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제마의 예언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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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기 맞아 사상의학 재조명 활발…“마음·몸의 관계 해부한 독창적 체계”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1837∼1900)가 사망한 지 지난 10월18일(음력 9월21일)로 꼭 100 년이 되었다. 생전에 그가 남겼다는 위풍당당한 예언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동무 100 주기가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상의학을 집대성한 필생의 역작 <동의수세보원> ‘변증론’ 편에서 이제마는 이렇게 썼다. ‘내가 죽고 난 100 년 뒤면 사람들이 이 의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이 의학이 널리 퍼져 집집마다 개개인이 직접 자기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어 모든 사람이 건강 장수를 누릴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의 예언은 일부 맞고 일부 틀렸다. 동무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인치고 사상의학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사상(四象)’의 정확한 뜻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사상의학이 인간 체질을 태양인·소양인·태음인·소음인 네 가지로 나눈다는 것 정도는 들은 풍월로 안다. 그렇지만 이른바 ‘오링 테스트’(식품과 체질과의 상관 관계를 알아 보는 실험)와 함께 체질 의학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대중 매체에 소개되던 1990년대 중반과 비교한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 열기가 식은 감이 있다. ‘집집마다 개개인이 직접 자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이상 세계는 더더욱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마를 계승한다고 자처하는 후학들은 현 상황을 비관하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상업주의가 죽인 이제마를 되살려낼 호기’라는 것이 대한한의학회 사상체질의학회 조황성 회장의 주장이다. 경희한방병원 강남점 이의주 교수(체질의학센터) 또한 그간 사상의학이 너무나 왜곡되고, 편협되고, 본말이 전도된 방식으로 일반에게 알려졌다고 비판한다. 사상의학은 단순히 ‘돼지고기가 나한테 이로운가 해로운가’를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다시, 이제마로 돌아가자.’
이제마가 위대한 것은, 그가 기존 한의학과 근본을 달리하는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체계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일화에 따르면, 이제마가 사상의학을 창시하게 된 배경에는 그가 오랫동안 앓던 고질이 있다. 유학자이지만 의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다른 환자는 약을 쓰면 쉽게 낫는데 자기는 낫지 않는 데 의문을 품었다. 이를 탐구한 결과 자기 체질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희귀한 체질인 태양인이고, 자기 병은 태양인에게만 있는 고유한 병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일화일 뿐 이제마가 처음부터 의학적인 관심에서 사상의학을 체계화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최근 <격치고>를 완역한 박대식씨(온누리한의원)는 강조한다. 사상철학을 체계화한 <격치고>는 <동의수세보원>과 함께 이제마의 양대 저작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의 나이 44세에 시작해 57세까지 무려 14년에 걸쳐 <격치고>를 완성하는 도중 <동의수세보원> 저술에 착수한 데서 알 수 있듯, 이제마의 출발점은 의학이 아닌 철학이자 인간학이었다는 것이다.

이제마의 삶은 개인적으로 불우했다. 문무, 그중에서도 특히 무예에 뛰어났는데, 함경도 태생인 데다 서자 출신인 그는 출세에 근본적인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동방의 무인[東武]을 자처하는 호에서 그의 성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기록은 그가 이미 열세 살에 가출해 타관을 떠돌며 학문을 익혔다고 전하고 있다. ‘태양인답게’ 활달무애한 천품을 지닌 그는 예의나 인사치레를 무시한 방약무인한 자세로 주변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던 듯하다(이이화 <이야기 인물 한국사>). 훗날 환갑을 넘긴 나이에 최문환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고원 군수를 지냈으나, 바로 이 때문에 의병운동을 탄압했다는 구설에 두고두고 시달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뒤 그는 ‘(이 사람이) 하루를 더 머무르면 하루가 더 해가 된다’는 상관(함경도 관찰사)의 혹평을 받으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부 학자들은 그러나 이처럼 이단아일 수밖에 없었던 이제마의 존재 기반이 사상의학이라는 독창적인 사상 체계를 형성한 자양분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서른 살 되던 해, 성리학을 신랄하게 비판한 예암 한석지의 <명선록>을 손에 넣은 이래 이제마는 나름으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방법론을 연구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본래부터 완전한 것이 아니라 한쪽에 치우친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치우친 마음을 다스리고 중용(中庸)을 이루는 것이 유학의 근본 목표였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치우침이 발생하는가. 이제마는 장부(臟腑)의 대소가 이같은 치우침을 결정한다는 대담한 가설을 세웠다. 곧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폐비간신(肺脾肝腎) 4개 장부의 발달 부위가 각각 다르다고 상정하고, 이 중 어느 부위의 기능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체질을 네 가지로 가른 것이다.

