 과학계의 오랜 난제인 난치병 치료에 신기원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기가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였다. 인간 배아 복제 연구의 신기원을 연 황우석 박사와 한류 돌풍을 몰고 온 ‘욘사마’(탤런트 배용준씨). 두 사람의 각축으로 인해 <시사저널> 기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두 사람에 대한 지나친 조명이 혹 국수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우려도 적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이같은 명암을 종합적으로 다룬다는 전제 아래 황우석 박사를 올해의 인물로 최종 선정했다. 그 이유는 본문에서 밝혔다.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강의석군 또한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음을 밝혀 둔다.

황우석은 누구인가

 
황우석 교수는 1953년 충남 부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내내 소와 함께 성장했다.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것은, 1980년대 중반 인공 임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일본 훗카이도 대학으로 유학한 일이었다. 1년 남짓 그 곳에 머무르며 그는 능력이 뛰어난 우량종을 대규모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복제가 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끊임없이 복제에 매달렸다. 그 결과 1993년 국내 최초로 시험관 송아지를 만들어내고, 1995년에는 ‘할구분할’ 복제 송아지를 생산했다. 그리고 그 해부터 체세포 복제에 매달려 1999년 체세포 복제소 영롱이(젖소)와 복제 한우 진이를 탄생시켰다. 2003년에는 장기 이식용 복제 돼지를 생산했지만 16시간 만에 잃는 슬픔을 겪기도 했다. 지난 10월에는 유엔에서 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올해 그이만큼 바쁘고, 그이만큼 많은 찬사를 받은 사람이 또 있을까. 인간 복제 배아에서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를 추출해낸 황우석 교수(52·서울대·수의학과)를 두고 하는 말이다. 권위 있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최근 ‘올해의 획기적 10대 연구 성과’의 하나로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꼽았다. ‘동물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복제를 인간에게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처음 입증했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한국의 연구 성과가 <사이언스>의 ‘획기적 10대 연구 성과’에 뽑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월12일, 그가 미국 시애틀에서 문신용 교수(서울의대·산부인과)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인간의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해냈다’고 발표했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랐다. 뉴욕 타임스는 1면과 사회면에서 황교수 연구팀(연구팀)의 연구 성과를 큼지막하게 보도하며 ‘두 교수의 연구로 인해 복제 아기가 탄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줄기세포 대가(大家)로 알려진 피츠버그 의과대학 제럴드 새턴 교수는 “기절할 만한 성과다. …이처럼 빨리 성과가 나와 아연실색했다”라고 말했다.

과학계 찬사 ‘봇물’…후원회 결성도 잇따라

 
국내에서도 지지가 잇따랐다. 서울대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그를 석좌교수로 임명했고, 과학기술부와 재계 인사들은 황우석후원회를 결성했다.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백65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연구비를 지원하고, 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원 두 사람을 파견했다.

그가 2004년 ‘영웅’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과학계의 난제’를 세계 최초로 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간 배아는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1997년 영국에서 세포핵을 제거한 난자에 체세포를 이식하는 방법으로 복제 양 돌리를 만들어낸 이후, 수많은 과학자가 같은 방법으로 포유류를 복제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도 인간이나 원숭이 같은 영장류를 복제하지 못했다. 복제 과정에서 세포 분열에 필요한 단백질이 손실되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1997년 10월, 미국 위스콘신 대학 제임스 톰슨 박사와 존스 흡킨스 대학 존 기어하트 박사는 인간의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그 덕에 ‘이식 의학’이라는 새로운 질환 치료법이 등장했다. 그것은 당뇨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질환(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소멸해서 걸리는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상처 부위에 줄기세포를 이식해서 손상된 세포를 정상으로 만드는 치료법이었다.
‘찍소’처럼 우직한 집념의 결실

배아 줄기세포가 놀라운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만능 세포’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배아 줄기세포는 몸을 구성하는 2백여 가지 세포로 분화한다. 그 세포를 신경세포나 근육세포, 혈액 세포로 분화시킨 뒤 병에 걸린 조직이나 장기 등에 이식하면 난치병도 치료할 수 있다.

