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울다웃다
  •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r)
  • 승인 2005.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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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초기품질 평가에서 도요타를 누르고, <비즈니스 위크>는 정몽구 회장을 2004 최고의 CEO로 선정했다. 지난 5년간 품질에 살고 품질에 죽는 ‘품생품사 경영’이 큰 성과를 보인 것이다. 고 정주영 회
‘사람이 개를 물었다’ ‘지구는 평평하다’.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는 지난해 4월 말 시장조사 기관인 J.D.파워의 초기품질조사(IQS)에서 현대자동차 EF쏘나타가 중형차 부문 (Entry Midsize) 1위를 차지한 사실을 이렇게 비유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품질 개선 속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자동차 전문지뿐 아니라 뉴욕 타임스 같은 미국 언론들이 이 조사 결과를 크게 취급한 것은 현대자동차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일취월장했다는 점에도 기인한다. J.D. 파워가 총 37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실시한 초기품질 평가에서 현대자동차는 2003년 상반기 23위에서 무려 16단계나 수직 상승한 7위를 기록했다. 현대자동차는 102점을 얻어 벤츠(10위·106점)·아우디(11위·109점)·BMW(11위·109점) 같은 유럽차는 물론 세계 최고의 품질력을 자랑하는 도요타(9위·104점)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대가 도요타를 제쳤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1968년 설립되어 자동차 관련 소비자 만족도를 조사하는 기관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J.D. 파워는 내구성지수(VDS)·어필(종합 평가) 지수와 함께 초기품질 조사 결과를 매년 두 차례 발표한다. 초기품질지수는 신차 구입 후 3개월이 지난 차량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만족도가 높다.

J.D.파워와 함께 미국 자동차 소비자들의 또 다른 구매 기준으로 평가되는 <컨슈머 리포트>에서도 현대자동차는 선전했다. 지난해 11월 1997~2004년 생산·판매된 모델 총 81만대를 대상으로 한 자동차 신뢰성 평가에서 EF쏘나타는 중형차 부문 4위를 차지했다. 아반떼 XD도 소형차 부문에서 4위, 싼타페도 소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부문에서 6위를 차지해 우수 등급에 속했다. 이 소식은 현대자동차 사람들은 물론 자동차 전문가들을 충분히 고무시킬 만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현대자동차는 J.D. 파워 평가에서 최하위권을 맴돌았으며, <컨슈머 리포트>에는 아예 끼지도 못했다. 삼성증권 김학주 자동차·운송팀장은 “현대자동차는 세계 어떤 다른 자동차회사보다 품질을 개선하는 속도가 빠르다”라고 평가했다. 이런 놀랄 만한 성과의 중심에 정몽구 회장이 있다고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 정회장은 국내외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해 말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로부터 자동차 부문 2004 최고의 CEO로 선정된 것이 좋은 예다. <비즈니스 위크>는 현대자동차 품질을 비약적으로 개선한 공로에다 한국 내수 시장이 부진한데도 글로벌 경영을 펼쳐 실적을 크게 늘린 것이 선정한 이유라고 밝혔다. 1999년 현대그룹의 법통을 동생(고 정몽헌 회장)에게 넘겨주어야 했고, 삼촌(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여 현대자동차를 차지한 그는 자동차 경영에 전념해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으로 평가받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5년여 만에 자신의 말을 국내외에 증명해 보인 셈이다.

정회장은 영문 머리글자를 딴 ‘MK’라는 애칭을 갖고 있지만, 현대자동차 사람들에게는 ‘품생품사’라는 별칭으로도 통한다. 품질에 살고 품질에 죽는다는 뜻이다.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회장으로 공식 선임된 1999년 2월 이래 정회장이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품질 경영’이었다. 현대·기아 자동차 기획총괄본부 이지원 전무는 지난 5년간 정회장이 가장 중시한 것은 품질회의였다고 말했다. 정회장은 회의를 주재하면서 협력 회사 부품 하나하나의 성능까지 꼬치꼬치 따져 품질 관련 임직원들로 하여금 진땀을 흘리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투싼과 뉴스포티지, NF쏘나타 출시를 앞두고 몇번이나 퇴짜 놓은 것도 정회장이었다. “똑같은 품질 결함 또 발생하면 바로 잘린다”

