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진학이 특목고의 특수한 목적
  • 신호철 (ecosisapress.comr)
  • 승인 200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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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인 대원외고 2003년 졸업생 가운데 55명이 해외 대학에 진학했고, 72명이 서울대에 들어갔다. 34기 사법연수원생 중 24명이 이 학교 출신이다. ‘제2의 경기고’인 대원외고를 해부했다.외국어고등학교 입시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를 더 세울 절호의 찬스? 지난 10월30일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서울 강북에 특목고 10개를 세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서울시 교육청이 특목고 증설 반대 방침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69쪽 딸린 기사 참조).
여기서 특목고란 과학고와 외국어고를 지칭한다. <시사저널>은 제699호(2003년 3월20일자)에서 최초의 과학고인 경기과학고등학교 졸업생들의 현주소를 추적해 그 성과를 분석하고 무분별한 과학고 설립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는 강북의 대표적 특목고로 불리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해부했다.

“저희 3학년 해외유학반 60명 가운데 10여 명은 미국 시민권을 가졌어요. 미국 대학에 입학하는 데 시민권이 있으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해요.” 대원외국어고등학교(대원외고) 3학년 조 아무개군(19)은 최근 미국 하버드 대학에 원서를 냈다. 옆자리에 앉은 3학년 김 아무개군(19)은 스탠퍼드 대학에 원서를 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기억이 미국 대학에 진학하려는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원외고가 자랑하는 SAP(Study Abroad Program)반에 소속된 학생들이다. 1학년 때부터 SAP반에 속한 이들은 모의고사를 치르거나 수능 과목 문제를 외우는 데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다. 대신 11월1일 치른 SAT(미국 수능시험)를 준비해 왔다.

교사 85명 가운데 15명이 외국인

10월30일 오후 서울 중곡동 대원외국어고등학교 5층 한 교실에서 SAP반 학생들이 모여 8교시 영어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토론 주제는 ‘북한 핵 관련 가상 6자 회담’. 교실 한가운데에서 학생 6명이 책상을 맞댄 채 각각 여섯 나라를 대변해 의견을 개진하고, 이들을 둘러싼 나머지 학생들이 채점을 했다.

대원외고에 따르면, 2003년 SAP반 졸업생 가운데 55명이 해외 대학에 진학했는데, 그 중 41명이 미국 대학에 입학했다. 주로 경제·경영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이 많다. 1999년 비교내신 폐지 이후 외고 인기가 다소 시들해졌지만 대원외고는 SAP반을 운영하기 때문인지 여전히 열성 학부모들로부터 주목되고 있다. 전체 교사 85명 가운데 15명이 외국인이며, 특별 채용한 회화 강사도 5명이다. 이 날 ‘6자 회담’ 토론을 진행한 조슈아 박 교사(26)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뒤 ‘모국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이 학교에 와 SAP반 학생들에게 회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순수하고 열정이 있어 내 선택에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10월30일은 내년도 신입생 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바로 전날이었다. 대원외고 교무실에서는 입시 문의 전화 벨이 계속 울렸다. 김일형 교감은 “우리 학교 입학 경쟁률이 지난해 6 대 1이었다. 7차 교육과정에서 서울대 내신 비중이 줄어들어 유리해졌다”라고 말했다. 2004년도 대원외고 입학 정원은 4백20명이다.

학교측은 기자에게 각종 대입학력 경시대회와 언어능력 경시대회를 휩쓴 결과를 자랑했다. 대원외고가 내세우는 숫자는 많다. 2003년 대원외고 졸업생 72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언론 보도 준칙에 따라 서울대 진학률 순위는 적시하지 않는다). 34기 사법연수원생(2002년 합격) 가운데 24명이 대원외고 출신이었다. 그 다음으로 합격생을 많이 배출한 고교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숫자다.

