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변호사 일감이 없다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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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요즘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정서는 한마디로 ‘화려한 시절은 가고’이다. 사건 수임 자체가 준 데다가 그나마 수임료도 뚝 떨어져 사무실
대법원과 대검찰청, 서울지검·서울고검과 서울지방법원·가정법원·행정법원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은 매년 2∼3월이면 마치 봄맞이를 하듯 부산하다. 법관 인사가 있는 동안 법원에서는 재판이 열리지 않는다. 검찰 인사 때는 차관급과 1급 고위직 일부가 공직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올해 법관 인사에서는 법원장급 판사를 포함해 법관 20여 명이 무더기로 옷을 벗었고, 이 가운데 15명이 개업했다. 3월 중순에는 지검장급 이상 고위직 검찰 14명이 줄줄이 퇴임했다. 지난 3월 중순, 서초동의 한 빌딩에는 변호사 개업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무려 10개 가까이 내걸렸다. 서초동의 ㅈ변호사는 “올해는 돈 되는 형사 사건 수임은 꿈도 못꾸게 되었다”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고위직 출신 개업 변호사들에 대한 ‘전관 예우’ 때문이다.

변호사 전문 광고업자 ㅇ씨는 "전관 예우가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마음이 다급한 의뢰인들이 거물급 변호사들을 찾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변호사 개업 정보를 미리 입수해 홍보와 광고를 수주하고 있는 ㄴ씨는 “엊그제까지 자기 상관이었던 사람이 사건 담당 변호사가 되었는데, 판사나 검사가 모른 척할 수는 없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라고 말했다. 2001년 검찰총장 출신인 김태정 변호사는 이용호씨 구속 사건을 정식으로 수임하지 않고서도 전화 한 통화로 1억원을 받았다. 유명 개그맨 ㅈ씨 폭행 사건을 맡았던 대검 부장 출신 ㅇ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한 뒤 불기소를 이끌어내 1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두 사건 모두 ‘전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예년 같으면 10명 안팎이었지만 한꺼번에 30여명이 쏟아져나왔으니 옛날 같은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최근 개업한 한 판사 출신 변호사 사무장은 “축하 전화만 올 뿐 쓸 만한 사건 의뢰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퇴임한 고위직 가운데 심상명 전 법무부장관과 장윤석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개업했을 뿐 다른 거물급들은 ‘개업’보다는 ‘영입’을 선택했다.

송광수 검찰총장의 1기수 선배인 김승규 부산고검장은 법무법인 ‘로고스’의 대표 변호사로 영입되었다. 명노승 전 법무부차관은 법무법인 바른법률사무소가 공동 대표 변호사로 스카우트했다. 김학재 전 대검 차장은 법무법인 ‘태일’의 고문변호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스카우트된 거물급이라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한 사무장은 “고위직 출신이라도 6개월 지나면 ‘약발’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연봉을 수억원 받기로 하고 얼굴 마담으로 영입되지만 1년도 안되어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안해 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개업 5∼10년 된 중견 변호사들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초동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ㅊ변호사는 근래 의욕이 뚝 떨어졌다. 개업 5년차인 그가 요즘 한 달에 수임하는 사건은 겨우 2∼3건이다. 사무장 2명과 여직원 1명의 월급을 주고 사무실 임차료를 내기에도 빠듯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평균 5백만원 수준이던 수임료가 3백만∼4백만 원으로 뚝 떨어졌다. ㅊ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실을 휴업하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학원을 운영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서울대 인근 신림동 고시촌에는 1만5천명이나 되는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족집게 학원강사’로 소문 나면 연봉이 1억원대에 육박할 정도라고 한다.


연수원을 갓 졸업한 신참 변호사들은 개업보다는 취업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ㅎ법무법인에 들어간 ㅈ씨는 “개업한 선배 변호사들 가운데 카드 빚 내서 월급 주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개업하는 것보다 나처럼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 낫다고 집사람에게 얘기했다”라고 말했다. 나이 든 연수생들이 개업하려면 은행 빚 수천만원을 얻어야 한다(69쪽 상자 기사 참조).