한 증권사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최고경영자가 품질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정회장에게는 뼈저린 체험이 깔려 있다”라고 전했다. 현대자동차써비스를 경영하면서 차의 품질이 조악해 소비자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고 리콜도 많이 한 것이다. 결국 회사 수익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였다며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한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정회장이 품질 개선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했다. 미국과 중국에서 엘란트라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아반떼 XD 출시를 앞둔 2000년 초 정회장은 각 사업부 팀장급 이상에게 ‘앞으로 나오는 신차에서 실수든 고의든 결함이 발견되면 어떠한 책임도 달게 받겠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 과거 일은 문제 삼지 않겠으나 앞으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불호령이었다. 1999년 말 시판된 트라제XG를 6개월 사이 다섯 차례나 리콜하는 등 품질에 대한 의문이 크게 제기되던 때였다.

이후 현대·기아 자동차에는 똑같은 품질 결함이 또 발생하면 ‘그냥 잘린다’는 인식이 생겼다. 지난해 아산공장을 견학한 자동차산업연구소의 한 연구원도 “지난 5년간 최고경영자의 품질 혁신 의지만큼은 생산 현장의 말단 사원에게까지 전파된 것을 공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한 자동차 전문가는 현대자동차의 품질 향상을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혼다는 물론 도요타를 이겼다는 현대자동차측의 주장은 과장되었다고 꼬집었다. 품질이 좋아졌다는 주요 근거는 초기품질지수인데, 여기서 도요타 브랜드보다 나은 평가를 받은 것에는 몇 가지 짚어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도요타의 최고급 브랜드인 렉서스는 1990년대 중반 이래 부동의 1위로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인데, 렉서스에는 도요타라는 말을 붙이지 않기 때문에 평가에서 빠져 있다.

또 동급의 일본차에 비해 가격이 싸므로, 소비자의 기대 수준 자체가 일본차에 비해 적었던 탓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자동차 업체의 재정적 도움을 원하는 조사기관과 평가 결과를 좋게 하려는 자동차 업체 간의 이해 관계를 거론하기도 한다. 실제로 정회장은 새 차를 내놓을 때 유독 J.D. 파워 평가를 의식해왔다.

또 다른 자동차 전문가는 현대자동차의 품질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근거로 내구성지수를 든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3년 후 만족도를 평가하는 내구성지수에서 초기품질지수에 비해 불량 건수가 훨씬 많이 나타나고 있다. 내구성지수가 중하위권에서 맴도는 것은 현대자동차의 아킬레스건인 중고차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현대자동차가 도요타는 물론 혼다와도 아직 격차가 있다는 근거는 많다. 우선 미국 시장에서 EF쏘나타는 도요타 캠리나 혼다 어코드에 비해 쌀 뿐더러 동급으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J.D. 파워 조사에서 중형차 부문 1등을 한 EF쏘나타가 경쟁한 것은 올스모빌의 알레오, 시보레 말리부, 폰티악 그랜드 에이엠, 폴크스바겐 제타, 스즈키 베로나였다. 미국 시장은 중형차 부문에서도 EF쏘나타가 소속된 엔트리급보다 프리미엄급에서 경쟁이 격심하다. 캠리 어코드 등 20여 종이 넘는다. 그만큼 미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차종이기 때문인데, 프리미엄급 중형차 시장은 전체 자동차 시장의 35%를 차지한다. 엔트리급은 소형차(24%)보다 적은 15%에 불과하다. 정회장이 ‘NF쏘나타’를 내세워 프리미엄급 공략에 부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브랜드 가치·시장점유율, 도요타에 뒤져