그렇지만 톰슨 박사와 기어하트 박사가 배양한 줄기세포로는 여러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줄기세포의 유전자가 난자의 주인인 여성에게만 적합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다른 사람의 체세포를 주입해 만들어내는 복제 배아 줄기세포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것이 가능하면 환자의 체세포를 난자에 주입해 환자에게 적합한 줄기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교수 연구팀 역시 이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말렸다. 이미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연구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그들의 충고였다. 그러나 그는 0.01%의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어린 시절 그는 ‘찍소 같은 놈’ 소리를 자주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일감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소처럼 끈덕지게 밀어붙여서 붙은 별명이었다. 찍소처럼 그는 앞만 보고 나아갔다.

과학자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연구 논문을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다. 독창성을 어느 분야보다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교수는 달랐다. ‘모방의 귀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신의 연구 내용과 관련 있는 논문을 보고 또 보았다. 그 과정에서 그가 응용한 것은 복제 양 돌리를 만드는 데 사용된 체세포 핵 이식 기술과 냉동 배아를 이용한 배아 줄기세포 체외 배양 및 분화 기술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모방을 했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에 실리지 못했을 것이다. 기존 연구 내용을 참고만 했을 뿐, 그는 남보다 한 발짝 앞서서 연구해 나갔다.

연구팀은 우선 자원 여성 16명에게서 난자를 2백42개 공여받았다. 그리고 그 난자에 체세포를 삽입하고 전기 충격을 가해 세포 융합을 꾀했다. 그 결과 배아 30개가 배반포기 배아로 배양되었다. 줄기세포는 배반포기 배아에 있는 내부세포덩어리로 만든다. 따라서 잘하면 줄기세포주(株)를 30개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연구팀이 최종적으로 얻은 줄기세포주는 고작 1개였다. 줄기세포주란 영원히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죽지 않는 세포를 말한다(국내에는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에 3개가 더 있다).

황교수 연구팀의 연구 성과는 영국의 노화 연구자 톰 커크우드가 꿈꾸던 ‘영생(永生)하는 세상’이 결코 꿈만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임상 활용까지는 아직 갈 길 멀어

이필렬 교수(방송대)에 따르면, 커크우드는 <우리 생명의 시간>에서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가상 세계를 이렇게 그렸다. ‘…이 세계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채취해서 영구 보관한다. 그리고 아기가 자라나서 나이 마흔이 되면 처음 세포 교체를 시행한다. 세포 교체는 몸속의 모든 세포를 줄기세포 배양을 통해서 얻은 아주 싱싱한 세포로 대체하는 것이다. 세포 교체는 40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영원히 살게 된다.’(<녹색평론> 제75호).

그러나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임상에서 활용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줄기세포 하나를 만드는 데 너무 많은 난자가 소요된다. 현재 기술로는 난치병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난자가 2백42개나 필요한 셈이다. 또 연구팀이 만든 줄기세포는 난자 공여자의 체세포를 융합해 만든 것이어서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가 없다. 특히 남성은 사용하기가 더 곤란하다.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체세포가 본질적으로 달라서 아예 배아 복제가 안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황교수의 복제 배아 줄기세포는 아직까지 ‘여성용’인 셈이다.

난제도 한둘이 아니다. 줄기세포의 어떤 부분이 어느 조직으로 분화하는지 오리무중이다. 오랫동안 잉여 냉동 배아를 연구해온 박세필 박사(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장)는 “줄기세포를 근육에 넣으면 근육·혈관이 되고, 심장에 넣으면 심장근육세포로 분화하는데, 무엇이 줄기세포를 그렇게 변화시키는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가령 간암 환자에게 배아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줄기세포가 제멋대로 분화해서 근육이나 암세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원하는 쪽으로 분화하게 하는 유전자를 줄기세포에 집어넣어 분화를 유도하는 연구가 시도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언제 실용화할지는 미지수이다. 줄기세포를 대량으로 증식하는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줄기세포를 기다리는 환자는 수없이 많은데, 지금의 방식으로는 물량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 윤리 논쟁 역시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난제다. 지금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는 배아를 생명으로 간주하고,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박병상 생명안전윤리연대 사무국장은 “치료 목적의 연구라면 기존 성체 줄기세포나 잉여 냉동 배아 줄기세포로도 얼마든지 연구가 가능하다. 왜 굳이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복제 배아를 이용해 연구하려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교수의 연구 성과가 주목되는 이유는, 복제 배아 줄기세포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난치병 치료에 신기원을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과학계는 지금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제 그가 어떤 결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그는 맞춤 의학의 선구자가 될 수도 있고, 생명을 파괴하는 이단아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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