서초동만 힘든 것은 아니다. 인천지법 앞에서 일하는 ㅇ변호사는 “함께 개업했던 친구가 있는데, 어떤 달에는 사건 한 건도 맡지 못해서 빚을 내서 직원들 월급을 주었다고 말하더라. 변호사라는 자존심 때문에 집사람에게도 말을 못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지방의 지청과 지법에서는 전관이 한 사람 개업하면 다음 전관이 나올 때까지 형사 소송 수임은 씨가 마를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인천지역 법조타운의 경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민사 소송 사건은 건당 수임료가 3백만원 수준으로 내려갔다.

사건을 맡고 보통 재판까지 1∼2년이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3백만원은 너무나 싸다는 것이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연수원을 갓 졸업한 신참 변호사들은 개업보다는 취업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ㅎ법무법인에 들어간 ㅈ씨는 “개업한 선배 변호사들 가운데 카드 빚 내서 월급 주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개업하는 것보다 나처럼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 낫다고 집사람에게 얘기했다”라고 말했다. 나이 든 연수생들이 개업하려면 은행 빚 수천만원을 얻어야 한다(69쪽 상자 기사 참조).

서초동만 힘든 것은 아니다. 인천지법 앞에서 일하는 ㅇ변호사는 “함께 개업했던 친구가 있는데, 어떤 달에는 사건 한 건도 맡지 못해서 빚을 내서 직원들 월급을 주었다고 말하더라. 변호사라는 자존심 때문에 집사람에게도 말을 못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지방의 지청과 지법에서는 전관이 한 사람 개업하면 다음 전관이 나올 때까지 형사 소송 수임은 씨가 마를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인천지역 법조타운의 경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민사 소송 사건은 건당 수임료가 3백만원 수준으로 내려갔다. 사건을 맡고 보통 재판까지 1∼2년이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3백만원은 너무나 싸다는 것이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고소득 전문직이었던 변호사 업계는 지난해부터 지각 변동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를 겪고 있다. 1990년 1천9백82명이던 변호사는 올 3월 현재 6천10명으로 늘었다(아래 도표 참조). 내년부터는 사법연수원 수료자가 매년 1천명씩 쏟아져나올 예정이지만 3백명도 안되는 인원만이 판검사로 채용된다. 나머지는 모두 변호사 지망생이어서 공급 초과 현상은 훨씬 심해질 전망이다. 게다가 2005년부터는 국내 법률 시장이 단계적으로 개방된다.

여기에 법학 교수들까지 변호사 자격을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법학교수회 정용상 사무총장(부산외국어대)은 “부교수 이상으로 5년 이상 재직한 교수(약 4백명)들에게 ‘비개업’을 전제로 변호사 자격을 부여해 공익 소송이나 국제법 소송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대한변협(회장 박재승)은 법학 교수들의 실무 경험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72~73쪽 인터뷰 기사 참조). 지난 3월4일에는 변호사 고유 업무이던 부동산 경매와 공매·입찰 대리 업무를 법무사에게 허용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공포되었다.

변호사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개업 변호사들에게 닥친 가장 큰 고민은 ‘파이’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서울변협에 따르면, 현재 변호사 한 사람의 연간 수임 건수는 38건(2002년)으로 한달 평균 3건에 그친다. 서울변협 소속 변호사들은 외환 위기 전인 1997년에는 연평균 57.2건, 2000∼2001년에는 41건 수준(본안 사건)을 유지했다. 변호사들은 사무실 운영비를 감안할 때 한 달에 최소 4건 이상 수임해야만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고 하소연하지만 현재 서초동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

