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탈 카메라 대한민국 점령하다
  • 이철현 (leon@sisapress.com)
  • 승인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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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반기에는 필름 카메라가 카메라 시장을 75% 차지했으나, 올해는 디지털 카메라가 75%를 점유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세에 따라 업체들의 광고·판촉·개발 전쟁도 불꽃 튄다. 문제는 시장이 커질수록 일
독일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시장 조사 업체인 GfK는 국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성장세를 예상하면서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GfK 한국 지사인 GfK마케팅서비스코리아는 지난해 43만대(금액 기준 2천2백33억원·오른쪽 표 참조)였던 국내 디지털 카메라 판매 대수의 올해 전망치를 65만대로 예상했다가 몇 달 전 84만대로 수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90만대(금액 기준 5천54억원)로 높여 잡았다. 김동훈 GfK마케팅서비스코리아 연구원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발적인 성장세다”라고 말했다. 인터넷과 무선 통신 서비스가 잘 정비되어 있는 국내 정보 기술(IT) 환경이 디지털 카메라 보급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국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올해 성장세는 폭발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상반기에 판매된 카메라 가운데 필름 카메라가 75%를 차지했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그 비중이 15%(디지털 카메라 비중 75%)로 급락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필름 카메라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또 디지털 카메라 수요층이 20대 위주에서 30∼40대로 확산되었고 할인점·홈쇼핑·인터넷 등 대형 유통점 판매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도 증가세를 부추겼다.
전체 규모는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내수 침체에 영향을 받아 저화소에서 고화소 카메라 시장으로 넘어가는 추세는 주춤하고 있다. 당초 5백만 화소급 제품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저가형 3백만 화소급 시장에 머물러 있다. 시장 변화에 맞추어 업체들은 30만원 안팎의 3백만 화소급 카메라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판매 가격도 상반기 대비 15∼30% 낮추어 할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디지털 카메라 가격은 선진국 시장 가격보다 40% 가량 비쌌으나 판매량이 늘어나고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 차이가 10%까지 줄어들었다.

국내 디지털 카메라 시장 쟁탈전에서 가장 앞선 업체는 올림푸스한국이다. 양판점·할인점·전문점 등 오프라인 유통망을 넓히는 데 치중한 경쟁 업체들과 달리 인터넷 쇼핑몰 시장을 공략해 온라인 판매만으로 매달 1만대씩 소화하고 있다. 오프라인 판매에서는 소니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온·오프 라인을 합치면 올림푸스가 선두이다(68쪽 표 참조). 올림푸스한국의 선전으로 한국은 올림푸스 브랜드가 전세계에서 시장 선두를 달리는 유일한 곳이 되었다. 올림푸스 일본 본사는 ‘올림푸스한국을 배우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림푸스한국은 광고와 판촉에서도 가장 공격적이다. 사상 최고액을 지불하고 영화배우 전지현씨를 모델로 전격 기용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주요 수요층인 20∼30대를 집중 공략하기 위해서다. 전지현 카드는 대성공이었다. 올림푸스는 해상도와 정밀도에서 경쟁 업체들보다 다소 떨어진다고 평가된다. 이에 따라 제품 품질과 성능을 강조하기보다 브랜드의 친근감과 인지도를 높이는 감성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다.
올림푸스가 대박을 터뜨리자 경쟁업체 마케팅팀들에게는 ‘전지현 열풍을 막으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방어망 구축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삼성테크윈. 국내 최대 디지털 카메라 업체인 삼성테크윈은 11월 MBC 인기 드라마 <다모>의 김민준씨를 모델로 내세운 광고를 새로 제작해 모든 매체에 내보내고 있다.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김민준을 내세워 전지현에게 맞불을 놓은 것이다.

