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없는 ‘산불과의 전쟁’
  • 삼척·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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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반복되는 크고 작은 산불.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듯한 산불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얼굴이 숨어 있다.왜 큰 산불은 동해안에서만 자주 발생할까? 산불이 소나무숲을 좋아하는
불만큼 이중적인 것은 없다’. 초대형 산불이 났던 동해 내륙을 돌아보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2000년 4월7일 휴전선 근처 고성 군부대에서 처음 발화한 산불은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강릉·동해·삼척 일대로 번져 온 산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아흐레 뒤 가까스로 불길이 잡혔지만 피해는 컸다. 주민 2명이 사망하고, 여의도 면적의 80배에 달하는 23,794㏊가 잿더미로 변했다. 건물과 농기계 피해도 적지 않아서 6백38동과 8백18대가 불타버렸다. 또 추정이 불가능할 만큼 많은 곤충과 동물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산불의 위세는 여전하다. 2001∼2002년에만 산불 1천3백여 건이 발생해 4500㏊를 재로 바꾸어 놓았다. 올해에도 4월 말 현재 산불이 벌써 2백13건이나 발생해 109㏊가 불탔다(산림청 자료). 감시와 대책이 뒤따르는데 왜 산불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유독 동해안 쪽에서 자주 큰 산불이 번지는 것일까. 산불 현장(삼척군 원덕읍 노곡리 일대)과 환경부 최종 보고서 <동해안 산불 지역 생태계 변화 및 복원 기법 연구>(연구책임자 정연숙 교수)를 통해 산불의 여러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1970년 이후 전국에서 발생한 피해 면적 100㏊ 이상의 대형 산불 15건 가운데 10건이 동해안에서 발생했다. 어째서일까. 이규송 교수(강릉대·식물생태학) 등 전문가들은 “소나무숲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일반인들에게 이 말은 매우 낯설게 들릴 수밖에 없다. 잎이 큰 활엽수림보다 잎이 뾰족한 침엽수림에서 불이 더 잘 난다니….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나무는 나무 가운데 불에 제일 약하다. 낙엽과 낙지(落枝)가 많기 때문이다. 불은 속성상 마른 검불이 쌓인 곳을 가장 좋아한다. 따라서 잘 분해되지 않는 낙엽이 많은 소나무숲이 불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얇은 껍질과 소나무가 함유한 발화성 높은 물질(테라핀)도 불을 기세 등등하게 만든다. 그에 비해 굴참나무·신갈나무 같은 참나무류는 나무 껍질이 두껍고 낙엽도 쉽게 분해되어 불이 나도 숲이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

산불 발생 빈도를 보면 소나무숲의 취약성은 좀더 분명히 드러난다. 임업연구원 산불 예방·진화연구실장 이시영 박사는 “산불이 어느 숲에서 발생했느냐를 조사해본 결과 소나무 숲에서 69%, 활엽수림에서 14.3%, 혼합림에서 16.7%가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이맘때 영동 지역에서 부는 편서풍도 산불을 부채질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고온 건조한 편서풍은 오징어나 명태처럼 나무와 숲까지 바싹 말려놓는다. 불씨 하나가 엄청난 화마(火魔)로 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편서풍은 태백산맥을 넘어 지대가 낮은 동해안으로 미끄러지듯 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인위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최근 들어서는 영동 지역 못지 않게 서해 쪽도 ‘안전 지대’에서 ‘위험 지대’로 변하고 있다. 몇 년간 연이어 대형 산불이 발생한 것이다. 이시영 박사는 “바다에서 내륙으로 부는 바람과, 남쪽에서 북쪽으로 부는 바람이 빨라져, 산불을 초기에 진화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폭풍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한다. 서해쪽 대형 산불은 대부분 폭풍주의보가 내려졌을 때 발생했다.

소나무가 쉽게 불타는 원인을 ‘자살’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도 있다. 임업연구원 임주훈 박사에 따르면, 동해안 내륙은 토양이 척박해 다른 지역보다 소나무가 많다(전체 수종의 70%, 전국 평균은 42%). 소나무는 광물질 토양이 드러난 척박한 땅에서 특히 잘 번식하고 자란다. 변화는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뒤 나타난다. 땅의 토양이 비옥해지면서 번식력이 좋은 참나무류가 침범하는 것이다.

