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의 네 여인, 누가 거짓말 했나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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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몸짓에 나타난 진실 추적/엉뚱한 대답, 머 리카락 만지기, 과장된 울음 등은 일단 의심해야
역대 청문회치고 ‘거짓말 청문회’라는 평가가 내려지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지난 8월23∼25일 국회에서 열린 ‘옷 로비 청문회’는 유독 풍성한 거짓말 논란을 낳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언어 다루기에 능한 만큼 남성에 비해 거짓말 잘하는 소질을 타고 났다’는 여성이 무려 넷씩이나 한자리에 불려 나왔기 때문일까.

심리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 천사처럼 보이는 어린아이도 거짓말을 한다. 발달심리학에 따르면 아이들은 보통 세 살 때부터 거짓말을 시작한다. 이즈음부터 아이들은 ‘오늘 길에서 기린을 봤다’고 허풍을 떨거나, 엄마가 보는 앞에서 꽃병을 깨뜨리고도 꽃병을 깨지 않았다고 우기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거짓말은 대부분 ‘의도하지 않은, 방어적 거짓말’이라는 것이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김병후정신과 원장)의 말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은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혼동하거나 벌을 피하려고 단순한 거짓말을 지어낸다는 것이다. 때로 ‘놀이방 선생님이 나를 때렸다’고 거짓 고자질을 하는 것처럼, 어른들이 자기 존재를 몰라준다고 생각해 관심을 끌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어른들의 거짓말은 기본적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의도한 거짓말’이다. 물론 개중에는 잔칫집 음식이 끔찍하게 맛이 없었는데도 ‘훌륭한 솜씨였다’며 여주인을 칭찬하는 사람처럼, 자기 이득 아닌 남의 이득을 위해 이른바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 등장한 거짓말은 ‘자기 이득을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치밀한 거짓말’이라는 점에서 악질적이었다는 것이 김병후 박사의 지적이다.

“모든 거짓말에는 거짓을 판별할 단서가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어떤 거짓말을 한 것일까.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던 데서 알 수 있듯, 거짓말을 가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거짓말 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폴 에크먼 박사(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심리학)는 ‘모든 거짓말에는, 그것을 판별해 낼 단서가 있다’고 잘라 말한다. 단 보통 사람들이 그 단서를 찾기는 어렵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거짓말을 보통 소극적인 거짓말과 적극적인 거짓말로 나눈다. 진실을 ‘감추는’ 것이 소극적인 거짓말이고, 진실을 ‘속이는’ 것은 적극적인 거짓말이다. 소극적인 거짓말은 ‘기억 나지 않는다’ 같은 말로 진실의 일부를 감추면 되는 만큼 거짓말 할 때 부담감이 덜하다. 이같은 감추기는 이번 청문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러나 서로 진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목에서 네 여인은 적극적인 거짓말을 구사하며 하나님까지 끌어들여 자신의 결백을 맹세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사탄을 ‘거짓말의 아버지’라 일컬었다. 신학자들은 흔히 거짓말을 ‘하나님에 대한 부인’으로 해석한다. 결국 이번 증인 가운데 몇 사람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한 사탄이 된 셈이다. 폴 에크먼이 제시한 거짓말 알아내기 방법을 응용해, 청문회에 나타난 거짓말의 단서들을 추적해 보자(<거짓말 잡아내기>, 동인).

먼저 말.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때는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을 쓰며, 질문에서 요구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에크먼의 연구 결과이다. 미국 NBC 텔레비전 인터뷰 담당자였던 톰 브로커는 거짓말이 의심될 때 상대방 얼굴을 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신 그는 앞뒤가 안맞는 대답이나 교묘하게 답변을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거짓말의 단서를 찾아냈다.

이를테면 이번 청문회에서 정일순씨는 엉뚱한 대답으로 빈축을 샀다. ‘모피 코트가 4백만 원이 넘지 않느냐’고 국회의원이 질문하면 ‘그거 반코트에요’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연정희씨가 모피 코트를 가져간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한 의원이 ‘지난해 12월19일에 이어 26일에도 부인들이 와서 옷을 돌려가며 입어 봤느냐’고 질문했을 때, 그의 입에서 처음 튀어나온 답변은 ‘의원님이 자꾸 윽박지르니까 기억이 하나도 안나잖아요’였다.거짓말을 하며 코를 만지는 이유는?

말보다 감추기 어려운 것이 몸짓이다. 몸짓에는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 같은 ‘상징 몸짓’과, 자기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동작으로 설명하는 ‘설명 몸짓’이 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할 때는 상징 몸짓이 증가하는 대신 설명 몸짓은 감소한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지적이다. 거짓말을 할 때 특히 자주 나타나는 상징 몸짓은 입 가리기, 코나 머리카락 만지기, 아래턱 두드리기, 볼 문지르기, 귓불 당기기 따위이다.

