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 개척한 최재천 변호사
  • 김 당 기자 ()
  • 승인 1999.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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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변호사(사시 29회)만큼 짧은 기간에 전문 영역을 개척한 변호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만큼 자신의 직무 영역을 선택하는 데 남들보다 일찍 고민하고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변호사는 재조(판검사)와 재야(변호사)를 가르는 1차적 기준이 ‘성적순’이던 시절에 사법시험 성적이 10위권에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93년 군법무관을 마치자마자 단독 개업이라는 ‘모험’을 택했다.

그 대신 그는 자기만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자기의 적성과 전망을 바탕으로 스스로 상정했던 전문 분야는 노동·환경·의료·세무·지적재산권 등이었다. 그중에서 지적재산권은 매력 있는 분야였지만 이미 변리사들이 시장을 잠식했고, 노동·세무 쪽은 상당수 변호사가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결국 남은 분야는 환경과 의료였는데 ‘시장 조사’를 해 보니 환경 소송은 한 해 평균 30건에 불과해 시장성이 약했다. 반면에 의료 소송은 한 해 2백건이어서 전문성만 확보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60년대에는 개업 의사들이 사실상 모든 과목을 진료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클리닉으로 전문화해 있습니다. 법조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죠.” 최변호사의 말이다.

물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컸다. 무엇보다도 전문가인 의사를 상대로 싸우려면 법전말고도 의학 서적을 탐독해야 했고, 전문의에게 자문하는 등 일반 소송에 비해 품이 훨씬 더 많이 들었다. 소송 기간도 오래 걸렸다. 특히 의사들이 쌓아 놓은 직업 이기주의의 벽은 높기만 했다. 의사의 과실 여부를 판정하려면 결국 의사의 감정을 통해야 하는데, 병원에서 감정을 서로 떠미는 바람에 소송이 지연되거나 의사에게 유리한 감정이 나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소송을 오래 하다 보면 피고측과 다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와 다투는 양상을 띠게 되고, 개별 사건의 분쟁이 대한의사협회 전체와의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았다.

병원측 수임 의뢰는 대부분 ‘사절’

그러나 의료 소송, 좀더 정확히 표현해 의료 과오 소송을 6년째 해온 지금, 최변호사는 또 다른 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인 신현호 변호사(사시 26회)와 함께 중요한 의료 소송을 거의 다 맡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분야에서는 이름이 알려져 있다. 최변호사의 1년 평균 수임 건수는 1백80여건. 그중 60% 정도가 의료 소송이고, 승소률은 90%가 넘는다. 특히 최변호사는 주로 원고(환자)측 소송 대리인을 전문으로 하다 보니 의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변호사로 ‘악명’을 날리고 있다. 그 덕분에 이제는 피고(병원)측이 수임을 의뢰하기도 하지만 가능한 한 거절하고 있다. 법원의 판례가 의사의 과실에 대한 환자측 입증 책임을 점점 완화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의사측에 비해 환자측의 권리가 열악해 권리가 대등해질 때까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 변호사의 덕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개업할 때만 해도 진단서 하나 읽을 수 없었던 최변호사가 지금은 의학 용어를 써가며 대화할 만큼 ‘반 의사’가 된 데는 서울대학병원 수간호사 출신 의료상담실장 이은선씨, 방사선과 출신 사무장 박용태씨 등 직원들의 도움이 컸다. 최변호사는 또 최근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전현희 변호사를 ‘모셔’온 데 이어 필름 판독을 전담할 진단방사선과 기사를 한 사람 더 채용할 계획이다. 최변호사는 이 ‘드림팀’으로 올해 안에 개인 상해 부문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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