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법을 제대로 알자’ 기수련 열풍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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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호흡·기체조 등 기수련 열풍…참여 인구 2백만, 기업·대학·국가기관에서도 적극 권장
마이클 조단이 가부좌를 틀고 단전 호흡을 한다? 여간한 농구 마니아가 아니라면 미국 프로 농구(NBA)의 최정상 시카고 불스팀과 동양의 기수련법을 연관짓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풍류 기공을 널리 알리고 있는 정 준씨가 최근 펴낸 <氣테크>의 들머리에는 NBA에서 네 차례나 우승한 시카고 불스팀의 사령탑 필 잭슨 감독의 프로필이 소개되어 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단, 코트의 망나니 데니스 로드맨, 자존심 강한 남자 스코티 피팬 등 슈퍼 스타들이 코트에서 화음을 이루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의 완벽한 팀 플레이는 필 잭슨 감독의 ‘비방’에서 나왔다. 필 잭슨은 어릴 때 몬태나 주의 한 수도원에서 동양의 기문화를 접한 이래 대학에서 종교학·철학을 공부하면서 줄곧 기에 관심을 쏟았다. 그의 ‘내공’은 농구 코트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데다 다혈질인 프로 선수들을 단전 호흡으로 다듬고 다스린 것이다.

80년대 소설 <단>이 기수련 붐 촉발

한국 양궁과 사격이 일찍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도 기수련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는 방치되거나 무시되었다. 서구 합리주의와 산업화를 열심히 뒤따른 한국인들에게 기는 신비주의와 동의어였을 뿐이다. 최근 신과학, 또는 뉴에이지 운동이 논의되는 한편, 개인의 건강은 물론 생태계 전체가 위기에 처하면서 과거의 기가 현재와 미래를 해결하는 키워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기·기수련 붐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김재은 교수의 <기의 심리학>에 따르면, 기수련 인구는 2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뿐 아니다. 기를 증진해 건강을 도모하는 상품들도 연일 진열대에 오르고 있다.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뇌파(알파파) 발생기도 있고, 건강 음료까지 나온다. 인간의 잠재 능력을 계발하는 기수련은 청소년들의 두뇌 개발에 벌써부터 응용되어 왔다. 대학에서도 기수련을 정규 과목으로 설치해, 전통 문화를 통한 전인 교육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기수련 강좌를 상설화한 대기업과 관청도 적지 않다. 선경그룹은 총수에서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기수련에 적극적이어서 ‘기그룹’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은 상당한 수준의 기수련자로 알려져 있는데, 곧 자신의 기수련 체험을 담은 저서를 발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기관과 국회, 법원 등 국가 기관도 기수련에 적극적이다. 기수련을 창작의 목적이나 수단으로 삼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대학 교수,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기수련에 대한 체감 온도는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기를 응용하는 분야는 이밖에도 많다. (주)단학선원이 펴내는 월간지 <건강 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를 이용해 수맥을 찾는 생활 풍수도 있으며, 체질에 맞는 음식이나 약재를 선택하는 오링 테스트, 기의 통로인 경락이나 경혈을 자극하는 침구 요법도 등장했다. 기를 이용한 찜질방도 있으며, 주변 자연의 기를 고려한 음양오행 아파트와 음양오행(혹은 풍수) 실내 디자인도 선보였다. 대중 매체들도 연일 기 관련 기사를 내보낸다. 각종 문화센터도 기수련법 강좌를 열어놓은 지 오래이고, 관련 서적과 비디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기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갈 것으로 보인다. 기(기공)를 서양 의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기테크>의 저자 정 준씨는 기수련법을 신세대에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애용 가능한 혁신적인 상품’으로 인식한다. 지난해에 발표된 한 통계에 따르면, 10~50대 한국인 가운데 47%가 자신의 최대 관심사가 ‘건강과 질병’이라고 답했다. 또 최근 나온 한 통계에서 한국인의 새해 소망 1위는 건강이었다. 한국 남성의 30% 이상이 운동을 하고 있다. 건강염려증과 기수련과는 접착성이 매우 강하다.