품질이 좋아져 싸구려 차라는 이미지는 확실히 불식했지만, 아직 자동차 한 대를 팔아 벌어들이는 이익이 경쟁 업체들보다 적은 것도 정회장이 당면한 과제다. 현대자동차의 대당 영업이익은 2003년 기준 1백36만원으로 BMW(3백56만원), 도요타(2백18만원·2002년), 다임러크라이슬러(1백96만원)에 비해 낮다. 지난해 평균 단가가 1만5백 달러로 1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한국차의 경쟁력을 한마디로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시장점유율과 브랜드 가치일 것이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은 2.52%로 꾸준히 늘어났다. 기아자동차까지 합치면 한국차는 4% 벽을 넘어섰다. 한국차가 선전했다고 해석하기에 손색이 없지만, 도요타는 세 배가 넘는다. 현대자동차측은 2002년 이후 3년 연속 세계 시장 판매대수 기준으로 혼다를 이겼다고 밝혔다. 이것 역시 대단한 약진이지만, 미국에서는 시장점유율에서나 전체 매출액에서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에서도 한참 처진다. 국제적 브랜드 조사 기관인 인터브랜드 2004년 조사 결과를 보면, 100대 브랜드 명단에 현대자동차는 들어 있지 않다. 도요타(9위), 메르세데스 벤츠(11위), BMW(17위), 혼다(18위), 포드(19위) 같은 자동차회사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아직 정회장은 일본이나 독일 회사들이 수십 년간 쌓아올린 브랜드 가치에 접근조차 못했다. 여기에다 무분규는 물론 모범적인 노사 화합 기업으로 불리는 도요타나 BMW와 달리 현대·기아 자동차는 노사 관계가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기업이다.
최고급 브랜드 개발 위한 ‘V프로젝트팀’ 가동

물론 이같은 약점들을 정회장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매년 공격적인 연구 개발 투자를 하고 있으며 협력적인 노사 관계와 고용 안정을 위해 힘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브랜드에 대한 의지도 맹렬하다. 지난해 정회장은 “말을 탈 때 안장과 고삐를 함께 주듯이 신차를 출시할 때는 고객에게 품질과 브랜드 자부심을 함께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그는 “애써 만든 자동차를 제값 받고 팔려면 브랜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지속적인 품질개선으로 완벽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거듭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결기를 보였다.

지난해 8월 정회장은 브랜드위원회와 브랜드 전략팀을 발족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세우라고 주문했다. 비슷한 시기 도요타 렉서스 같은 최고급 브랜드를 개발하기 위한 특별팀 ‘V프로젝트팀’이 계동 사옥에 꾸려졌다. 한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정회장의 지시로 발족했는데 인사 발령 자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팀의 존재는 상층부 극소수와 차출된 사람만이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NF쏘나타에 MK 미래 걸렸다

정회장이 올해 승부수를 띄운 것은 5세대 쏘나타인 ‘NF쏘나타’다. 캠리와 어코드에 정면 도전장을 내민 차다. 지난해 9월 국내 시장에 나온 이 차는 올 3월 완공되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도 생산된다. 삼성증권 김학주 팀장은 “NF쏘나타는 엔진과 동력전달장치 등 모든 면이 새롭게 고안된 현대자동차의 야심작이지만,미국 소비자가 선택할지는 두고봐야 한다”라고 평했다. 소비자들의 구매 행위에 영향을 주는 브랜드와 가격, 특히 감성품질 면에서 NF쏘나타가 차별성을 가질지는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이다. 품질을 해결한 후에는 제품을 차별화하는 도구가 마케팅 능력이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에 드러날 NF쏘나타의 성과는 현대자동차의 품질 수준과 정몽구 회장의 경영 능력을 드러낼 가늠자가 될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해까지의 성과에는 삼촌인 정세영 전 현대자동차 회장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EF쏘나타·싼타페·투싼 개발이라는 ‘포니 정’(정세영 회장)이 구축한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정회장의 본격 발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정회장이 현대자동차의 얼굴이자 자부심이라고 표현한 NF쏘나타. 과연 NF쏘나타는 2002년 닛산이 뉴알티마를 내놓으면서 엔트리급에서 프리미엄급으로 업그레이드한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을까. NF쏘나타의 미래는 지난 5년 동안 현대자동차그룹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고 무엇보다 품질을 크게 높인 정회장에게 피를 말리는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 CEO를 자임하는 그에게는 올해가 진짜 자기 실력을 드러낼 원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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