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북한 연구 ‘풍요 속의 빈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0.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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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와서야 ‘냉전 사고’ 극복…방법론 논쟁 속 ‘실사구시’ 모색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1980년대 후반 동유럽이 무너지기 전까지 국내에는 ‘냉전적 사고에 따른 북한 비판’ 또는 ‘운동권의 맹목적인 북한 추종주의’ 외에는 이렇다 할 북한 연구 방법론이 없었다. 그만큼 학문으로서의 북한학은 양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질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비로소 북한을 이해하는 과학적 방법이 무엇인가를 공개 토론하기 시작한 때는 사회주의권 붕괴를 계기로 국내에서 이념 족쇄가 느슨해지던 1989년부터이다. 그 해 재독 학자인 송두율 교수(당시 베를린 자유 대학)가 처음으로 ‘내재적 연구’를 제안하는 글을 국내 잡지에 기고했기 때문이다.

그의 제안은 당시 진보적인 성향으로 이름을 얻고 있던 〈사회와 사상〉 12월호에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핵심 내용은 ‘북한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는 물론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동유럽•중국과도 다른 이념과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북한 사회에 내재한 이념과 운영 원리를 중시해 이를 기초로 연구해야 좀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북한을 제대로 보려면 좀더 북한 자신의 설명에 가까이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송교수의 제안은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지지를 얻었는데, 이에 대해 반론과 비판이 제기되면서 연구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으로 발전했다. 1993년과 이듬해 각각 두 번에 걸쳐 ‘내재적 접근법’을 비판한 강정인 교수(서강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강교수 주장의 핵심 요지는 ‘송교수 등 일부 논자들이 내재적 접근법과 대칭되는 외재적 접근법을 지나치게 편협하게 규정해 양자 간의 대립을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치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당시 ‘외재적 접근법’으로 지목되었던 연구 방법론으로는 근대화 이론ㆍ전체주의 이론을 사회주의 사회 분석에 적용하는 연구 경향들이 있다. 강교수는 외재적 접근법이 비록 한계를 지니고 있더라도 여전히 유효한 접근법일 수 있고, 외재적 접근법의 주요 도구인 민주주의 이념이 사회주의 체제의 취약점을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논자들 간에 반론ㆍ재반론이 이어지면서 논쟁은 내재적 접근법ㆍ외재적 접근법 외에 ‘내재적-비판적 접근법’ ‘현상학적 접근법’ 등 또 다른 방법론 등장을 초래하며 한 차원 높게 전개되었다. 내재적 접근법의 단점을 보완해 이른바 ‘내재적-비판적 접근법’을 내놓은 세종연구소 이종석 박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같은 접근법의 핵심은 내재적 접근법을 일단 받아들이되, 비판적인 입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재적 접근법과 외재적 접근법을 둘러싼 논쟁은 강정인 교수가 문제를 제기한 지 6년 만인 지난해 ‘양자는 상호 대립적이면서도 보완적’이라는 견해를 담은 새로운 논문을 발표해 전환점을 맞았다. 강교수는 이 논문에서 ‘양자의 접근법은 어느 쪽이 더 우월한가라는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지 않는 한 모두 나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며 봉합을 시도했던 것이다.

1990년대를 경과하면서 북한학은 연구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과 함께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사회주의적 조합주의’ ‘신전체주의론’ ‘유격대 국가론’ 등 북한 체제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틀이 등장하며 논의가 풍부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학은 ‘허리가 잘린 학문’이라는 것이 이종석 박사의 평가이다. 이박사는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북한 연구는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풍토가 정착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연구 결과물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연구 분야가 여전히 정치ㆍ외교 분야에만 집중되어 있는 등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자료가 ‘군사 기밀’에 속해 접근이 쉽지 않은 것도 연구자들을 괴롭히는 대목이다. 연구 방법론에 대한 더 많은 토론과 함께, ‘현실 이슈’에만 치우친 현재의 연구 경향을 극복하고 분야 별로 좀더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북한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지평이 열린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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