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 문화 캘린더 [비디오][영화]
  • ()
  • 승인 1999.02.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디오][영화]
민족 최대의 명절 설 연휴를 맞아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먼저 ‘걸작 비디오 9편’은 설 연휴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노년의 의미를 반추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엄선한 명작들이다. 영화를 비롯한 연극·뮤지컬 등 공연이나 전시 행사들도 설 연휴 혹은 이 기간을 전후해 연인이나 가족끼리 감상하기에 부담 없는 것들로 골랐다. <편집자>
쿵후 선생

감독:이 안
출연:랑웅·기성

대만 출신 이 안 감독이 서유럽으로 진출하기 전에 발표한 대표작. 미국 여성과 결혼한 아들을 따라 미국에 간 홀아비 노인이 문화 충격을 극복하고 가족애를 회복하는 과정을 담았다.

파란 눈의 며느리와 사사 건건 부딪치다 집을 나간 노인은, 중국 음식점 접시닦이를 하며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평생 연마해 온 쿵후로 자립할 길을 마련하고, 사랑도 찾게 되는 할아버지의 자세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을 좇아 이민을 간 한국의 아버지·어머니 세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여인사십

감독:허안화
출연:소방방·나가영

홍콩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 허안화의 작품으로, 치매 노인을 모시는 중류 가정의 이야기다. 직장을 가진 며느리가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모시며 겪는 고통뿐 아니라, 아내에게 위로가 되지 못해 미안해 하는 남편과 할아버지를 통해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 손자의 모습을 애잔하게 그린다. 효에 대한 동양적 가치관은, 서양 영화를 볼 때와는 다른 친근한 감동을 안겨 준다.

로켓 지브랄타

감독:대니얼 패트리
출연:버트 랭카스터·맥컬리 컬킨

아기자기한 가족 영화를 많이 만든 패트리 감독이, 말년의 버트 랭카스터를 시와 음악과 사랑을 추억하며 죽어 가는 근사한 노인으로 추어올렸다. 노시인을 찾은 자식들은 돈과 명예를 탐하지만, 동심을 간직한 손자·손녀 들은 바이킹식 장례를 이야기했던 할아버지를 위해 낡은 배를 수리한다. 이윽고 손주들은 ‘로켓 지브랄타’라고 명명한 배에 할아버지 시신을 실어 보낸다.
해리와 아치

감독:제프 커뉴
출연:버트 랭카스티, 커크 더글라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도 해리와 아치가 30년 만에 출소해 인간미가 사라진 세상을 보고 놀란다. 비록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대담무쌍한 강도짓을 했지만, 그들은 결코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며 의리를 금과 옥조로 여겼을 만큼 신사적이며 낭만적인 강도였다. 그들은 첨단 기기를 이용해 비열한 좀도둑 짓을 하는 젊은 것들을 보며, 한판 멋지게 판을 벌여 교훈을 주기로 결심한다.

월터와 프랭크

감독:린다 헤인즈
출연:로버트 듀발·리처드 해리스

조심성 많은 전직 이발사 월터와 선장 출신 허풍쟁이 프랭크가 주인공이다. 성격과 가치관에 국적마저 다른 두 노인의 티격태격에, 깐깐한 과부와 마음씨 고운 아가씨와의 로맨스를 곁들인다.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농아의 홀로서기를, <닥터즈>에서는 암 환자의 투병기를 그렸던 여성 감독 린다 헤인즈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황혼

감독:게리 데이빗 골드버그
출연:잭 레먼·테드 댄슨·에단 호크

무엇이든 챙겨 주던 마누라가 병원에 입원하자, 할아버지는 어떻게 밥을 해먹고 세탁기를 돌려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아버지를 멀리해 왔던 중견 간부 아들과, 그와 똑같이 아버지에게 반항해 온 대학생 손자가 찾아와 모처럼 3대가 정을 나누게 된다.

남자들만의 시간은 어머니와 딸의 화해 못지 않게 아기자기하고 따뜻해서, 할아버지가 죽음을 맞을 때쯤에는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세 배우의 연기가 조화롭다.
그럼피어 올드맨

감독:하워드 더치
출연:잭 레먼·월터 매튜

이웃해 살고 있는 평생지기 노인 친구의 아웅다웅을 그린 코믹한 실버 무비 <그럼피 올드맨>은 뜻밖의 성공을 거두었고, 하워드 더치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아 더욱 치열해진 라이벌의 사랑 싸움과 우정을 그린 속편 <그럼피어 올드맨>도 박스 오피스에 진입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노인들의 밉지 않은 심술과, 노년에 찾은 아름다운 부인과의 깨가 쏟아지는 사랑이 정겹다.
네버 투 레잇

감독:질스 워커
출연:올림피아 듀카키스
클로리스 레크먼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재산을 가로채는 양로원의 비리를 파헤치는 할아버지·할머니 들의 활약을 그린 스릴러 형식의 실버 무비. 뛰어난 해킹 솜씨로 양로원 컴퓨터 파일을 뒤져 사건을 해결하는 신식 노인들의 모습이 실버 무비의 고정 틀을 깨뜨린다.

