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성인 오락실의 경찰 조폭 커넥션
  • 신호철 (eco@sisapress.com)
  • 승인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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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수천만원 버는 불법 성인 오락실의 실제 주인은 사업가,경찰 정치인이다.조폭은 오락실 운영 세력의 한 부분일 뿐이다. 불법 성인 오락실의 천국인 부산 남포동, 부평동에서 '검은 장사'의 '숨은 주인'을 추
한 달 평균 100만원을 잃었다. 그래도 오락실에 가고 싶다.” 11월14일 부산시 중구 남포동에서 만난 성인오락실 단골 손님 박 아무개씨(30)의 말이다. 그는 2년 전 일본에서 일명 구슬치기 오락기에 빠진 이후 줄곧 부산 남포동 성인오락실을 출입해 왔다고 한다. 아내와 싸워서 우울한 날이면 24시간 오락기 앞에 앉아 있기도 했다. 부산 남포동은 ‘부산국제영화제’로 잘 알려진 극장가이지만, 또한 불법 성인오락실의 천국이기도 하다. 남포동과 부평동 일대에 60여 개에 이르는 성인오락실이 영업을 해왔다.

그러나 요즘 남포동 성인오락실을 찾던 중독자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11월부터 검·경이 대대적으로 단속해 오락실들이 일제히 휴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003년 8월 부패방지위원회는 부산 오락실 업주들이 정기적으로 검찰 직원과 경찰에게 뇌물을 상납하며 불법 영업을 한다는 제보를 받고 이를 부산지검 특수부에 이첩했다. 내사한 결과 10월30일 구체적인 비리 대상과 액수가 공개되었고, 이를 전후로 해서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다.

단 하루 만에 수천만원을 번다는 불법 성인오락실 사업. 말이 오락실이지 카지노와 다를 바 없이 황금알을 낳는 검은 장사다. 과연 이번에는 척결될 수 있을까? 불법 업소와 공무원 간의 유착을 막으려면 실제 오락실을 장악하고 있는 실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단속할 때마다 이른바 바지 사장으로 불리는 대리 사장들만 희생양으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재벌 부럽지 않은 오락실 사업가들

그간 부산 남포동 오락실의 배후 실체는 조직폭력단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부산, 특히 남포동 일대를 직접 탐문한 결과 상황은 훨씬 더 추악했다. 조직폭력단은 오락실 운영 세력의 한 부분이었다. 실제로는 토착 사업가들이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고 있었으며, 심지어 경찰과 정치인도 오락실 운영 주체 중의 하나로 꼽혔다.
일부 언론과 수사기관이 지목하는 ‘신20세기파’라고 불리는 조폭 집단이 남포동 지역에서 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48쪽 상자 기사 참조). <이글> <올인> <하니> 같은 오락실은 신20세기파 전 두목인 안용섭씨(53)의 빌딩에 입주해 있었다. 불법 성인오락실에 세를 놓는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가 있다. 11월10일 부산지검 외사과는 안용섭씨를 불법 오락실 영업을 했다는 이유로 수배했다. 1980년대에 안용섭씨와 함께 신20세기파를 창설했던 공동 두목 정상수씨도 오락실 사업에 개입하고 있다. 속칭 구둣방 골목에 일렬로 있는 성인오락실이 ‘정상수 것’이라는 사실은 이쪽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현재 검·경은 오락실 상납 비리의 초점을 주로 조폭 세력에게만 맞추고 있다. 그러나 조폭 세력에게만 집중하면 자칫 부패 사슬의 실체를 놓칠 수 있다. 오락실 사업에는 조폭 외에 다양한 세력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도극장은 부산 극장가와 역사를 같이한 부산 영화계의 상징이다. 현재 남포CGV로 바뀐 이 극장(주식회사 국도타운)을 올해 초 김 아무개씨(51)가 인수했다. 그는 국도타운뿐만 아니라 남포CGV가 자리잡은 빌딩 자체를 소유하고, 1층부터 6층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룸살롱뿐만 아니라 ㅎ성인오락실이 들어서 있다. 1층 한층만 전세 보증금이 50억원이 넘는다. 인근 빌딩도 하나 더 가지고 있는데 그 빌딩에 ㅈ성인오락실이 입주해 있다. 국도극장 2관에 있는 또 다른 ㅎ오락실도 사실상 김씨가 운영하는 것이다. 이들 오락실은 2백~3백 평이 넘는 규모로 남포동 일대에서 다른 오락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김씨는 이처럼 남포동 오락실업계의 큰손이지만 그간 언론에 실체가 오르내리지는 않았다.

