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에 ‘금배지’ 수북하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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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관료·경영자 등 지도층 인사 수두룩…사이버 대학에도 많아
오종남 통계청장은 요즘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와 T.S. 엘리엇의 <황무지>에 푹 빠져 있다. 지난해 방송대 영문학과 3학년에 편입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법학과 71학번인 오청장은 미국 텍사스에 있는 귀족 학교 서던 메소리스트 대학(SMU)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내 최고 명문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까지 다녀 온 그가 방송대 영문학과에 편입한 것은 다소 의외다. 마음만 먹으면 국내 어느 대학원 영문과에라도 입학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청장은 재정경제원 국장과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내면서 통역을 할 정도로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 그는 “현직에 몸 담고 있는 처지에 수업에 출석해야 하는 일반 대학교 편입은 어려운 데다, 방송대는 일반 대학과 달리 졸업 자격 시험이 매우 어려워 긴장감을 가질 수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AMP) 등 다니고 싶은 곳은 모두 다녀 보았다. 하지만 최고위 과정이다 보니 시험이 없고 학사 관리가 엄격하지 않아 교육 내용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이와 달리 방송대는 교육 과정이 짜임새가 있는 데다가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지 강의를 들을 수 있다. 또 한 학기에 1주일간 진행되는 출석 수업을 시험으로 대체할 수 있어 편리하다. 오청장은 “해마다 영문학과에 신입생 5천여 명이 입학하지만 졸업자는 천명 남짓이어서 방송대 졸업자는 포항공대나 서울대 못지 않은 자긍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권영수 LG전자 부사장은 오청장과는 다른 동기로 방송대 중문학과 2학년에 편입했다. 국내 2위의 전자회사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권부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학사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이다. 그는 “중국 시장이 LG전자에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중국 경제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오청장과 권부사장처럼 저명 인사들이 방송대나 사이버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중앙인사위원회가 발표한 국내 공직 인사 실태를 보면, 54개 중앙 행정기관 4급 이상 공무원 7천7백66명 가운데 서울대 1천3백74명에 이어 방송대 출신이 9백64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방송대는 또 사법고시 합격자 65명을 배출했고, 지난해 8회 법무사 시험에서는 7명을 합격시켰다.

‘금배지’를 단 학생도 많다. 남경필·이성헌·전용학·이병석 의원이 편입학했다. 정두언 서울시 정무 부시장, 영화배우 심혜진씨가 방송대를 다니고 있다. 또 정동영·심재철·송영길·배기선 의원,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이 방송대를 거쳐갔다.

한국싸이버대학교에는 2001년 초 인터넷 환경을 활용한 원격 교육을 실시한 이후, 김삼영 한국중소기업경영자협회 수석부회장·정홍식 대구지방경찰청 총경·이경희 신경한의원 원장 등 각계 지도급 인사가 편입학했다. 또 국내 벤처 기업 대표이사 13명이 벤처경영학부에 다니고 있어 사이버 대학 가운데 명문으로 떠오르고 있다.

각계 지도급 인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이버 대학 학과는 법학·벤처 경영·실용영어이다. 해당 업무에 도움이 되는 실용 지식을 얻기 위해서다. 서울디지털대학 e-biz(인터넷 사업)과에 다니는 박봉수 현대하이서비스 사장은 “입학하기 전에는 컴퓨터 자판도 두드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인터넷 환경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산업에 대한 이해도 가능해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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