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숫자와 서비스의 함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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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8.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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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도 수요·공급 원칙 예외 없어… 서비스 경쟁·봉사 정신 치열해야
95년 사법 개혁 논의 때 가까스로 늘린 법조 인력 계획(96년 5백명으로 시작해 매년 백명씩 늘림)이 다시 좌초할 위기에 처했다. 사법연수원 가재환 원장이 계획대로 증원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 데 이어 박상천 법무부장관까지 더 이상의 증원은 어렵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반론도 적지 않다. 참여민주를위한시민연대 김기식 사무국장은 “법률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변호사 수를 늘려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현재 소송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국민은 30% 남짓이다. 많은 국민들이 헌법에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 수가 적으면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수임료가 올라가게 된다. 희소성의 특권을 향유하면서 독점적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물론 변호사들은 지금도 과잉 상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법학자들은 변호사 대부분이 수입이 많은 송무 사건에 몰려들어 경쟁이 격심해지고 심지어 브로커 고용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히 법률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밖에 없다.

법률 서비스라는 점에서 보면 판사와 검사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현재 살인적인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정한 재판과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 억울한 사법 피해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법조인 수를 늘린다고 해서 곧 법률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한인섭 교수(서울대·법학)는 “변호사 스스로가 국민 편에 서서 자신을 서비스 생산자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라고 지적한다. 판·검사와 친해지려는 경쟁을 버리고 생활 속에서 법률 서비스를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 정책을 통해 수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과 엄정한 징계권을 행사하는 일도 중요하다.

변호사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수준 높은 서비스 경쟁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 혹은 법원에 대한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는 돈이다. 돈이 없으면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이런 문제 의식에서 시작된 것이 국선 변호인 제도와 법률 구조 활동이다. 우선 정부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활동을 좀더 활성화해야 한다. 구조 영역을 넓히고 예산도 늘려야 한다.

변호사들과 변호사 단체도 국선 변호와 법률 구조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처럼 변호사에게 연간 50시간 이상 무보수 구조 활동을 의무화하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 이런 장치들은 자신을 비싼 값에 사는 의뢰인에게 충성하는,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의 첨병이 될 수밖에 없는 변호사 제도가 갖는 맹점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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