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여세 몰아 BT 고지도 정복한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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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인도 경제 성장축...제약, 의학 산업, 세계 10워권 규모
인도 IT 산업의 심장 뱅갈로르는 ‘인도답지 않은 인도’로 불린다. 외국 문화를 인도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 빨리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그래서 뱅갈로르를 보면 인도 전체의 변화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뱅갈로르의 변화를 이끄는 젊은이들은 인도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민감한 프리즘이다.

컴퓨터 엔지니어 리한(28)에게서는 인도의 낡은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포드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점심은 맥도널드나 피자헛에서 먹고, 저녁에는 미국계 패밀리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에서 친구들을 만나 맥주를 마신다. 휴대전화는 그의 필수품이고, 사무실과 집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햄버거나 피자에 원두 커피 한 잔. 리한이 점심 한 끼에 지출하는 돈은 100 루피(2천6백원)가 넘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안주와 맥주로 저녁을 해결하면 한 사람당 3백 루피(7천8백원)는 족히 든다. 뱅갈로르의 보통 사람들이 20 루피(5백20원) 안팎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대부분 집에 전화조차 못 놓는 실정에 비하면, 리한은 엄청나게 ‘사치’하는 셈이다.

리한이 받는 월급은 8만 루피(2백8만원) 가량. 대학 졸업 직후 1만5천 루피(39만원)에서 시작했지만 지난 6년 동안 몇몇 회사를 옮겨 다니며 경력을 쌓은 덕에 지금 그는 꽤 알아주는 외국계 컴퓨터 회사의 팀장이 되었다. 리한은 직장을 옮겨다니면서 6년 만에 수입이 5배 가량 뛰었다. 인도에서는 직장을 옮겨다니면서 ‘몸값’을 높이는 일이 일반적이다.

뱅갈로르 발판 삼아 중국 뛰어넘으려 시도

뱅갈로르에서는 리한처럼 사는 젊은이를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IT 회사의 컴퓨터 엔지니어나 MBA를 마친 뒤 외국계 금융 회사가 운영하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대다수 젊은이는 리한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뱅갈로르에는 IBM·마이크로소프트 등 외국계 정보통신업체 100여 개가 들어와 있고, 시티은행·JP모건 등 외국계 금융 회사 수십여 개가 들어와 있다. 물론 이들 회사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리한처럼 수입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직업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뱅갈로르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까지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가고 있다. 뱅갈로르는 카슈미르·케랄라·캘커타·아쌈 등 인도 다른 지역에서는 물론 스리랑카·방글라데시·베트남·중동에서도 유학생이 몰려든다. 유학생들은 IT 회사 직원들 못지 않게 씀씀이가 크다. 이들은 뱅갈로르에 첫발을 딛자마자 3만 루피(78만원)가 넘는 오토바이와 5천 루피(13만원) 가량 하는 휴대전화를 산다. 또 일부 유학생들은 노트북이나 컴퓨터까지 장만해 하숙집에 인터넷을 연결한다.

최근에는 인도의 대표적인 통신 회사 가운데 하나인 릴라이언스가 5백 루피(1만3천원)만 내면 휴대 전화를 빌려주는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휴대 전화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휴대 전화를 이용하자 대학들은 ‘교내 휴대 전화 사용 금지’ 규정을 새로 만들어냈다.

통신 회사들은 인프라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지만, 휴대 전화 문자 서비스와 인터넷 사용이 워낙 빠른 속도로 급증하는 까닭에 서버가 마비되는 일도 발생한다. 얼마 전 인도와 호주의 크리켓 경기가 열린 날에는 젊은이들이 휴대전화 문자 서비스와 인터넷을 이용해 경기 상황을 주고 받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바람에 뱅갈로르의 일부 통신 서버가 경기 시간 내내 마비되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구미화한 소비 유형과 늘어난 씀씀이는 인도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1억 5천만∼3억 명에 이르는 인도의 젊은 중산계층이 주택·자동차·휴대전화 등을 구매하면서 제조업 생산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인도의 경기를 활황으로 이끌고 있다. 현재 인도에서 한 달에 100만대 이상 팔리는 휴대전화와 하루에만 1만대 이상 팔리는 오토바이 대부분은 25세 이하 젊은이들의 소유라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의학 수준 높아 ‘헬스 케어 투어’ 인기

대학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공부하고 있는 아누(19)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도의 또 다른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그녀는 현재 한창 인기를 누리는 IT 대신에 BT 관련 전공을 선택했다. 아누는 “정부가 몇 년 전부터 BT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대학들이 앞다퉈 관련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이제 곧 BT 시대가 열리지 않겠는가.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면 지금의 IT 전공자 못지 않게 BT 전공자들이 주가를 올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누의 말대로 수년 전만 해도 컴퓨터 관련 학과를 특화했던 대학들이 지난해부터 바이오테크놀로지 관련 학과를 다투어 개설하고 있다. 컴퓨터공학이나 경영학만을 선호해 왔던 대학들까지 생화학과·생물학과 등을 새로 만들고 학생들을 불러들인다. 인도 정부 역시 BT 연구 투자비를 대폭 늘리고, 관련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수년 전 IT 산업을 집중 육성해서 국가 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인도 정부는 이제 차기 비전 산업으로 BT를 육성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는 벌써부터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뒤지지 않는 의학 기술을 가진 나라로 꼽히고 있다. 아유베다로 알려진 전통 의학뿐 아니라 서양 의학 기술에서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스리랑카·방글라데시 같은 아시아 국가는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인도의 ‘헬스케어 투어’ 티켓을 사는 환자들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인도의 제약 산업 또한 눈부시게 성장했다. 인도의 토착 제약 기업인 닥터래디스 연구소나 랜백시는 이미 세계적인 제약 회사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했다. 랜백시는 미국 일반 의약품 시장의 10위권 안에 들어섰다. 특히 인도 제약 회사들은 생약 원료 수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인도의 제약 수출 규모는 1조6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생약 원료 수출 시장까지 합하면 30조 달러에 이른다. 인도 제약업계는 인도 IT산업의 발전 과정을 자신들의 ‘역할 모델’로 삼고 있다.

‘인도 같지 않은 인도’ 벵갈로르의 젊은이들이 IT에 이어 BT 산업에서 인도의 미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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