이른바 ‘명문 대학’ 진학률이 높다 보니 대학 현장에서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대학원생 박성현씨는 “한때 독문과 신입생 절반이 대원외고 졸업생이었다. 교수들이 걱정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2002년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과 인문대 학생회장은 대원외고 동문이었다. 이러다 보니 대원외고를 두고 ‘제2의 경기고’라거나 ‘한국판 이튼스쿨’이라는 말이 나온다.
대원외고는 다른 특목고와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 굴곡을 겪었다. 1984년 개교 당시에는 고등학교 인가가 나지 않아 학력인정 각종학교로 출범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학생들 사이에 학업 능력 편차가 컸다고 한다. 이후 대원외고 출신 가운데 수능 만점자가 배출되고 세칭 명문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강남 8학군 학교를 능가하는 명문 고교가 되었다. 서울 시내 소재 6개 외국어고등학교(외고) 가운데 강남권에 가장 가깝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IMF 사태가 터지자 미국에 유학 중이던 고등학생들이 대거 귀국해 대원외고에 편입하는 사태도 있었다. 대원외고를 2000년에 졸업(14회)한 한 서울대 재학생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원래 반이 11개 있었는데, 외국에서 귀국한 편입생이 넘치면서 새로 12반이라는 특별반을 만들었다. 특별반 친구들은 우리보다 성적은 떨어졌지만 미국 문화를 누린 부유층이 많았다.”

원래 대원외고 재학생 자체가 부유층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대원외고에 다니는 한 학생은 “우리 반 학생 명단을 보고 외국에서 공부한 적 있는 친구들을 세어 봤는데 절반이 넘었다”라고 말했다. SAP반의 경우 거의 95% 이상이 초·중학교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학부모 가운데는 관·재·학계 유력 인사가 많다. 한 대원외고 재학생은 그 실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부모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많다. 우리 반 친구 5명의 아버지가 서울대 의대를 나온 선후배 사이였다. 입학하기 전부터 알고 있더라.” 경제 전문지 <에퀴터블>(2003년 11월호)이 조사한 한국의 40세 이하 부자 상위 6명 가운데 2명이 대원외고 졸업생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두 딸이 모두 대원외고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대원외고를 비롯해 서울 시내 6개 외고의 학비는 일반 고등학교보다 3배 가량 비싼 분기당 88만원이다. 여기에 스쿨버스비·식비·교재비 등 여러 비용이 추가된다. 한 1학년 학생은 “1년에 평균 5백만원 가량 학교에 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입학 과정도 해외 조기 유학 경험이 있는 부유층 자녀에게 유리하다. 입학 전형에서 영어 듣기(100점)는 중요한 과목이다. 수학 문제도 영어로 출제된다. 초·중등 과정을 외국에서 보낸 학생들이 이로운 것은 당연하다. 일반 전형 외에 특별 전형으로 1백69명을 뽑는데, 선발 기준은 외국어 능력·학생회장 경력·교장 추천 등이다. 골프 특기생도 있다.

학교측은 재학생 가운데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학생 비율이 40% 정도라고 밝혔다.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6개 외고 전체를 합쳐 강남 출신은 17.7% 정도이며 비서울 출신이 25%에 이른다고 한다.

밤 10시10분. 자율학습을 마친 대원외고 학생들이 교문으로 몰려 나왔다. 한 3학년 학생이 “이게 마지막 자율학습이다”라며 기뻐하는 소리가 들렸다.

특목고와 강남 집값은 무관하다

전국교원노조 송원재 대변인은 “평준화의 획일성을 막기 위해 특목고를 세웠지만, 실제 특목고 운영은 더 입시 위주로 가고 있다. 평준화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특수 계층의 명문 학교로 변질되었다”라며 특목고 추가 신설을 반대했다. 그러나 대원외고 1기인 한 동문은 “한국은 평등 따지다가 망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고등학교에 우수한 외국인 교사를 채용할 수는 없다. 우수한 학생들의 숨통을 열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외고가 과연 특목고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가 하는 점은 논란거리이지만, 찬반 양쪽 모두 동의하는 사실은 있다. 특목고와 강남 집값은 무관하다는 점이다. 강남에서 성적 상위 학생들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원 강사 윤 아무개씨(30)는 “강북 특목고에 가고 싶으면 위장 전입하면 그만이다. 또 실제 가려는 강남 학부모도 극히 적다. 강남 집값 잡는 데 특목고는 아무 효과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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