최근 일고 있는 기수련 붐의 도화선은 80년대 초반 권태훈옹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단>이었다. “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20년 전 기 얘기를 꺼내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요즘에는 기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라고 기천문 문주(대표) 박사규씨는 말했다. ‘허황된 민족주의’라는 일부의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 <단>이 나오지 않았다면 기수련 붐은 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국내 기수련 단체는 국선도·단학선원·천도선법·기천문 등 자생적 단체와 중국에서 들어온 기공 단체로 양분된다. 기수련은 그 방법에 따라 정공(靜功)과 동공(動功)으로 나뉘는데, 정공은 참선하듯이 가만히 앉아 단전 호흡에 치중하는 수련법이고, 동공은 기천문처럼 다양한 자세와 동작을 통하여 기를 쌓아가는 방법을 말한다. 먹는 것보다 숨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수련은 몸을 우선한다. 기천문 박사규 문주가 보기에, 현대인들은 복잡한 일상을 영위하면서 정신에만 신경을 쓰는 나머지 몸은 늘 2차적 존재로 전락해 있다. 갖가지 기계와 기술과 서비스가 몸을 움직이지 않게 한다. 도시인의 몸은 몸둘 바를 몰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가 위쪽으로 몰려(상기) 건강을 해친다. 화가 나거나 병에 걸렸을 때 머리가 아픈 것은 머리 쪽으로 기가 몰리기 때문이다. 기는 배꼽 아래 하단전에 모여 있어야 정신과 몸이 두루 맑게 된다는 것이다.

기의 시대는 결국 그동안 방치했던‘몸’으로 돌아가는 시대인데, 몸의 시대는 다름 아닌 ‘숨쉬는 법’을 터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국선도 고장홍 진영법사는 “육체의 밥(지기)은 입으로 들어가지만 정신의 밥(천기)은 코로 들어간다”라고 강조한다. 즉 눈에 보이는 지기와 눈에 보이지 않는 천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따라 생명력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섭취하는 기운의 총량을 10으로 볼 때, 입(음식)이 3, 코(호흡)가 7을 담당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3에 해당하는 음식은 그렇게 연구하면서 7에 해당하는 호흡에 대해서는 캄캄하다고 고씨는 지적했다.

기수련(기학 또는 단학)의 출발이자 완성인 호흡, 즉 단전 호흡의 원리는 간단하다. 신장의 수기가 머리로 올라가고 심장의 화기가 아래로 내려가는 원리(수승화강)가 기수련의 기본이라고 단학선원측은 설명한다. 단전 호흡은 몸 속 기(에너지)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인데, 기가 제대로 돌아가게 되면 뇌에서는 엔돌핀이 분비되고, 엔돌핀이 T임파구를 증가시켜 자연 치유력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단전 호흡으로 대표되는 단학의 역사는 유구하다. 국선도·단학선원·기천문 등 기수련단체는 ‘같은 피’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고조선 이래 종교 사상 예술 문화의 뿌리가 되어온 선도(仙道)를 발원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유·불·선을 통합해 현묘지도·화랑도·풍류도·국선도(國仙道) 등으로 불리던 민족 고유의 수련법〔道法〕은 이미 단군 시대에 그 수련 체계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와 유교가 고려와 조선의 국교로 도입된 이후 단학(선도)은 산중으로 들어가 비전(秘傳)되어 왔다.

하지만 호흡법을 비롯하여 기수련법은 수련 단체마다 차이가 있다(이 차이가 수련법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호흡법은 숨을 내쉴 때 단전에 힘을 주는가 하면, 또 다른 호흡법은 들숨과 날숨을 중간중간 잠깐씩 끊어주고, 이와 또 다른 호흡법은 들숨일 때 하단전을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한다. 기수련 전문가들은 ‘호흡 수련은 절대로 혼자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자칫 기가 순환하지 못해 큰 탈(주화입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덕성 무시한 기수련은 오히려 화 불러

정공과 동공 어느 것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수련법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단학회 연정원은 호흡법에 비중을 많이 둔다. 대표적인 정공이다. 정신세계원 송순원 원장은 이 수련법은 고차원적이지만, 대중화하기가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고 말한다. 반면 단학선원은 체조와 호흡, 명상과 춤 등 프로그램으로 대중화에 성공하고 있다.

기의 시대를 멈추게 할 브레이크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희구하는 대중의 욕구가 있고, 학계에서는 미래를 열어갈 정신 과학의 주요 테마로 기를 설정하고 있다. 기는 바야흐로 이성과 합리, 미시적 분석으로 압축되는 서구 과학 문명의 한계와 폐해를 극복할 체계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고 기의 시대 앞에 파란 신호만 켜져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기를 혹세무민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부 기수련 단체 혹은 기수련자(기공사)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에는 기를 불어넣어 병을 고쳐준다면서 거액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정신세계원 송순현 원장은 기수련에서 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에는 마음이 담기기 때문에 함부로 기를 받으면 안된다. 오히려 나쁜 기를 받을 수도 있다.”

기수련 단체들은 홍익인간·이화세계와 같은 전통 사상을 수련의 가장 큰 경지로 올려놓고 있지만, 간혹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오는 배타적인 민족주의, 근거 없는 동양 우월주의가 염려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상생의 문명이 아니라 지배자만 바뀌는 새로운 제국주의라면 그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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