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즐기고, 뒤집는 ‘음식 남녀’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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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신세대 문화 기호로 떠올라…기존 관행·가치관 뒤엎고 새로운 문화 향유하는 통로
삼성전자에 다니는 남은숙씨(23)는 눈으로 아침을 ‘먹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 갓 구워내 봉긋하게 부푼 빵, 살살 녹는 치즈 케이크. 아침에 눈을 떠 컴퓨터를 켜는 순간 남씨 모니터에는 이런 호화판 아침상이 배달되어 있다. 그 옆에는 쪽지도 한 장 놓여 있다. ‘향기로운 남자가 드리는 아침 식사-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올해 초 PC통신 유니텔 조리연구동호회에 가입한 뒤 누리는 호사이다. 동호회 가입 이래 남씨는 소모임 운영자가 아침마다 메뉴를 바꾸어 보내주는 음식 사진을 ‘한눈 가득’ 맛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이 생겼다.

요리 관련 ‘한글 인터넷 사이트’ 6백여 개

최근 몇 년간 음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음식은 더 이상 한끼를 ‘때우는’ 수단이 아니다. 음식은 이제 그 자체로 주인공이다. 최근 1∼2년 사이 공중파 방송사들이 저녁 시간대에 경쟁적으로 신설한 요리 프로그램들을 보라. ‘간장 2큰술, 쇠고기 2백g’을 주워섬기며 풍부한 비타민·단백질을 강조하는, 요리 강좌식 프로그램은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대신 사회자와 초대 손님은 요리를 하는 내내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음식에 얽힌 추억, 음식에 어울릴 만한 분위기와 사람. 결국 이들의 수다는 그날의 주인공인 음식에 바치는 헌사이다.

텔레비전뿐만이 아니다. 하이텔·천리안·유니텔에 있는 식도락·요리 관련 동호회 가입자 수는 5천∼6천 명을 넘나든다. 인터넷에서 한글 엔진으로 검색할 수 있는 요리 관련 사이트는 6백여 개에 이른다. 최근 2∼3년 사이 잇달아 창간한 식도락 전문 잡지들은 ‘발행 열흘 만에 완전 매진’을 광고하곤 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음식 애호(愛好)가 새로운 문화 징후로 떠오르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음식 애호가로 가는 출발점이다. 이들은 새롭고 맛있고 분위기 있는 집에 열광하지만 수준 이하인 집에 대한 비판 또한 가차없다. 이런 음식점들은 하이텔 식도락동호회에 있는 ‘도마 위의 생선’ 난 같은 데서 실명으로 난도질을 당한다. 식도락 문화가 발달하면 ‘남이 만드는 것을 즐기는 문화’에서 ‘내가 만드는 것을 즐기는 문화’로 옮아가게 된다는 것이 선진국의 공통된 경험이다. 현직 조리사(호텔 캐피탈 조리부 계장)이면서 유니텔 조리연구동호회 대표 운영자인 심재호씨(34)는, 97년 처음 동호회를 만들자마자 일반인이 대거 몰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수프 공주’에게 데이트 신청한 ‘면발 왕자’

음식 문화를 이끄는 리더들의 태동은 새로운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2학년인 안민정양(19). 사람들은 그를 ‘라면 공주’‘라면 걸’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7월 인터넷에 ‘라면으로 보통 때우기’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한 데 이어 <라보때>(미컴)라는 단행본까지 내자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이다. 언젠가는 안양을 ‘수프 공주’라고 부르며 데이트를 신청한 자칭 ‘면발 왕자’도 있었다.

지난 1년간 라보때 홈페이지에 쏟아진 사람들의 관심은 안양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스캐너가 없어 라면 사진 한 컷 싣지 못한, 요리 사이트치고는 결코 화려하지 않은 이 공간에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표면적으로 두 가지. 일찍이 라면만을 전문적으로 다룬 홈페이지가 없었던 데다, 안양의 재기발랄한 창의력 덕분이었다. ‘평범한 라면은 죽어도 싫다’는 구호대로, 이곳에서 된장·치즈·우유 따위를 첨가한 라면 정도는 기본이다. 참기름에 버무린 라면을 상추에 싸 먹는 보쌈 라면,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부을 때 녹차 팩을 함께 넣는 녹차 라면, 메밀국수 양념장과 라면을 곁들인 라면 소바, 삶은 라면과 생선살·고깃살을 섞어 기름에 부친 라면 전. 라보때 홈페이지에는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라면 요리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라보때가 하루 3백∼4백 명에 이르는 네티즌을 단골로 사로잡은 비결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이곳에 들르는 사람들은 라면에 대한 온갖 잡다한 추억과 상식, 전문 정보를 서로 나눈다. 군대에서 끓여 먹던 ‘봉지 라면’에 대한 추억과 그 조리법을 풀어 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본에 있는 라면 박물관과 라면의 역사 따위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국민 한 사람당 한 해 평균 80∼90개를 소비한다는 라면. 일찌감치 모든 국민의 기호 식품이 된 라면이 이 공간에서 비로소 문화적 담론의 대상에 오른 것이다.

