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의 ‘우먼 파워’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1999.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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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행정부 장관 14명 중 6명이 여성… 탁월한 능력·전문성으로 ‘맹활약’
연극인 출신 손 숙씨가 환경부장관에 임명된 지 한 달 만에 물러난 ‘촌극’은 미국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차관보급 이상 고위직은 모두 상원의 꼼꼼한 인준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부적격자는 예외 없이 걸러지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여성과 소수 민족 출신에게 장관 직을 가장 많이 할애한 인물로 평가된다. 또 이들 모두가 꼼꼼한 인준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한 명실상부한 장관감이다. 현재 클린턴 행정부 각료는 모두 14명인데, 이 가운데 6명이 여성이다.

국제정치학자 출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비롯해 재닛 리노 법무장관, 알렉시스 허먼 노동장관, 도나 샬랄라 보건장관, 캐럴 브라우너 환경보호청 장관, 아이다 앨바라스 중소기업청 장관이 모두 여성이다. 여기에 장관급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재닛 앨런 위원장과 샬린 바세프스키 무역대표부 대표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8명으로 늘어난다.

96년 11월 재선에 성공한 클린턴 대통령은 막판까지 각료 인선을 두고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 때 자신을 찍어준 여성들과 흑인·히스패닉계 등 소수 민족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 각료가 6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클린턴 대통령이 이들을 각료로 임명한 것은 단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이들 각각이 지닌 전문성 때문이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조지타운 대학 외교학과 교수 출신이다. 장관 직에 지명되기 전에 유엔 대사를 지낸 그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외교를 주장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는 제시 헬름스 상원외교위원회 위원장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가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서는 처음 국무장관에 지명되었을 때 이를 트집 잡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리노 법무장관도 마찬가지였다. 93년 클린턴 행정부 1기 내각 출범 당시 입각한 그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처럼 여성으로서는 처음 법무장관에 임명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하버드 법대를 나오고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첫 직장을 구할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그가 나중에 플로리다 주 검찰총장까지 올라가자 많은 사람이 그가 장차 첫 여성 법무장관이 되리라고 예상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이나 리노 장관 같은 거물급에 비해 다소 경량급인 나머지 여성 각료들은 대부분 경력을 인정받아 발탁된 사람들이다. 캐럴 브라우너 환경보호청 장관은 자신의 고향인 플로리다 주에서 환경운동을 시작했고 한때 워싱턴의 시민단체인 ‘시민 행동’에서 환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었다. 특히 플로리다 주 환경책임관으로 일할 당시 그는 연방 정부를 상대로 에버글레이드 국립공원 복구 비용으로 무려 10억 달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미국 전역의 환경주의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처럼 열성 환경주의자인 그를 과감하게 각료로 입각시켰다.

클린턴, 인종·성 초월한 내각 구성

통상 변호사 출신인 샬린 바세프스키 무역대표부 대표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통상 협상 전문가이다. 전임인 미키 캔터 대표 밑에서 부대표로 일한 그는 대외 통상 협상에 관한 한 깐깐하기로 이름나 있다. 클린턴이 그를 발탁한 데는 미국의 국익을 정확히 꿰뚫어볼 줄 아는 안목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92년 11월 대통령 선거에 승리한 뒤 1기 내각을 인종과 성을 초월한 ‘미국적 내각’으로 구성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96년 대선에서 재선되었을 때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라에 봉사하는 데 특정 계층의 사람이 제외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정신에 따라 나는 각료 인선에 (업무의) 탁월함과 (인종의) 다양성을 우선시했다.” 여성에게 장관 자리를 할당하는 것이 결코 ‘특혜’가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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