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양대 산맥 진주사단 vs 서울사대파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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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홍 교육 부총리의 발언으로 눈길을 모은 ‘진주 마피아’ ‘서울 사대파’의 실체는 무엇인가. 인맥으로 얽힌 기득권 세력이 있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진주 마피아니 서울사대파 얘기가 안 나오게 하자. 나를 바지저고리 장관으로 만들지 말라.” 윤덕홍 교육 부총리의 취임사는 거침이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윤부총리는 논란이 되고 있던 ‘교육 행정 정보 시스템’(NEIS)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일선 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취임 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문제가 심각한 것 같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조짐이 이상하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벌써부터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윤부총리가 취임한 지 사흘 만에 이임식을 가진 김신복 전 차관. 그는 “외부에서 온 과거 장관들이 교육부 관료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다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떠났다. 파벌 싸움은 없다고 믿고 있다”라며 윤부총리의 말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며칠 뒤인 3월18일.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 앞에 앉은 윤부총리는 거푸 사과하면서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었다. 수능 자격고시화, 5-3-3 학제 개편 등 평소 생각을 ‘기탄없이’ 얘기해 혼란을 야기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교육부 파벌에 관한 언급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배석했던 교육인적자원부 고재방 차관보는 “부총리는 ‘바깥에서 그런 말을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했을 뿐 가타부타 해명하지 않았다. 이때만큼은 단호해 보였다”라고 말했다. 왜 그랬을까.

윤부총리가 취임식 때 언급한 대로 이른바 ‘진주 마피아’나 ‘서울 사대파’는 교육계 안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바지저고리 장관이라는 표현도 맥락이 있다. 국민의정부 시절 교육부장관의 임기가 짧아지면서 ‘물정 모르는 손님 장관과 노회한 관료’라는 공식이 공고해졌다는 것이 교육부 사정에 밝은 엄 아무개씨 진단이다.

과연 진주 마피아라는 파벌이 아직 유효한가. ‘진주 사단’이라는 독특한 계보가 형성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진주사범 출신인 이규호 장관과 정태수 차관 시절, 진주 인맥이 교육부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교육부는 ‘진주시 문교부’로 불릴 정도로 진주 출신 세력이 대단했다. 혹자는 민관식 장관 시절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젊은 관료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민장관 시절을 진주사단의 시초로 잡기도 한다.



이후 협의의 진주사단은 수가 줄어드는 대신 범영남 인물들이 세력을 형성했다. 중흥기는 1990년대 초 조규향 차관 시절. 경남 김해가 고향이고 서울 법대 출신 고시파인 조차관은, 젊은 사무관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면서 통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최근 들어서 두 파벌이 갈등을 빚는다기보다는 협력해서 세력을 공고화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교육개혁시민연대 김기태 사무국장은 “합체라고 해야 할까. 주도권이 서울대 사대로 넘어가면서 사실상 진주 마피아의 실체는 흐려지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지난해까지 교육부 내 진주사범 출신 인맥의 정점은 김성동 전 교육평가원장이었다. 김씨는 사직하기 전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진주사단의 실세로서 승승장구해 왔다. 날개가 꺾인 것은, 지난해 한나라당에 국사 교과서 파문과 관련한 교육부 내부 문서를 유출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한나라당은 그의 행위가 범죄 행위인 기밀 유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방어에 나섰지만, 개인 비리로까지 수사가 확대된다는 소문이 돌자 그는 교육평가원장 자리를 내놓았다. 그 이전부터 위세가 예전만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 교육청 부교육감 자리를 노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행로가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뒤로 영남 인맥의 실세로 꼽힌 인물은 며칠 전 퇴임한 이기우 전 기획실장. 이씨는 지난해 말부터 ‘교육부 개혁’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집중 포화를 맞기 시작했다. 서울시 교육위원 안승문씨는 지난 1월 그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 시민단체는 당시 인수위원의 행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던 차였다. 안씨는 공개 세미나에서 ‘개혁 정부에 걸맞지 않는 파행이 빚어지는 근본 원인은 교육계 안에서 개혁을 거부하는 기득권 세력, 그 가운데에서도 이기우 실장을 핵심으로 하는 상당수 ‘정치 관료’들이 대통령직인수위 국면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를 정조준했다.

일부 언론도 그를 ‘진주 마피아의 실세’로 묘사하면서 이와 같은 인식을 공유했다.

정치 관료의 대표 격으로 지목된 이기우 전 기획실장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그는 교육부서열 3위로 꼽히는 기획실장 자리를 3년 넘게 유지해 왔으며, 교육부 내부는 물론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과 폭넓게 교분을 맺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꼼꼼한 일처리, 노련한 처세술로 교육부와 사학재단과 국회의원으로 이어지는 인적 사슬을 쥐락펴락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고공 플레이’라고 불리는 국회 로비력은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기우씨는 자신의 폭넓은 인간 관계는 인정했으나, 진주 마피아로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나타냈다(73쪽 인터뷰 참조).