라면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개인 홈페이지에 요리 또는 음식 비평 난을 따로 두는 네티즌이 점차 늘어가는 추세이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조아라씨(31·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 연구원)가 운영하는 ‘아라의 엄청 간단 요리 교실’(http://members.namo.co.kr/~serino/cooking)’이다. 라보때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이 홈페이지는 네티즌 사이에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면서 하루 2천5백여 명이 찾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학교 동아리 선후배끼리 결혼한 ‘죄’로 집들이를 열네 번 하는 동안 요리에 관한 한 거의 득도 경지에 이르렀다는 조씨는 맞벌이 경험에 의거해 무려 3백60여 가지에 이르는 요리에 ‘엄청 간단’의 원칙을 적용했다(‘엄청 간단 잡채’‘엄청 간단 호박 나물’ 식으로, 이 수식어는 조씨의 전매 특허이기도 하다).페미니스트들의 ‘부엌과 정면으로 맞서기’

△캔·냉동·건조·시판 제품을 주로 이용할 것 △20분 이내에 만들 수 있을 것 △쉽고 간단하지만 맛있고 특이할 것 △자취생·독신자·새댁·남성도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이 네 가지 원칙에 따라 조씨는 계량 컵이나 스푼 따위 복잡한 도구를 배격한다. 모든 설명은 ‘간장, 밥 숟가락(혹은 찻숟가락)으로 한 개’ 식이다. 요리에 서투른 초보자들은 이같은 설명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인스턴트 요리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식품영양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전문가답게 조씨가 제시하는 요리법에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다. 이를테면 조씨는 화학 조미료 대신 멸치·다시마·버섯을 함께 우린 국물을 쓰라고 조언한다. 따지자면 이들 재료가 배합된 국물이 시원한 맛을 내는 것은 ‘상승 작용’이라는 화학적 메커니즘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이 메커니즘을 알 필요는 없다. 재미있고, 즐겁고, 맛있게 요리를 즐기면 그뿐’이라는 것이 조씨의 지론이다.

식품학 교과서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음식 소비는 영양가·기능성을 따지는 단계에서 취미·문화의 단계로 넘어간다. 한국 또한 86년 아시안게임·88년 올림픽을 겪으며 초고속으로 성장한 외식 산업 규모가 연간 20조원 수준에 이른 만큼 즐기는 문화로서의 음식 문화가 싹 틀 자양분은 무르익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식도락이나 요리를 즐기는 신세대에게서 발견되는 재미있는 현상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만화·애니메이션·록 따위에도 공통된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다(조아라씨를 비롯해 개인 홈페이지에 요리와 함께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따위를 올려놓은 네티즌은 쉽게 발견된다). 조아라씨는 ‘90년대 들어 네트(net) 제1 세대가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을 이끌었듯 최근 식도락·요리 열풍을 일으키는 선도 세력은 네트 2세대’라고 분석했다. 결국 이들에게 음식은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즐기는 또 하나의 통로인 셈이다.같은 맥락에서 음식은 기존 문화를 뒤집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최근 여성계에서는 한 페미니즘 잡지에 실린 요리 칼럼이 화제이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가 99년 봄호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음식 모녀’ 난이 그것. 가사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해 온 페미니즘 잡지와 요리 칼럼이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부엌으로부터 도피하기’보다 ‘부엌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선택했다. 요리 칼럼의 첫 번째 필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페미니스트 모녀 박형옥(62)·이은경(35) 씨. 어머니 박씨는 쉰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이화여대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여성 문제를 공부한 여성운동가이고, 딸 은경씨는 결혼 2년차인 신참 주부이자 <여성신문> 기자이다.

이들 모녀에게 음식은 행복과 불행, 모두의 원천이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상대가 고마운 마음으로 그것을 먹을 때 음식은 천상의 행복을 준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어머니 박씨의 요리 솜씨는 빼어난 차원을 넘어‘사람을 감동시키는’ 수준이다.

