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시 대표하는 시인 개리 스나이더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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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시 대표하는 시인 개리 스나이더/동양 정신과 생태학 결합한 ‘야성의 삶’ 추구
은발 노시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인간의 언어까지도 야성(野性)의 체계이며, 유년 시절부터 야성의 삶을 추구해온 시인의 음색과 억양은 신비로울 정도였다. 자작시를 낭송할 때, 그러니까 현대 문명이 배제한 야성을 노래할 때 시인의 음성만큼은 야성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그의 시낭송은 매혹적인 음악에 가까웠다.

1990년대 후반까지 개리 스나이더는 국내 독자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영문학과 생태학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매우 낯선 이름이었다. 개리 스나이더가 자선한 시집 <무성(無性)>이 지난해 초 우리말로 옮겨지고(강옥구 옮김, 한민사) 이번 학술대회에 때맞추어 에세이 <야성의 삶> (이상화 옮김, 동쪽나라)이 출간되면서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개리 스나이더는 앨런 긴즈버그 이후 미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시집 <거북섬>으로 퓰리처 상을, 시집 <끝이 없는 산과 강들>로 미국 시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볼링겐 상을 수상했다. 그의 시와 사상은 그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시와 사상 안에 삶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성은 곧 야성이며, 인간이 야성을 분리하는 순간 자연의 질서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그는, 부모를 따라 북서 태평양 연안으로 이주한 이후 농장에서 자랐고, 이미 열세 살 때 눈 덮인 산을 혼자 등반했으리만큼 야성의 품에서 성장했다.

불교는 실천이지 이론이 아니다

설산에서 겪은 강렬한 체험을 옮기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나는 숲속에서 성장하며 우리 모두가 지구상에서 함께 존재한다는 어떤 통찰을 갖게 되었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인간은 자연의 한 일부일 뿐 자연을 지배할 권리가 없다는 이 인식이, 1950년대 중반 낮에는 육체 노동을 하고 밤에는 명상하는 생활을 하며 시를 쓰게 했는데, 당시 발표된 그의 시들은 비트(反문화) 운동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리드 대학에서 문학과 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1956년 미국을 떠났다. 일본 교토에서 선불교를 배우고, 앨런 긴즈버그와 인도를 순례한 그는 1969년 귀국해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 구릉지에 손수 집을 짓고 ‘19세기의 지혜와 21세기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 그는 일본 선불교와 생태학의 정신을 주제로 강연했다. 중생과 불살생 개념을 생태학의 실천 사상으로 내세우는 그는, 1950년대 일본에서 불교를 공부할 때 만난 도겐(道元) 선사의 <산수경>을 인용하며 모든 존재를 차별 없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불교가 이론이 아니고 실천이듯이, 명상이나 야생의 삶이 신비주의이거나 도피가 아니다. 명상은 종교 행위가 아니고 ‘의도적인 고요와 침묵’이며, 야성의 삶은 ‘단지 양지 쪽에서 열매를 따먹는 일’이 아니라 ‘짐승의 똥에 섞인 으스러진 뼈와 같은 자연의 어두운 면까지도 내려가 보는 심층 생태학’과 관련된 것이다.

시인이자 영문학자인 김영무 교수(서울대)에 따르면, 개리 스나이더의 시는 전원적인 삶을 이상화하거나, 풍경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자연으로 도피하지 않는다. 자연이 보여주는 총체적인 생명의 긴장과 대립과 조화의 관계에 늘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리 스나이더는 화석 에너지에 기초를 두고 있는 오늘날 삶의 방식은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낡은 처방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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