올 3월 갓 개업한 김정임 변호사(38)는 사건 수임에 급급하지 않고 당직 변호사를 자청하거나 경험을 쌓는 쪽을 택했다. 지나치게 사건 수임에만 매달리는 것보다 법률 상담과 사회 봉사를 통해 장기적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변호사 자격증이 흔해지면서 취업을 원하는 변호사들의 ‘몸값’도 하락했다. 전관 출신은 연봉 2억∼2억5천만원을 주고 대형 로펌이 모셔가지만, 연수원을 갓 수료한 변호사들은 대형 로펌의 경우 월급 7백만∼8백만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현재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변호사 평균 임금은 월 5백만원 이하가 대부분이다. 한 변호사는 “연수원 수료자 가운데 대학이나 고교 선배 변호사 사무실에 몸을 의탁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스포츠 선수들처럼 법무법인이 스카우트할 때 끼워팔기로 가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별다른 인맥·학맥이 없고 개업 비용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변호사들은 1∼2년을 쉰 뒤에 개업을 고려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32기 가운데 아직 50여명이 취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수생 32기인 한 변호사는 “아직까지는 주위에서 선후배들이 챙겨주지만 내년 33기부터 연수생이 천명씩 쏟아질 텐데 어떻게 취업할지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불황이 심해지면서 시장 질서도 왜곡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서초동에서는 ‘외근 사무장’들의 몸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근 사무장은 내근 사무장과 달리 사건을 수임해 오는 ‘영업’을 전문으로 맡고 있는데, 실적을 올리기 위해 브로커들과 결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형사 사건을 전문으로 수임하는 변호사들이 외근 사무장 가운데 가장 선호하는 부류는 검찰 참여계장이나 직원으로 일하다가 막 퇴임한 사람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검찰 고위직 출신에 대한 전관 예우에 못지 않다고 한다.
서초동에서 잘 나가는 외근 사무장들은 기본급 5백만원+수당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수당이 월급을 넘어서는 이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해 올 때마다 외근 사무장에게 30%씩 떼주고, 세금 40%를 내고 나면 나머지 30%를 갖고 사무실을 운영해야 한다. 어떤 달에는 적자를 보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일부 노회한 사무장 가운데는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해 놓고 정작 변호사에게는 알리지 않는 ‘배달 사고’를 저지르기도 한다.

영업 능력이 뛰어난 사무장 출신들은 신참 변호사들을 ‘역고용’하기도 한다. 자신들은 영업에 치중하고, 변호사를 변론과 준비서면 작성 등 법률 기능인으로 부리는 것이다. 연수원 32기 출신 변호사는 “연수원 수료를 즈음해 아무개 사무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선배 변호사들이 ‘실컷 이용만 당한다’며 말렸다”라고 말했다. 개업 5년차인 ㅎ변호사는 “돈에 욕심을 내다가 적법과 위법 사이에서 줄을 타듯 살아가는 변호사들이 허다하다. 변호사 윤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변호사 공급 초과가 가져온 장점도 있다. 변호사가 진출하는 분야가 다양해진 것이다. 감사원 등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은 물론 시민·노동 단체로 진출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사법연수생 자치회가 올해 펴낸 <사법연수> 27호는 ‘새로운 길을 찾아간 사람들’ 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참여연대의 협동사무처장으로 일하는 장유식 변호사와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변호사로 일하는 권두섭씨 사례를 통해 직역이 확대되고 있는 변호사 사회의 변화를 소개했다. 감사원에서 2년째 일하고 있는 김종철 변호사는 “수입이 개업 변호사보다 적긴 하지만 공직에 종사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기란 만만치가 않다. 지난 3월27일 서울 행정법원은 부동산중개업에 진출하려던 한 변호사에게 제동을 걸었다. 이 아무개 변호사가 ‘변호사도 부동산 중개업을 영위할 수 있는데 관할 관청이 불허했다’고 소송을 내자 “변호사 윤리 조항에 어긋난다”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려 변호사를 당황하게 했다.

앞으로도 이같은 유사 직역간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승수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는 “우리 나라는 변리사·세무사·법무사·노무사·행정사 등으로 나뉘어 있지만 미국은 변호사 자격 하나면 이 모든 일을 맡을 수 있다”라며, 관료 출신들에게 유리하게 되어있는 현재의 전문 자격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곧바로 ‘밥그릇’ 싸움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변호사업계의 지각 변동을 법조계가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변호사들도 있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거품이 빠지고 전문 법률가로 정착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한 변호사는 “10년 전에는 변호사 자격증 하나 있다는 것 때문에 월급쟁이보다 7∼8배 돈을 벌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변호사는 고소득 특권층이 아니라 전문직일 따름이다. 수많은 고시 지망생들만 아직도 이 엄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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