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출신 소설가 이스마엘 카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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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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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출신 소설가 이스마엘 카다레/“체제보다 문학 내부의 자유가 중요”
알바니아 출신 소설가 이스마엘 카다레는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동유럽의 대표적인 작가다. 그의 소설은 시적이고 신화적인 언어로 쓰인 데다 풍자와 상징이 가득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그의 고향이 호메로스와 아이스킬로스의 나라 그리스로부터 3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며, 어려서부터 접한 알바니아 구전 문학에서 자양을 얻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에게는 항상 알바니아 출신 망명 작가라는 딱지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지금 망명자가 아니며, (1년 반 동안) 조국을 떠나 있던 생활이 내 작품에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다. 내 문학에 영감을 주는 것은 언제나 조국 알바니아이다.”

하지만 독재로 신음했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땅 알바니아를 고국으로 둔 그가 ‘체제와 문학’ 이라는 틀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그는 (독재 체제였던 조국의) 현실이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질문을 삶과 문학의 관계로 고친 후 답변을 내놓았다. “삶과 문학의 달력은 다르다. 삶이 문학에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로 문학이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당연히 특정한 체제가 문학 작품의 질을 보장할 수도 없고, 반대로 갉아먹을 수도 없다.

특히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의 유용성을 믿지 않았다. 나쁜 문학과 좋은 문학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내부에 자유가 존재하느냐이다. 게다가 문학과 현실 사이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이 시차 때문에 문학이 위대해진다.”

그가 대중 문학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 외부의 적으로 저속한 취미, 시장의 논리가 횡행하는 것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문학에는 여러 단계가 있으며 모든 종류의 문학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 또한 일반적인 독자는 평범한 작가 덕에 문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는 “둘은 지휘관과 병사의 관계와 비슷하다. 대중 작가들은 문학을 위한 순교자와 같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병사의 역할에서 벗어날 때이다. 지휘관으로 돌변한 병사들이 자신의 작품을 따라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위험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는 알바니아가 복수의 땅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국보다 훨씬 긴 분단 역사 때문에 많은 비극을 간직하게 된 것일 뿐이며, 그 최근 사례가 코소보 사태라는 것이다. 그는 “상처투성이 통일보다는 국경 안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인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표정은 문학의 마력을 논할 때 활력이 넘쳤다. “창작은 사랑과 비슷하다. 무언가 새로운 것의 씨앗이 내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이 가장 기쁘다. 그 다음은 고통뿐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저항물로 언어를 꼽았다. 언어야말로 작가에 대한 압제자라는 것이다. “언어란 극단적인 독창성을 수용할 수 없는 구조다. 작가가 자신 앞에 무릎을 꿇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도 그에 못지 않은 압제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카눈’이라고 불리는 알바니아 관습법을 소재로 비극적인 사건을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형상화한 <부서진 사월>, 공산 정권의 스파이 활동 전제 정치를 겨누고 있다는 이유로 혹독하게 비난받은 등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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