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개혁은 법조 일원화로”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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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승 대한변협 회장/“노대통령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겠다”
올해 예순넷인 박재승 대한변협 회장은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신386’으로 통한다. 진짜 386세대 못지 않은 그의 개혁 성향 때문이다. 지난 2월24일 그가 보수적인 대한변협의 제42대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법조계에 또 하나의 새 바람이 예고되었다. 변호사 사회가 일대 지각 변동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회장에 취임한 그는 `‘법조인의 재야 정신’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 전쟁 파병 반대 성명을 내는 등 개혁적 목소리를 부쩍 강화하고 있는 박회장을 만나 법조계 문제점과 개혁 방향을 들어보았다.

우리 헌법에는 침략 전쟁을 배격한다는 것이 기본 정신으로 담겨 있다. 국익을 고려해 파병해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변협은 우리 헌법과 인권 정신에 반하는 이번 이라크 전쟁에 국군을 파병하는 것을 반대한다. 인권 법률가 단체로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대국민 파병 반대 성명도 발표했다.


참여정부에 변호사들만 너무 많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 지적도 나오는데….

종전에 변호사들이 관직에 진출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지 아직도 참여가 부족한 편이라고 본다. 미국만 해도 고급 관료 조직에서 변호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 법률가는 모든 사회 현상을 국민의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라는 잣대로 보는 데 익숙해 있다. 국가 경영에 법률가가 많이 참여한다는 것은 그런 소양을 가진 분이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재야 정신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던 독재 시대에는 변호사도 거리로 뛰쳐나가는 식으로 재야 정신을 표현했다. 대표적으로 이백린 변호사 같은 분은 두 번씩이나 투옥되며 유신에 반대했다. 홍성우·황인철·조영래 변호사도 몸을 던져 독재에 항거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5·18 학살 주동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며 서초동에서 대검 앞까지 변호사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민주화가 더 진전된 상태에서는 눈에 잘 안띄기는 하지만 나름으로 사회 곳곳에서 비판 의식을 가지고 법과 제도와 사회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가 법 적용의 형평성이 확립되지 않고 있다는 사회 전체적인 불신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에게 지금까지는 법이 힘 있는 자 편이고 지킬수록 나만 손해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 큰 원인은 법 적용의 형평성을 무시하는 조처를 자주 내리는 집권자들에게 있었다. 집권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법치주의를 외쳤지만 국민은 속으로 비웃었다.

노대통령은 법조인 출신으로는 사상 첫 대통령이고, 변호사 시절에도 소외 계층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제대로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우리 변협은 대통령이든 누구든 법적용의 형평성을 해치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례에는 반드시 개입해서 적극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할 것이다.

세금을 내는 전문 직업인 단체라는 점에서 변협이 이익 단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큰 위상은 인권 단체이자 법률가 단체라는 점이다. 법률은 사람이 만드는데, 그 사람이 완전치 못할 뿐만 아니라 사악하기까지 하다. 어떤 정부든지 권력을 남용해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그래서 변협은 그런 사례를 주시하고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등 강도 높은 활동을 벌이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와 기본권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변호사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 높은 윤리 의식이 요구된다. 변호사의 윤리 문제는 공익 활동과 의뢰인 관계로 나뉜다. 변호사는 소송을 독점한다는 점에서 그 반대 급부로 사회에 공익 활동을 해야 한다. 또 사건 의뢰인과 관계를 잘못 설정하면 돈과 품위와 관계되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 변협은 각 지방 별로 감찰 기구를 두고 수임 사건을 수시로 점검해 문제가 생기면 조사해 징계위에서 다룬다. 또 전국 회원을 상대로 윤리 관련 연수를 연간 2~3회씩 실시한다.

얼마 전 여성 연수원생이 공부하다가 죽었다. 오로지 점수 하나로 판검사 임용을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현재 사시 통과하고 연수원을 수료하면 판검사와 변호사가 배출된다. 임용 기준은 사법시험 점수와 연수원 성적이다. 판사의 경우 소수점 이하까지 점수를 매겨 성적순으로 임지를 결정한다. 건국 이래 변함이 없다. 판검사는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고 사실 관계를 확정하는 직업이므로 어떤 점에서는 신 바로 아래 있는 입장이다. 그런 중요한 일을 사시 성적, 그것도 법률 판례 이론만으로 하고 있다. 머리 좋고 성적이 좋다는 것과 판단 능력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입시만도 못하다. 요즘은 대입도 인성 등 심층 면접을 보는 추세이다.

한마디로 법조 일원화이다. 연수원 수료 후 무조건 변호사로 나가도록 해야 한다. 판검사는 10년 안팎의 변호사 경력자 중에서 자질·인품·능력이 검증된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단순 판례 공부만이 아니라 인격, 법정 매너, 의뢰인과의 양심적 윤리관계 설정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 현행 법관 임용은 관료화를 부른다. 시험 성적 순으로 임용하니까 선배 기수가 나가야만 승진한다. 또 20대 판사는 대선배 판사 밑에서 판결하는데, 선배의 입맛에 맞는 처신이나 판결이 나오기 십상이다. 법조 일원화를 통해 변호사 가운데 경륜을 쌓은 40대 중반쯤 초임 법관을 임용하면 사회적으로도 법조인이 신뢰를 받을 것이다.

전관 예우 제도, 법무부 및 사법부 관료화, 변호사 윤리 문제 등 각종 폐단을 줄일 수 있는 제도가 법조 일원화이다. 변협은 상임이사회가 이 제도를 국민적 차원에서 공론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법무부와 대법원에도 법조개혁추진협의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지금 논의되는 검찰 개혁은 전체 사법 개혁에서 빙산의 일각이다. 법조 일원화는 발상 자체가 다르고 전면적인 사법 개혁이다.

내가 변호사 자격이 없는 법학 교수라면 부끄러워서 그런 말 하지 않을 것 같다. 직업 이기주의가 아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최소 10과목 이상 공부해서 일정 수준 이상 도달했다고 판정해야 자격이 나오고, 강도 높은 자격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특정 과목 하나를 공부했다고 해서 실무 자격을 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 가운데서 법과대학 교수를 채용해야 한다.

미국·영국 등 외국 법률회사가 들어오면 그 나라 관련 법률 자문에만 그치게 해야 한다. 한국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동업하도록 허용하면 결국 외국 법률회사가 한국 시장을 잠식해 막대한 국부 유출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소극적 방어만이 아니라 한국 변호사도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변협은 선진 경제와 제도의 내용을 숙지시키기 위해 변호사들에게 수시로 해외 연수를 시킬 계획이다. 법률 측면에서 외국어 능력을 배양하는 연수도 강화하겠다.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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