이는 <황제내경>과 <주역>을 중심으로 황로학파라는 도가의 계통을 잇고 있는 기존 한의학과는 전혀 다른 인체 이해 방식이었다. 기존 한의학에서는 인체가 본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안팎의 환경 요인이 이를 깨뜨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한의학에서는 지나친 상태(實)을 줄이고 모자란 상태(虛)를 보충해 균형을 바로잡는 ‘허실보사(虛實補瀉)’를 병증 진단 및 치료의 대원칙으로 삼는다.

이와 달리 이제마는 인체를 본래 불균형하고 불완전한 상태라고 파악한 것이다. 이제마는 철저하게 성리학적 세계관에 기초해 이를 분석해 들어갔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부터 완전한 것이 아니라 성(性)이 있고 욕(慾)이 있다.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면 성(性)의 네 극단, 곧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착한 마음을 기를 수 있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실패하면 체질에 따라 욕(慾)의 네 극단이 나타난다. 곧 태양인에게는 무례함, 소양인에게는 경박함, 태음인에게는 탐욕스러움, 소음인에게는 게으름이라는 ‘비박탐나(鄙薄貪懦)’의 욕심이 생겨나기 쉽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실패하면 병이 난다고 이제마는 보았다. 희노애락이 지나치면 발달한 장기에 더 기운이 몰리고, 덜 발달한 장기의 기운이 더욱 깎여 병으로 발전한다고 본 것이다. ‘유가 사상에 바탕을 둔 최초의 의학론’‘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반을 둔 인간 중심 의학론’이라 할 수 있는 사상의학은 이처럼 마음과 몸의 유기적인 관련성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심인성 질환이 질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요즈음 사상의학은 더욱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최선미 박사(한국한의학연구원)는 전망한다.

사상적 출발점이 다른 만큼 사상의학은 병증을 보는 시각에서도 기존 한의학과 차이가 뚜렷하다. 증상에 따라 치료하는 증치 의학이라 할 수 있는 기존 한의학에서는 어떤 증상을 항상 병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사상의학에서는 같은 증상이라도 어떤 체질에게는 병이지만, 다른 체질에게는 오히려 건강한 증표가 될 수 있다. 이를테면 한겨울에 밥을 먹으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태음인에게는 건강의 표시인 것이다.

치료하는 방식도 다르다. 한의사들은 서양 의학이나 기존 한의학의 치료법을 ‘융단 폭격’, 사상의학의 치료법을 ‘조준 사격’으로 비유한다. 예를 들어 폐렴에 걸린 환자를 치료할 때 서양 의학이나 기존 한의학에서는 해당 증상을 치료하는 약을 쓴다. 여기에는 만약에 있을 수 있는 부작용에 대비해 이를 중화시키는 약재들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사상의학에서는 체질에 따라 써야 할 약재, 써서는 안될 약재가 구분되고, 투약량도 달라진다. 타고난 성질대로, 병이 났다 하면 갑자기 악화하는 양인(태양인·소양인) 계열은 약을 조금만 써도 변화가 크다. 이에 반해 병이 서서히 악화하는 음인(태음인·소음인) 계열은 약을 오래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의학 경쟁력은 <동의보감>과 사상의학뿐”

사상체질의학회 조황성 회장은 “중의학(中醫學)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 한의학계에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허 준의 <동의보감>과 이제마의 사상의학뿐이다”라고 잘라 말한다. 장부의 구조와 기능이 아닌 인간의 개체적 특성에 기초를 둔 사상의학이야말로 한의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것이 박대식씨의 평가이다.

그렇지만 사상의학을 세계화하는 작업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이다(80쪽 상자 기사 참조). 이제마의 텍스트를 충실히 따르면서 이를 체계화하려고 노력하는 이른바 ‘정통 사상의학자’와, 사상의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8체질·16체질론 등으로 변용을 시도하는 ‘재야 사상의학자’ 사이에 학문적 교류가 거의 없는 것도 사상의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정통 사상의학자들은 8체질이나 16체질론이 ‘체질’과 ‘병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고 비판한다. 그렇지만 “사상의학을 올바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정통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당시 지배적인 사상 풍토에 반기를 듦으로써 독창적인 사상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제마의 본래 정신으로 되돌아가 열린 자세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사상체질의학회에서 만난 한 젊은 한의사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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