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구보씨의 하루
  • 崔寧宰 기자 ()
  • 승인 200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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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대부분 미디어에 의존…‘통신과 컴퓨터 없는 세상’ 꿈꾸기도
2020년 2월3일 아침 6시, 영화 시나리오 작가 구보씨는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전화회사가 제공하는 모닝콜 음악이다. 구보씨는 신문꽂이에 있는 e-paper를 집어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e-paper는 과거 신문과 같이 들고 다니며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산림을 훼손해서 만드는 종이가 아닌 특수 재질이다. 이 신문은 버스 카드같이 매일매일 기사를 충전해서 볼 수 있다.

구보씨는 화장실에서 나와 주방으로 가서 식탁에 앉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형 비디오 스크린이 부엌 벽에 나타난다. CNN 방송 로고가 뜬다. 구보씨는 뉴욕 시의 뉴스가 필요하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그는 지금 뉴욕 시 장면을 쓰고 있다. 리모컨을 조작하니 뉴욕 시의 뉴스만 집중적으로 나온다. 구보씨는 다시 리모컨을 조작했다. 어제 사둔 주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블룸버그 통신사의 증권 뉴스가 나온다. 현재 전세계 방송은 CNN과 경제 뉴스만 전문으로 다루는 블룸버그 통신이 좌우하고 있다.

“여보, 아이 깨우세요. 학교 수업 시간이에요.”

구보씨의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인데 선천성 소아마비로 잘 걷지를 못한다. 그래서 1주일에 한 번만 학교에 간다. 나머지 날은 집에서 하루 4시간씩 정해진 시간에 원격 교육을 받는다. 아이 방에는 머리에 쓰는 교육기기가 있어, 비디오뿐만 아니라 3차원 입체 영상을 통해 현장감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구보씨는 시나리오 작업실로 가려고 현관을 나서며 외출용 5세대 컴퓨터를 손목에 찬다. 크기와 모양은 손목 시계와 꼭같다. 이 모빌 컴퓨터는 말이 컴퓨터이지, 텔레비전·휴대폰·ID카드·신용카드·수첩 기능을 모두 겸하고 있다. 말하자면 통합 미디어 기기이다.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보씨는 손목 시계 컴퓨터를 이용해 증권 사이트에 접속한다.

이 때 손목에 진동이 전해 온다. 조그마한 손목 시계 액정 화면에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제작하고 있는 감독이 나타난다. 감독은 지금 뉴욕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구보씨, 시나리오 수정이 필요하니, 작업실에 도착하는 대로 PDP TV로 연결하세요.”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PDP TV 화면으로 뉴욕을 연결했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던 거대한 스크린이 화상 전화 시스템으로 바뀐다. 벽걸이 텔레비전이라고 부르는 이 PDP TV 화면을 통해서 모든 통신과 미디어 수신을 구현할 수 있다.
미디어 없는 휴양지 인기

“자유의 여신상에서 벌어지는 격투 장면 원고 잘받았어요, 하지만 상황 설정 자체가 어색해요.”

감독의 말이 끝나자, 지난번 시나리오대로 촬영한 필름이 바로 PDP TV 화면에 뜬다. 감독은 영화 화면 곳곳에서 나타나 어색한 장면을 지적한다. 30분에 걸친 국제 화상 회의가 끝났다. 지적을 많이 받아서인지 뒷머리가 당긴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구보씨는 홍차를 한 잔 마신다.

하지만 그는 다시 PDP TV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만다. 구보씨는 미디어 중독자이다. 한시라도 미디어를 보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디어를 증오하며 벗어나고 싶어한다. 구보씨는 리모컨을 조작해 뉴스를 꺼버리고 여행 사이트로 들어간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발리 클리프 호텔을 클릭해 본다. 이 호텔은 바닷가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이 호텔 정원에서 바라보는 장엄한 일출 장면이 화면에 꽉 찬다. 눈부시게 흰 백사장과 맑은 바닷물, 주변을 둘러싼 울창한 열대림이 사람을 압도한다. 이 호텔의 가장 큰 매력은 통신과 컴퓨터와 미디어가 없다는 점이다. 휴양지에서 미디어를 없애는 것은 요즘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래 이번 휴가 때는 저 곳으로 가자. 무엇보다 이 지긋지긋한 통신과 컴퓨터에서 벗어날 수 있잖아.”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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