김씨의 삶은 ‘오락실 신화’라고 불릴 만큼 드라마틱하다. 지방 공고 출신으로서 전자 관련 기술자였던 그는 1980년대에 ‘신20세기파’ 조폭들이 부산에서 오락실 사업을 벌일 때 그들과 함께 일본 오락기 수입·개조·개발 사업을 하며 성장했다.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와중에 신20세기파가 와해되었지만 김씨는 사업을 더 넓히며 불법 성인오락실 영업을 해왔다. 그에게 최대 위기는 1995년, 여고생 8명이 사망한 자이안트 노래방 화재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노래방 업주라고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며칠 뒤 뉴스에서는 웬일인지 문 아무개씨가 업주로 떠올랐고, 김씨 대신 그가 구속되었다. 2003년 봄에도 김씨는 오락실 영업과 관련해 기소되었지만 한 달여 만에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경찰 4명이 운영하는 ‘경찰 소굴 오락실’

그뿐만이 아니다. 남포동에서 오랫동안 오락실업을 해 오며 손바닥 보듯이 업계 사정을 꿰고 있는 한 오락실 업주는 “경찰이 상납의 대상이 아니라 상납의 주체다”라고 털어놓았다. ㅅ 오락실의 경우 전 중부경찰서 경무과 감찰담당 정 아무개 경사와 지역 정치권의 한 정당 간부가 동업하는 오락실이라는 것이다. 중부경찰서는 남포동 오락실 관할 경찰서다. 하도 음해와 모략이 난무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업주들의 주장을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실제 경찰이었던 정 아무개씨는 1993년 오락실 사업을 하다가 적발된 사실이 있었다. 이후에도 몇 번인가 조사를 받았지만 항상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계속 영업을 해왔다. 11월17일 현재 그는 동생과 함께 부산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ㄴ·ㅇ·ㅂ 오락실은 아예 전·현직 경찰관 4명이 함께 운영하는 ‘경찰 소굴’ 오락실로 소문 나 있다. 여기에 전직 경사 이 아무개씨의 실명이 거론된다. 사실 이 바닥에서 경찰이 오락실 지분을 갖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2000년에도 부산에서 전·현직 경찰관이 운영하던 오락실이 발각된 적이 있었다.

부패방지위원회가 사건을 부산지검에 이첩했던 초기만 해도 수사 대상에 오른 경찰들은 하나같이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업주와의 통화 내역이 확인되자 11월15일 부산시경은 경찰 5명을 직위 해제했다. 한 오락실 업주는 구체적인 상납 사례를 이렇게 묘사했다. “빵집에 가서 빵 담는 봉지를 산다. 밑에 현금을 깔고, 맨 위에 빵을 놓는다. 그러면 100만원 정도는 쉽게 들어간다. 그렇게 두 봉지씩 주었다.”
그러면 왜 오락실 사업에 상납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일단은 어마어마한 시장 규모 때문이다. 불법 성인오락실의 하루 매출액은 수백만~수천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매장 규모가 3백~5백 평 정도라면 임대 보증금이 50억원에 월세가 5천만원에 이른다.
성인오락실에는 사장-바지 사장(대리 사장)-상무-부장-과장-대리-홀맨(접객 직원)이라는 직책이 있다. 웬만한 기업 수준이다. 중간 규모인 ㅇ성인오락실에서 과장으로 일한 이희수씨(가명·25)는 “하루 수입이 7백만~8백만 원이었다. 추석 같은 대목에는 하루 수천만원도 번다”라고 말했다. 실제 사장은 하루에 한 번씩 와서 지하 금고에 있는 현금을 수금해 간다는 것이다.

이희수씨는 경찰의 단속을 피하는 구체적인 방법도 귀띔했다. 출입문에 방음 테이프가 발라져 있어서 셔터를 내리고도 영업을 했다고 한다. 골목길로 연결된 뒷문이 있는데 단골 손님들이 그 통로를 알고 출입했다. “순찰차가 떴다 하더라도 문 닫을 때가 있고 버젓이 영업할 때가 있었다. 그 구별을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한번은 가게 앞에 술취한 사람이 있어서 경찰이 데려간 적이 있다. 뻔히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데 단속할 생각은 안하더라.”

승률 조작 기술자, 일당 2백만원

유사시 실제 사장을 대신해 ‘큰집’에 다녀오는 바지 사장에 대한 대우는 각별하다. 3개월 동안 감방에 다녀온 대가는 업소 규모에 따라 5백만~1천만 원 정도다. 바지 사장의 평소 월급은 한 달에 3백만원 정도다. 오락실 업계에는 전문적으로 기계의 승률을 조작해 주는 기술자도 있다. 한 업주는 “아침 6시쯤 손님들을 내보내고 나서 기술자를 불러 기계를 손본다. 일당은 2백만원 정도다”라고 말했다.

최근 부산 오락실 단속이 강화되면서 남포동 일대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유일하게 ‘월드청소년오락실’ 한 군데만 영업을 하고 있었으나 그 앞에 순찰차가 대기하고 있어 분위기는 차가웠다.

성인오락실에서 돈을 잃는 손님들 가운데에는 뱃사람이 많다. 항구 도시 부산의 특징이다. 다른 도시와 달리 부산에서 오락실 산업이 큰 것은 일본 기계를 수입하기 쉽고,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서 시내 중심가에 수백 평짜리 업소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만연한 공무원 비리도 한몫을 했다. 지금 가게 문을 닫은 업주들은 여론의 동향만 살피고 있다. 이번에도 ‘남포동 오락실의 숨은 주인’들이 밝혀지지 않고 넘어가면 그들은 또 이곳에서 사업을 재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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