윤부총리가 들어온 뒤, 관심은 모두 차관 인사에 쏠렸다. ‘개혁 장관, 안정 차관’ 구도로 볼 때 이실장은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언론은 그와 고재방 현 차관보의 각축을 점쳤다.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서범석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이 차관에 오른 것이다. 이실장을 구태의 상징으로 지목한 안교육위원은 “당연히 청산되어야 할 인물이 청산된 것이다. 지금 여론도 그에게는 무른 매다”라고 말했다(74쪽 인터뷰 참조).

이렇게 되자, 진주 마피아 세력이 사그라드는 대신 서울 사대파의 봄날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상 서울대 사대는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파벌이다. 역대 교육부 수장은 서울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간간이 다른 대학 출신이 끼어드는 형국이었다. 서울사대 출신인 김신복 차관은 파벌이 없다고 말했지만, 외부에서는 이미 서울대파가 대세를 점했기 때문이라는 냉소도 만만치 않다. 김기태 사무국장은 서울대 사대야말로 교육부의 담장을 넘어서는 교육계 파벌이라고 지적한다.

“고시를 통과한 교육 관료들은 외국에 나가서 교육학 학위를 딴다. 명함에는 교육부 직책뿐 아니라 ○○박사라고 병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교육 전문가’라는 과시인 셈이다. 이런 사람도 서울대 사대 사람은 무시하지 못한다. 막말로 언제든 장관으로 올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라고 김국장은 말했다.
지난해 1월 이상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교육 부총리로 임명된 후 국회 교육위 이규택 위원장은 ‘서울사대 교육학과 건국 이래 최대 경사’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내 빈축을 산 적이 있다. ‘교육 부총리(이상주), 교육부 차관(최희선), 국회교육위원장(이규택) 등 교육 관련 주요 자리를 모두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들이 잡아 교육계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기자들이 취재를 시작하자 부랴부랴 없던 일로 하자고 요청한 것이다. 이 촌극은, 거꾸로 서울사대의 위력을 보여준다. 단순히 서울사대일 뿐 아니라, 그 안에서도 교육학과 출신이 핵심 요직을 잡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교육부 장·차관은 모두 서울대 사대 출신이다. ‘이번에는 (서울대) 쉬어보자’는 여론이 높았던 것에 비하면, 묘한 상황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고착화한 대학 서열이 공교육 파행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감안할 때, 과연 온전한 개혁을 할 수 있을지 염려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엄 아무개씨는 “과거 장관이 순식간에 관료들의 장막에 둘러싸여 ‘부지부지(不知不知) 장관’(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장관이라는 뜻)으로 전락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서울대 출신들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교육부를 출입한 <한국대학신문> 이일형 기자는 “서울사대 인맥이 넓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파벌로 볼 것인가는 별개 문제다”라고 조심스러워했다. 외부에서는 특정 파벌보다 무서운 것이 교육부 관료들의 노회한 처세술이라고 지적한다. 이해찬 장관이 젊은 관료들을 보며 든든해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장관이 교육부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는 이들도 있다. 현장의 교사들을 개혁 대상인 양 몰아붙인 이장관 덕에 자신들은 공격에서 비켜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방패막이 역할을 한 만큼 보필은 제대로 받았을까. 당시 교육위 소속 의원을 보좌했던 김 아무개씨는 “이장관이 관료들의 처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당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라고 평했다. 한 예가 사립학교법 개정 때 상황이다. 당시 이장관은 정부 입법으로 사립학교법개정안을 제출했는데, 당·정 협의를 변변히 거치지 않은 터라 원군이 별로 없었다. 김씨는 “보통 입법 의지가 있을 경우 실·국장들이 발벗고 나서 국회 상임위 위원들을 설득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 시절 핵심 관료들은 그러지 않았다”라고 회고했다.

교육부가 감당 못할 과도한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해양대 김용일 교수는 “관료 개개인은 유능하고 헌신적인 이들이 많지만, 일이 너무 많다. 차제에 교육부는 초중등 공교육을 책임지면서 현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고등교육은 아예 다른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이번이야말로 교육부 체질을 바꿀 절호의 기회라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 국립 대학, 소속 기관 및 산하 단체가 70여 개에 이르는 공룡 조직이다. 산하 단체를 전관 예우 수단으로 여기는 관행은 불문율을 방불케 한다(72쪽 표 참조). 최근 청와대로부터 정책보좌관 역을 제안받았다는 한 교육 전문가는 “인맥으로 얽힌 기득권 세력이 변화에 저항할 것이다. 거기에 치이지 않는 일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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