이를테면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배심에서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을 증언할 때 코를 1분당 스물여섯 차례나 만졌다. 미국의 ‘냄새와 맛 처리 연구재단’은 이것이야말로 거짓말을 드러내는 몸짓 언어라고 주장했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콧속 혈관이 확장되면서 코가 가려워지는 이른바 ‘피노키오 효과’가 나타나 자기도 모르게 코에 손을 가져가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번 청문회 내내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던 배정숙씨는 이형자씨에게 옷값 대납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며, 1초도 안되는 극히 짧은 시간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침착한 모습을 보였던 이형자씨는 신동아그룹의 외화 불법 유출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상체를 뒤로 젖혔다. 이같은 행동은 모두 상징 몸짓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연정희씨는 ‘11월7일 신라호텔 모임에서 최순영씨 수사 진행 상황을 배정숙씨에게 흘린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며, 책상 아래로 두 손을 꽉 맞잡고 있는 모습이 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혔다. 거짓말을 할 때 손짓(설명 몸짓)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설명이다. 진화생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아마도 손이 자기를 배반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손의 움직임을 억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맨워칭>).‘오셀로의 실수’ 저지르면 생사람 잡기 십상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상준씨는, 상황에 걸맞지 않은 증인들의 울음은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오버 액션은 흔히 말문이 막히거나 답변하기 곤란할 때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기 쉽다는 것이다. 미소 또한 가면이기 쉽다. 마음 먹으면 누구나 지을 수 있는 표정이 미소이기 때문이다. 단 진짜 미소와 거짓 미소는 사용하는 얼굴 근육이 다르다. 그 결과 거짓 미소를 지을 때면 ‘입은 웃는데 눈은 웃지 않는’불균형 상태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이 나타났다고 쉽사리 거짓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거짓말 할 때 나타나는 말과 몸짓의 변화는, 화가 나거나 당황하거나 공포를 느낄 때 나타나는 반응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 에크먼의 지적이다. 심리학에서는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것을 ‘오셀로의 실수’라고 부른다(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믿고 상대 남자를 죽인 오셀로는 통곡하는 아내에게 ‘내 면전에서 그 놈을 위해 우느냐’며 분노를 터뜨린다. 그러나 오셀로의 아내는 문제의 남자가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길이 없어졌다는 절망과 두려움에 통곡했던 것이다).

청문회의 네 여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관찰자가 자칫 ‘오셀로의 실수’를 저질렀다가는 생사람 잡기 십상인 것이, 말과 몸짓으로 거짓말을 판별하려 할 때 나타나는 한계이다. 그렇다면 ‘청문회에 거짓말 탐지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도 전혀 일리가 없는 말만은 아니다. 거짓말 탐지기가 측정 대상으로 삼는 자율신경계(혈맥·심장 박동·피부 전기 반사)는 말이나 몸짓과 달리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55쪽 상자 기사 참조).

문제는 사람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가이다. 악의 없는 거짓말은 삶을 윤기 있게 한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최고의 거짓말만 모아 놓은 사이트가 있다. 이 중 한 사이트(www.liespeopletell.com)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전화할게’, 반대로 여자가 남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우린 단지 친구일 뿐이야’이다. 또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거짓말은 ‘잠시만 기다리세요’와 ‘언제 점심이나 함께 하죠’이다.국민을 절망시키는 특권층의 거짓말

최소한 ‘술 마시러 가니까 너 생각할 시간이 없어’라고 융통성 없게 말하기보다, ‘전화할게’라고 거짓말 하는 편이 원만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일 수 있다. 그러나 거짓말에 악의가 섞이면 문제는 달라진다.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를 정신과에서는 일종의 인격 장애로 취급한다.

상습 거짓말쟁이들은 대부분 허약한 자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자아를 외부에 내보이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동원하며, 한쪽 거짓말에 구멍이 뚫리면 이를 막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계속해서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최보문 교수(인천성가병원 신경정신과)는 지적한다. 결국 이들은 ‘화장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여자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자기를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허약한 자아를 방어하기 위해 거짓말을 동원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ㄱ씨는 사소한 일에도 거짓말을 한다. 저녁을 먹고 귀가했으면서도 먹지 않았다고 아내에게 시치미를 떼는 식이다. 이런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독립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 최교수의 지적이다. 곧 비밀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분리된 존재이며, 자기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중증인 거짓말쟁이, 곧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결코 병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범용씨(이범용신경정신과 원장)는, 원하는 것을 얻으면 강화되고 그렇지 못하면 점차 사라지는 것이 인간 행동의 특성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득을 얻어 온 사람들이 거짓말 하는 행위를 그만둘 리 만무하다. 특히 위증을 해도 뒤탈이 없고, 거짓말을 교묘하게 한 사람이 오히려 동정을 받는 현행 청문회 제도는 거짓말에 대한 전국민의 내성을 길러줄 뿐이라는 것이 이씨의 비판이다.

거짓말을 다각도로 탐구한 폴 에크먼은 ‘거짓말은 인간의 조건’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 전혀 거짓말을 못한다면,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아 절대로 부드럽게 웃지 못한다면 세상은 훨씬 삭막해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이라고 치부하고 참아내기에는 일부 특권층의 거짓말이 주는 모멸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를 절망케 하는 근본 원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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