소나무 처지에서는 이런 변화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애써 일군 생육 공간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나무들로서는 자기 영역을 지킬 방도가 별로 없다. 결국 소나무들이 택하는 방법은 하나, 바로 불을 이용하는 것이다. 산불이 나면 ‘몸을 던져’ 숲을 활활 불태우고, 그곳을 척박하게 만들어 후손을 안전하게 자라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산불 발화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그 가운데 역시 사람이 부싯돌 노릇을 가장 많이 한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의 88%가 등산객이 부주의하거나 현지 주민들이 논둑·밭둑을 태우다 일어났다. 3년 전 일어난 동해안 산불도 인재(人災)로 추정된다. 이견도 없지 않다. 일부 학자는 자연 발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유가 그럴듯하다. 당시 산불이 열세 군데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는데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불안정한 대기가 이동하면서 마른 벼락을 때리는 바람에 산불이 연쇄적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실제 일부 주민은 마른 벼락이 치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발화 지점과 벼락 맞은 나무를 발견하지 못해 ‘마른 벼락설’은 설일 뿐이다. 임주훈 박사는 “아직 우리 나라에는 산불 원인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시스템과 학자가 없다”라고 말했다.

<동해안 산불 지역 생태계 변화 및 복원 기법 연구>에 따르면, 강한 산불은 해발 400∼500m 지대와 800∼900m 고지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문제는 바람이다. 전문가들은 초속 7m 정도의 바람만 불어도 위험해진다고 말한다. 산불 진화에 나섰던 한 30대 공무원은 대형화한 산불이 “마치 날름날름대며 피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 먹는 요괴의 혓바닥 같았다”라고 돌이켰다.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산불이 최고조에 달하면 중심점의 온도는 무려 1200℃가 넘는다. 주변부도 600℃ 가까이 된다. 이때 산불은 수백m 주변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다. 어마어마한 화기로 태우기 좋게 건조시켜 놓는 것이다. 동해안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을 탄 불기둥이 너비 600m가 넘는 강을 뛰어넘는 모습이 목격된 적도 있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땅을 보면 마치 검은 사막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울상을 지을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땅 속 피해가 겉보기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땅속 3cm 밑에 있는 나무뿌리·풀뿌리·씨앗·미생물 들은 안전하다. 게다가 화재가 일어날 위험이 높은 곳에 사는 나무들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사는 나무들보다 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

신기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산불 현장에 가보면 대부분의 나무는 통째 불탔는데, 경사가 심한 비탈의 소나무들은 멀쩡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할까. 산불의 속성을 알면 쉽게 이해가 간다. 산불은 경사가 급할수록, 아래에서 위로 타오를 때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 때문에 아무리 큰 산불이라도 비탈이 심한 곳에 서 있는 소나무 숲을 지날 때는 바닥만 살짝 태우고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다.

반대로 산불이 휩쓸고 간 곳에서 껍질은 검게 탔는데 이파리가 푸른 소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소나무들이 살아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아니다. 대부분은 얼마 못 가 말라죽는다. 나무의 껍질은 사람의 피부와 같아서 한번 손상되면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손상된 소나무는 양분 통로가 막히고 균이 침입해 대개 1∼3년 안에 고사한다. 이처럼 말라죽은 나무는 갱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주로 펄프 재료로 쓰인다.

불에 탄 삼척군 원덕읍 노곡리 산들에는 산불 예방을 위한 과학 기기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특히 자동기상관측 시스템이 도드라졌다. 이 시스템은 풍향·풍속·습도·강수량·일사량·일조량·습도를 동시에 측정해 현재 산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 수 있게 한다. 임업연구원은 이 자료를 토대로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을 예측한다. 그러나 아직 컴퓨터와 연계가 안되어 있어 조사원들이 일일이 찾아가 점검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임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컴퓨터와 연결하면 좀더 빨리 산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업연구원은 매일 산불위험지수 예보를 내보내고 있다. 각 지역의 풍속·습도·강수량 등을 측정해 산불이 일어날 확률이 몇 %라고 경고하는 것이다(산림청 홈페이지 참조). 앞으로는 좀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산불을 예방할 계획이다. 선진국들이 활용하는 산불 감시 시스템이 그것. 이 시스템은 어느 지역의 지형과 특징을 미리 파악해 두어 산불의 방향·확산 범위 등을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불이 나면 진화 요원을 길목에 바로 배치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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