삼성테크윈은 삼성전자·삼성SDI·삼성종합기술원 등 관계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일본 업체가 점령하고 있는 국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독립을 꿈꾸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 11월6일 디지털 카메라를 차세대 주력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삼성테크윈·삼성전자·삼성SDI·삼성종합기술원 전무 이상 임원이 참여하는 ‘디지털 카메라 일류화 추진위원회’를 신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룹 전자업체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삼성테크윈은 올해 1백40만대에 불과했던 디지털 카메라 판매량을 2010년 1천5백만대로 끌어올리겠다고 장담한다. 야심찬 투자 계획과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 덕에 삼성테크윈의 시장내 입지가 크게 강화되었다. 무엇보다도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20위권에서 올해 5위로 떠올랐다.

소니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과시하면서 전자업체임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광학 기술은 떨어지지만 핵심 부품인 전하결합소자(CCD·charge coupled device)와 화상 구현칩 제조 기술은 세계 최정상이다. 소니는 웬만하면 가격 할인도 하지 않고 자체 유통망을 활용하면서도 오프라인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또 축적된 전자 기술을 활용해 컬러 재현 성능을 높이고 동영상을 비롯한 갖가지 부가 기능을 탑재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니콘과 캐논은 광학 전문업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며 제품 성능과 품질 면에서 경쟁 업체들을 ‘한 수 아래’로 취급한다. 제품 성능과 품질이 뛰어나고 중간 마진이 크다 보니 용산전자상가나 테크노마트 등 대형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판매되고 가격도 비싼 편이다. 대형 전자상가에서 밀수품이 많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니콘과 캐논을 각각 수입·판매하는 아남옵틱스와 LG상사는 사후 관리(A/S)를 강화해 정품 구입을 유도하고 있다.

1933년 광학기술연구소를 열면서 창업한 캐논은 70년 넘게 축적한 카메라 제조 기술을 핵심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LG상사는 20∼30대 소비자들에게 친화력 있는 연예인 대신에 사진 작가 김중만씨를 CF 모델로 기용했다. 캐논은 카메라 전문가들이 좋아하는 제품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명품’ 이미지를 쌓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진학과 재학생이나 사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를 잇달아 열고 고급형 제품을 보급하기 위해 디지털 카메라 사용법과 디지털 기준에 관한 전문 교육인 ‘캐논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니콘 판매 업체인 아남옵틱스도 니콘이 사진 전문가가 인정하는 제품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성장세는 내년에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GfK마케팅서비스코리아는 내년 시장 규모를 1백20만대로 예상하고 있다. 제품 고급화도 이어져 4백만∼6백만 화소대 카메라가 주력 제품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수요층은 19∼35세에서 13∼45세로 확산된다. 시장 평균 가격은 소폭 하락하고 3백만 화소 모델들은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국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국내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국내 34%, 세계 4.5%에 불과하다. 국내 업체들이 1999년부터 디지털 카메라를 생산했으나 외환 위기 이후 2년 동안 투자하지 못하면서 일본 기업과 기술 격차가 벌어졌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간신히 명함을 내밀고 있는 한국 업체는 삼성테크윈이다. 삼성테크윈도 내수 시장 점유율 5위라고 하지만 일본 기업에 비해 채산성은 크게 떨어진다. 디지털 카메라의 핵심 부품인 렌즈, CCD, 화상처리 칩을 외국 업체로부터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렌즈는 독일 렌즈 전문업체인 칼자이스, CCD는 일본 소니에서 공급받고 있어 기술 자립도가 크게 떨어진다. 삼성테크윈이 수요 변화에 맞추어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늘리고자 해도 소니가 CCD를 공급하지 않으면 생산이 중단된다.

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가전업체의 양대 산맥인 LG전자는 아예 디지털 카메라 생산 기술을 갖고 있지 않다. 국내 전자업체들이 광학 기술은 떨어지지만 전자 기술로 만회한 소니를 벤치마킹해 시장 진입을 꾀해볼 만하지 않을까? 일본 업체들에게 내주기에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너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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