양로원에 자신의 인생과 전재산을 바치는 수동적인 노인들과, 혼자 살며 자유를 만끽하려는 노인들의 대조적인 모습이 흥미롭다.
황혼의 로맨스

감독:빌 듀크
출연:올림피아 듀카키스·다이안 랫드

할머니들의 노년은 할아버지들의 노년에 비해 더 화려하고 이야깃거리가 많다. 성격이 다른 세 과부 할머니들의 활기에 찬 노년을 그렸다. 새로운 사랑 찾기와 취미 활동은 미국 부자 할머니들의 경제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샘이 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삶에 대한 강한 의욕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리라. 러시아계 미국 극작가 이반 멘첼의 극본이 원작으로, 한국에서도 백성희·김금지·윤소정이 주연을 맡아 <혼자 사는 세 여자>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옥선희 (칼럼니스트)
눈오는 날의 왈츠

감독:비탈리 카네프스키
출연:파벨 나자노프·디나라 드루카로바

45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89년 54세로 데뷔한 러시아의 신인 감독 카네프스키의 두 번째 작품. 파리에서 관객 70만명을 불러 모은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의 속편이다.

전편의 발레르카는 어느덧 사춘기 소년이 되었지만, 그를 둘러싼 암울한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다. 그가 다니는 직업훈련원에는 매춘이 만연하고, 선생마저 묵인의 대가로 어린 소녀를 강간한다.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자궁을 긁어내는 조악한 낙태 수술 때문에 중태에 빠지고, 길거리에서는 술주정뱅이나 술 먹은 아이와 맞닥뜨리는 일이 흔하다. 스크린에 비친 현실은 성장 영화나 리얼리즘 영화의 그것과 달리 너무 거칠고 날것이어서 절망이나 회한 따위 말랑한 감상이 끼여들 여지조차 없다. 소년은 가혹한 현실에 대해 간혹 대들고 소리치지만, 대개는 방관하듯 지나친다. 이야기를 잘 짜내는 것보다는 야만적인 삶의 조각들을 보여주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인 작품이다.
마요네즈

감독:윤인호
출연:김혜자·최진실

연극 무대를 마주하고 앉은 것처럼 배우의 육성과 체취가 느껴지는 영화. 꼭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지 않더라도, 가슴 시린 모성애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이해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의 어머니를 그렸다. 대필 작가로 살아가는 딸 정인(최진실)과 항상 칭얼대듯 병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어머니(김혜자)의 갈등과 화해가 주요 축이다. 마요네즈는 모성애나 부덕에 충실하기보다는 여자로서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지아비가 거동을 못하는 중에도 머리카락에 윤기를 내기 위해 마요네즈를 바르는 철딱서니 없는 어머니 김혜자의 능청스런 연기가 일품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바리케이드>로 데뷔한 윤인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

화이트 발렌타인

감독:양윤호
출연:박신양

화제의 영화 <유리>를 만든 양윤호 감독의 네 번째 작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화가 지망생 소녀와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남자의 잔잔한 교감을 그렸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다소 비켜서 있던 두 사람이 비둘기를 메신저 삼아 소통에 이른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소녀의 모습을 창을 통해 비추고, 남자는 항상 새에 둘러싸여 있는 등 동화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예쁜 그림에 걸맞는 울림이 없어 아쉽다.


레 미제라블

감독:빌 어거스트
출연:리암 니슨·제프리 러시·우마 서먼

1862년 출간된 뒤 무대와 스크린에서 여러 차례 각색된 <레 미제라블>을 서른두 번째로 영화화했다. <쉰들러 리스트>의 리암 니슨이 장발장 역을, <샤인>의 제프리 러시가 자베르 경감 역을 맡았다. 빌 어거스트는 <정복자 펠레>를 연출한 거장이다.
쉬리

감독:강제규
출연:한석규·최민식·송강호

한국의 정보기관 OP와 북한 첩보부대 특수군단 요원의 대결을 그린 첩보 액션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감독이 3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북한 요원의 성격이나 행동의 동기 묘사가 단선적이지만, 액션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겠다고 선언한 작품답게 전투 장면과 정보전의 긴장감이 돋보인다. 한석규·최민식·송강호가 펼치는 개성적인 연기 대결도 볼거리다.

연풍연가

감독:박대영
출연:고소영·장동건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여자와, 무료하고 갑갑한 현실을 잊지 위해 제주도에 내려온 남자의 사랑 이야기. 당차고 꿈 많은 영서(고소영)는 며칠 만에 태희(장동건)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그의 어머니는‘섬 여자는 육지 남자를 만나면 고생한다’며 영서를 단속한다. 어머니의 말대로 태희는 말 없이 서울로 떠나고, 둘의 인연은 계속 어긋난다. 영화가 끝나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독하고 절실한 사랑이 아닌, 물무늬처럼 스며드는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극 전개가 너무 우연에 의존하고, 남녀의 만남이 이유 없이 어긋나기만 하는 구성이 영화에 흠집을 낸다.


魯順同 기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