그러나 원치 않는 음식 만들기는 ‘하녀의 노동’이나 다름없다. 반복되는 회사 야근으로 지칠 대로 지친 딸에게 시댁 부엌은 ‘칼질에 손가락이 뭉텅 잘려 나갈 것 같은’ 공포의 장소일 따름이다. ‘부엌에서의 유능함보다는 부엌 밖에서의 자아 실현을 백 배나 소중하게 생각해 온’ 어머니 박씨는 딸이 처한 현실에 분노한다. 결국 박씨의 노여움은 딸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거실에 앉아 있던 사위를 향해 폭발한다. “자네는 왜 여기 앉아 있나. 같이 일 좀 해라.”

칼럼을 쓰는 동안 딸 이은경씨는 정신 치료를 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가사 노동이 여성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 음식을 매개로 비로소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키지 않는 시댁 행사는 가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착한 며느리 되기’를 포기한 이씨는 조만간 어머니와 함께 ‘결혼의 속박을 끊고, 여성의 인간 선언을 돕는’ 전혀 새로운 요리책을 펴낼 참이다.

음식을 둘러싼 기존 관행과 가치관을 뒤집으려는 시도는 박재영씨(31·<청년의사> 편집국장)에게서도 발견된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의 대명사로 통하는 ‘경상도 남자’로서 어머니와 함께 <뭐 먹지>(지식공작소)라는 요리책을 펴낸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장 같기도 하다. 개성 출신 어머니가 전수해 준 요리 노하우를 좌충우돌 배워 가며 박씨는 음식에서 ‘일상적인 것, 사소한 것’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그에게 음식은 추억이다. 개인사의 사소한 기억 하나하나가 가장 생생하게 녹아들어 있는 것이 음식이다. 그는 ‘요리는 할 줄 알아도 밥은 할 줄 모른다’는 사람들에게서 거창한 것만을 떠받드는 우리 사회의 허위 의식을 읽어낸다. 자취 생활 11년째인 박씨나, 20년 만에 고국을 찾은 친척이나 변함없이 그리운 음식은 시래깃국·아욱국·김치찌개일 따름이다. 억눌린 식욕 해방시키는 ‘유쾌한 뒤집기’

그를 찾아온 주부 환자들은 흔히 ‘논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집안일이 얼마나 큰 일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그가 나무라면 이들의 얼굴은 금세 환해진다. 사소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가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이는 음식 문화가 그 나라 문화의 전반적인 수준을 반영한다는 고형욱씨(33·영화기획자)의 지적과도 통한다. 고씨는 PC통신 식도락동호회에서 활약하다가 언론 매체에 진출한 대표적인 신세대 음식 평론가.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을 늘어 놓은 기존 평론과 달리 ‘입체적인 정보를 담은 보고서 형식의 평론’으로 음식 비평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고씨는 한번 낭패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그는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퓨전 푸드로 대표되는 서울 청담동이 새로운 음식 문화를 선도하는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그러나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중심지는 서울 압구정동으로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이곳에는 최근 소규모로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이를테면 식탁이 12개밖에 안되는 식당에 조리사가 3명이고, 1주일 단위로 새 요리를 개발하는 식이다.

그는 규모·인테리어·고급 재료 따위 ‘외형’으로 승부하던 청담동 시대는 가고, ‘맛의 깊이’로 승부하는 압구정동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는 아이템 자체보다 아이템의 깊이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사회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고씨는 음식에 대한 관심이 문화를 훨씬 풍부하게 살찌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마포에 왜 하필이면 돼지갈비촌이 생겼을까.’ 호기심을 풀기 위해 그의 관심은 인류학·지리학·역사학 여러 방면으로 바쁘게 이동한다. 그 결과 세 가지 가설이 나온다.

개화기까지 마포는 서울의 대표적인 포구. 그렇다면 마포에는 배를 통해 들어온 젓갈이 지천이었을 테고, 이 과정에서 젓갈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돼지고기가 선택된 것일까. 두 번째, 중인 계급이 많이 살던 동네였던 만큼 쇠고기 대신 단백질을 보충할 싼 고기가 필요해서였을까. 세 번째, 한때 이곳에 목공소가 밀집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톱밥·먼지에 찌든 목공들이 목구멍을 기름으로 씻어내는 차원에서 돼지고기를 즐겼던 것일까.

이 중 맞는 가설이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음식을 통해 특정 지방의 정치·경제·역사, 개인들의 삶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적 상상력과 이해가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식욕과 성욕은 역사적으로 가장 억압되어 온 인간 본능이라고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는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억눌린 식욕을 해방시키려는 ‘유쾌한 뒤집기’를 지금 막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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